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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윌비백~' 매너리즘 이기고 돌아온 감독과 영화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 카메론 크로우·<디센던트> 알렉산더 페인·<은교> 정지우

12.06.09 11:12최종업데이트12.06.09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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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너리즘. 매너가 너무 좋아 탈이라는 뜻? 아니다. 한마디로 좋았던 과거에 비해 현재 발전이 없다는 뜻이다. 올 영화계에는 신인감독도 많았지만 특히 전작의 명성을 지닌 기성감독들의 작품이 많았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매너리즘에 빠진 이들도 있고, 매너리즘을 피해간 이들도 있다. 여기서는 후자에 해당하는 세 명의 감독을 다뤄본다.

카메론 크로우 - 전작보다 더 리얼하게, 더 스케일 크게

카메론 크로우 감독의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카메론 크로우. 톰 크루즈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의 영예를 안겨줄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영화 <제리 맥과이어>(1996)의 감독이다. 이후 <올모스트 페이머스> <엘리자베스 타운> 등의 작품으로 명성을 이어가던 그는 올 상반기에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2011)라는 신작을 선보였다. (사실 작년 작품이라 구작이지만, 몇 년 지나 국내 개봉한 작품이니 어쩌겠나)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는 비록 국내 흥행은 잘 안 됐지만, 괜찮은 신작이었다. 이 영화는 그가 <제리 맥과이어>의 성공으로 가지고 있었던 매너리즘을 털어내게 해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를 보면 <제리 맥과이어>와 비슷한 면들도 있다. 우선 주인공 맷 데이먼은 톰 크루즈처럼 이전의 삶에서 벗어나 완전 새로운 도전을 감행한다. 그런 그에게는 스칼렛 요한슨이라는 좋은 여자가 존재한다. <제리 맥과이어>의 르네 젤위거처럼.

<제리 맥과이어>가 마치 실화를 재구성한 것처럼 생생한 감동을 주었다면,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는 아예 실화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어느 부자가 망해가는 동물원을 사 되살리면서 자신의 삶과 타인들의 삶을 업그레이드 시킨다는 게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라면, <제리 맥과이어>는 어느 잘 나가던 남자가 별 볼일 없는 운동선수를 되살리면서 자신의 삶과 타인들의 삶을 업그레이드 시킨다.

이렇게 함께 시련을 극복하는 열정적이고 도전적인 사람의 이야기를 유쾌하고 긍정적인 시각으로 유머러스하게 그림으로써, 카메론 크로우는 자칫 빠질 수 있었던 매너리즘을 피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알렉산더 페인 - 전작보다 복잡한 관계를 긍정적으로 풀어내기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디센던트>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알렉산더 '폐인'이 아닌 '페인'이다. 하지만 그의 영화들은 그의 '폐인'을 만들어 낼 수도 있게끔 매력적이다. <사이드웨이>(2004)로 명성을 쌓은 그의 신작 <디센던트>(2012)는 참으로 볼만한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대본을 잘 만들 줄 안다. 잭 니콜슨 주연의 아름다운 노년 이야기 <어바웃 슈미트>(2002)도 그랬고, <사이드웨이>도 그러더니, <디센던트>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결국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는 <사이드웨이>에 이어 <디센던트>로 또 각색상을 받았다. <디센던트>는 자칫 불륜으로 여겨질 수 있는 소재를 색다른 시각으로 접근해 구성해냄으로써 호평을 받았다. 조지 클루니의 '아저씨' 연기는 물론이고, '날라리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현명한 딸'로 나온 쉐일린 우드리의 연기도 훌륭했다.

와인뿐 아니라 사람과의 만남에 취해 힘든 삶을 극복하려 노력한 <사이드웨이> 속 인물들처럼 원수에 대한 진정한 용서에 취해 붕괴되어 가던 가족의 위기를 극복하려 노력한 <디센던트> 속 인물들. 그런 인물들의 모습을 글과 영상으로 잘 포착되게끔 감독했을 알렉산더 페인 역시 자신의 매너리즘을 극복해낸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정지우 - 전작보다 더 깊이 있게, 더 세심하게  

영화 <은교>의 한 장면 ⓒ 정지우 필름


정지우 감독의 <해피 엔드>(1999)는 개봉 당시 상당한 화제를 불러 모은 장편데뷔작이었다. 아직도 빠알간, 마치 핏빛 같은 포스터에 '웃프게' 자리한 전도연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이른바 '치정극'(남녀 간의 사랑으로 생기는 어지러운 정을 그린 극) 영화의 명작에 속하는 작품으로 흔히 얘기하는 불륜을 다뤘지만 확실히 불륜보다 다른 그 무언가를 느끼게 한 작품이었다.

올해 개봉한 <은교> 역시 노인과 여고생의 사랑과 여주인공의 노출 등으로 주목을 끌었지만 정작 영화를 보고나면 그런 가십거리가 무색해지는 그 무언가를 느끼게 한 작품이다. 정지우 감독은 <은교>에서 어쩌면 <해피 엔드>때보다 더 성숙해진 삶에 대한 성찰을, 그것도 더 세심한 인물 심리 묘사로 그려내 주었다.

<해피 엔드>보다 <은교>가 더 성숙해졌다는 평가는 <해피 엔드>가 여성의 외로움을 주로 다뤘다면, <은교>는 여성이 궁금해 하는 남성의 외로움 그리고 더 나아가 사람으로서 노년의 외로움을 주로 다뤘기에 가능한 것이다. 또한 정지우 감독은 <은교>의 '서지우'란 인물을 통해 자신의 욕망에게서 배반당하는 안쓰러운 사람의 모습까지 잘 그려냈기에 자칫 빠지기 쉬운 매너리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이처럼 과거의 명성은 당사자에게 단지 털어 내거나 극복해내는 대상일 뿐이다. 그런 명성에 기대거나 그 명성을 이어가려는 데에 급급하다면 좋은 현재가 오기 힘들 것이다. 물론 그런 명성을 아예 잊어버리고 사는 게 가장 좋겠지만, 사람이 어디 지난 기억을 쉽게 잊게 되던가 말이다.

매너리즘을 극복하기 위해 제일 좋은 방법은 초심으로 돌아가 그 초심보다 조금만 더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역시 말처럼 쉽진 않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해내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면 누구나 가능한 것이 매너리즘을 극복한다는 것 아닐까.

매너리즘 카메론 크로우 알렉산더 페인 정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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