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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도를 그려보리라!

영화 속의 노년(140) : 다큐멘터리 영화 <아파트>

12.08.22 10:28최종업데이트12.08.22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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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에는 줄거리가 들어 있습니다.

아파트에 혼자 사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신다. 장례가 끝나고 가족들이 살림살이를 정리하러 모인다. 연세 많은 분이라서일까, 장성한 손자 손녀들은 할머니 유품에 그리 큰 애틋함이 없다. 버리지 않고 구석구석 쌓아둔 온갖 것에 혀를 내두르고, 아주 오래전 유행했던 물건들을 보며 웃음을 터뜨린다.

감독인 외손자 '아르논'은 짐 정리하는 어머니와 함께 여러 차례 할머니 아파트에 가게 되는데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사진을 발견한다. 독일계 유태인인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악명 높은 나치 전범 부부가 사이 좋게 웃으며 함께 찍은 사진이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그 나치 전범 부부가 교류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여행도 같이 다니는 등 깊은 친분이 있었다는 것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아르논은 혼란에 빠진다.

▲ 다큐멘터리 영화 <아파트> 감독이 찾아 떠난 조부모님들의 삶,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 제9회 EBS국제다큐영화제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국립문서보관소, 신문이나 잡지에 그 시절과 관련된 일들을 기고했던 사람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고 급기야 나치 전범의 딸을 만나러 독일까지 가게 된다. 퍼즐 조각을 맞춰나가는 기분인데, 물론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각자 자기 위치에서 본 것만을 기억하고 있고, 나름의 해석이 진실이라 주장한다.

나치와 유태인,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조합 그러나 아르논은 조금씩 알게 된다. 3세대에 이른 지금에서야 그나마 이렇게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지 바로 윗세대까지만 해도 그 누구도 그 일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아니 올릴 수 없었다. 양쪽 모두에게 너무도 고통스러운 기억이기에. 아르논 일가 역시 예외일 수는 없었다.   

우리의 아픈 역사가 떠올랐다. 조부모 친일에 대한 흔적을 찾아 나서는 자손 마음이 이럴까. 놀라운 것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기록들, 잘 보관되어 있는 역사 자료들이었다. 조부모의 흔적을 찾아내려 애쓰는 그 끈기 또한 대단하다.

아르논의 형제자매와 사촌들은 하나같이 할머니 할아버지의 출생 연도는 물론이고 태어난 곳을 모르고 있었다. 남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그럼, 나는? 나는 조부모님에 대해 무얼 알고 있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하는 깨달음.

간단하게나마 조부모님의 삶을 조사해 보면 어떨까. 아니 그것보다 우선 '가계도'라도 한 번 그려보리라 마음먹었다. 나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이어지고 있는지라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위로 두 세대, 아래로 두 세대 정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감독이 작품에서 의도한 것은 이런 게 아닐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덧붙이는 글 다큐멘터리 영화 <아파트, The Flat (이스라엘, 독일 / 2011)> 감독 : 아르논 골드핑거
* 2012년 제9회 EBS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아파트 제9회 EBS국제다큐영화제 과거 노년 아르논 골드핑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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