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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오리 새끼> 예비 백조 위한 곽경택 감독의 메시지

[리뷰] 톱스타 아닌 신인 배우가 기용, 더 의미 있었던 곽경택의 자전적 이야기

12.08.31 15:45최종업데이트12.08.31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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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운 오리 새끼>에서 낙만 역을 맡은 김준구는 <기적의 오디션> 참가자 출신이다. ⓒ 트리니티 엔터테인먼트


작년 SBS에서 방영한 연기자 오디션 프로그램 <기적의 오디션>은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곽경택 감독에게도 여러모로 전환점이 됐다. 배우가 되기 위해 오디션에 참가한 젊은 친구들을 보고, 2006년 야심차게 준비했으나 투자 문제로 엎어진 시나리오를 다시 꺼내들었으니 말이다. 영화 <미운 오리 새끼>는 곽경택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이다. 그를 충무로로 이끈 단편 <영창이야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2001년 개봉한 <친구>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후, 곽경택 감독 영화 속 남자들은 구릿빛 피부의 야성미 폴폴 넘치는 '마초'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중에는 유독 덜떨어진 남자를 그린 <똥개>도 있었으나, 그 '똥개'를 연기하는 이는 당시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정우성이다.

장동건, 정우성, 이정재, 주진모, 권상우 등 당대 최고의 미남 배우들과 작업해오던 곽경택 감독이 고작 <기적의 오디션> 참가가 경력의 전부인 신인 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데뷔 17년차에 공전의 히트작 <친구>를 만든 유명 감독이라고 해도 상당한 모험이었다.

기존의 거칠고 강한 곽경택의 남자들에 비해, 곽경택의 20대 시절과 제법 비슷하다는  <미운 오리 새끼> 낙만(김준구 분)는 어리바리한 티가 나는 풋풋한 소년이다. 군사 정권의 고문으로 인해 정신이상자가 된 사진기자출신 아버지(오달수 분) 덕분에 신의 아들 '육방(후방 근무를 지원하기 위해 소집된 병역 인력 중 6개월만 근무하는 방위)이 되었다.

하지만 낙만에게 아버지는 자기 인생의 걸림돌이다. 헌병들의 괴롭힘을 달게 받으면서 부대 내 궂은 잡다한 일을 하며, 오직 오후 6시 퇴근만을 기다리는 낙만의 유일한 희망은 소집해제 하자마자 지긋지긋한 이곳을 떠나 엄마가 계신 미국으로 건너가는 것이다.

민주화 운동의 최전선에 뛰어들다가 고초를 치룬 아버지와는 달리 낙만은 6개월만 잘 버티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낙만이 육방으로 근무하던 1987년은 자유롭지 못한 군사정부로부터 민주화와 자유를 향한 열기가 절정을 이루던 시기다. 평범한 소시민조차 민주투사로 만들어버리는 혼란스러운 시대는 오직 위에서 시키는 대로 충실했을 뿐인 낙만 마저 위기의 소용돌이에 몰아넣는다.

육방으로 부산의 한 헌병대에 배속되기 이전, 낙만은 스스로의 인생을 '미운 오리 새끼'로 규정짓는다. 대를 이어 기원을 운영하는 가족의 내력 덕분에 바둑도 제법 두고 아버지의 피를 물러 받아 사진에도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아버지를 정신이상자로 만든 억압된 세상이 낙만을 슬픈 '미운 오리 새끼'로 만든 셈이다.

<미운 오리 새끼>에 출연한 '미운 오리 새끼'들

<미운 오리 새끼>는 군대라는 엄격한 계급, 명령 체계를 가지고 있는 조직과 군대와 다를 바 없었던 당시 시대 배경을 적절히 활용해 청춘의 좌절과 희망을 논하였던 영화는 가능성이 충분한 신인 배우들을 꿰어놓으며, 영화가 진짜 전달하고픈 메시지의 진정성까지 획득한다.

<기적의 오디션>에 출연하여 곽경택 감독의 눈에 들기 이전에는 김준구를 비롯, <미운 오리 새끼>의 신인 배우들은 연기를 하고 싶었으나 조용히 때만 기다리던 오리들이다. 주위의 만류와 우려에도 불구, <기적의 오디션> 당시 자신의 클래스에 속하던 배우 지망생들을 대거 주연급으로 참여시킨 곽경택 감독은 보란 듯이 이들을 백조로 만들어냈다.

그리고 곽경택 감독에 의해 완성된 새로운 백조 탄생은 스스로 백조인줄 모르고 아예 날갯짓 시도조차 포기한 또 다른 미운오리새끼들도 '나도 할 수 있다'는 소박하지만 뭉클한 희망을 안겨준다.

우아한 백조 대신 우아해질 수 있는 예비 백조들로 가득 채워 더 의미 있었던 <미운 오리 새끼>. 그 어떤 청춘을 향한 응원의 메시지보다 가슴 절절히 다가올 수 있었던 것은 현재를 살고 있는 평범한 청춘들과 다를 바 없는 신인 배우들 덕분이 아니었는지. 무엇보다도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는 재주를 통해 초심을 완전히 되찾은 곽경택의 변신이 반갑다.

미운 오리 새끼 곽경택 김준구 기적의 오디션 오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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