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왜 사람들은 김병만의 ‘쥐’ 애드리브에 열광하는가?

오페라 <박쥐>에 나타나는 ‘김병만’의 희극과 싸이의 ‘말춤’

12.11.30 11:29최종업데이트12.11.30 11:35
원고료로 응원

▲ 오페라 <박쥐> <박쥐>에서 김병만은 교도소장 프로쉬로 등장한다. 김병만이 암바를 걸면서까지 굴복시키는 상대는 사람이나 죄수가 아니다. 바로 ‘쥐’다. 쥐가 김병만의 젖꼭지, 심지어는 중요한 부위까지 물어뜯으며 김병만을 괴롭혀서다. 쥐 인형을 갖고 사투를 벌이는 달인 김병만의 모습은 찰리 채플린을 연상하게 만들면서 웃음을 자아낸다. ⓒ 국립오페라단


굳이 박찬욱의 복수 삼부작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요즘 스크린은 복수가 판을 치고 있다. 얼마 전에 개봉한 <나쁜 피>도 그렇고 <26년>이나 <돈 크라이 마미> 모두 복수를 먹고 사는 영화들이다.

이번에 국립오페라단이 선보이는 <박쥐> 역시 복수극이다. 아이젠슈타인은 가장무도회에서 술이 떡이 되도록 만취한 친구 팔케를 길거리에 내버려둔 채 혼자 귀가한다. 아침이 되었을 때 술을 같이 마시던 친구는 온데간데없고, 거리 사람들에게 따가운 눈총을 받게 된 팔케는 자기를 내버려둔 채 혼자 귀가해버린 아이젠슈타인에게 복수할 것을 결심한다.

하지만 안심하시라. 팔케가 아이젠슈타인을 향해 벌이는 복수극이 오페레타 <박쥐>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오페라 <룰루>처럼 심각하거나 유혈이 낭자한 방식으로 피칠갑하는 지경에는 이르지 않으니 말이다. 오페라가 아닌 '오페레타'다 보니, '심각한' 복수극 대신에 자기를 내버려두고 간 친구 아이젠슈타인에게 멋지게 한 방 먹이는 '유쾌한 희극'이 되는 셈이다. 참고로 오페레타는 무거운 비극보다는 경쾌한 '희극'을 선호하는 장르다.

이전부터 국립오페라단의 연출은 파격을 감행해왔다. 오페라 가사 가운데서 "엣지 있다" 혹은 "비아그라"라는 단어를 듣는 것도 그렇지만 어느 때는 영화 <남영동 1985> 마냥 '욕조 안 물고문'이 등장하는 신이 있기까지 했다.

이번 박쥐 역시 파격적인 연출이 눈에 들어온다. 첫 번째는 토착화(土着化) 작업이다. 연출이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 영국인 스티븐 로리스임에도 불구하고 독일어 가사 가운데 우리나라 대사를 삽입한다.

독일어 대사나 가사 중 간간이 들리는 "콩밥", "삼겹살", "김치"라는 한국어 대사는 기본이다. 2막에서 독일인인 아이젠슈타인과 형무소장 프랑크는 서로 프랑스 귀종인 양 행세하고 어설픈 프랑스 인사를 나눈다. 프랑크가 "봉수아"하면 아이젠슈타인은 "복숭아", 프랑크가 "메르시 보쿠"하면 아이젠슈타인은 "멸치볶음"으로 동문서답한다. 독일어에 우리말을 배치함으로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는 '대중 친화적'인 연출을 감행한 것이다.

스티븐 로리스의 파격 연출은 이뿐만이 아니다. 두 번째로 언급할 부분은 안무다. 2막과 3막에는 싸이의 '말춤'까지 등장한다. 아리아를 노래하던 성악가들이 갑자기 두 손을 마주 모으고는 싸이의 말춤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싸이의 영향력은 해외 빌보드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보수적인 오페라 무대에도 영향을 끼친다.

뮤지컬 가운데 몇몇 뮤지컬은 넘버보다 대사가 많다. 마찬가지로 <박쥐> 역시 아리아 가운데 대사가 다른 오페라보다 많이 섞여 있는 오페레타다. 그러하다보니 '달인' 김병만처럼 아리아를 단 한 줄도 못하는 개그맨도 오페라에 등장할 수 있었다. 달인 김병만의 출연은 오페라 <박쥐>의 세 번째 파격이다.

▲ 오페라 <박쥐> 엄숙주의의 대명사로 불리던 오페라 무대에서 쥐가 판치는 세상을 직설적으로 달인 김병만이 비판한다는 건, 그만큼 건강하지 못한 한국 사회의 병적 징후를 오페레타라는 흥겨움을 빌어 풍자로 비꼬는 걸 의미한다. ⓒ 국립오페라단


<박쥐>에서 김병만은 교도소장 프로쉬로 등장한다. 찰리 채플린을 연상케 하는 김병만은 술에 떡이 되다 보니 대걸레를 유럽의 미녀로 착각하고 '대걸레 미녀'를 꾀기 위해 함께 춤을 추고 키스까지 한다.

한데 관객이 폭소하는 지점은 이보다는 다른 장면에서였다. 김병만이 팔 관절 공격을 걸면서까지 굴복시키는 상대는 사람이나 죄수가 아니다. 바로 '쥐'다. 쥐가 김병만의 젖꼭지, 심지어는 중요한 부위까지 물어뜯으며 김병만을 괴롭혀서다. 쥐 인형을 갖고 사투를 벌이는 달인 김병만의 모습은 찰리 채플린을 연상하게 하면서 웃음을 자아낸다.

쥐를 가지고 페스티벌을 벌이는 건 쥐 인형과의 사투뿐만이 아니다. 김병만 연기의 압권은 '쥐 애드리브'다. 쥐가 판치는 세상임을 한탄하며 김병만이 말하는 '빼돌리쥐'는 저축은행의 부도덕성에 직격탄을 날린다. '언제 오쥐'는 선거철만 되면 상인과 시민에게 온갖 친한 척을 다 하다가도 정작 선거가 끝나면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표만 노리는 정치인의 작태를 숨김없이 희화한다.

수해현장에서 수해 복구를 돕기는커녕 삽 든 사진만 찍고 줄행랑치는 '찍쥐'도 빼놓을 수 없다. 소녀시대의 노래도 '쥐'비어천가의 대상으로 희화한다. 쥐 떼가 판치는 한국 사회를 소녀시대의 히트곡 '지(Gee)'에 빗대어 '쥐'라는 노래로 탄생한다.

한때는 쥐 포스터를 그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학강사가 기소되는 일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풍자가 대중에게 어필하는 시대가 되었다. 엄숙주의의 대명사로 불리던 오페라 무대에서 쥐가 판치는 세상을 직설적으로 달인 김병만이 비판한다는 건, 그만큼 건강하지 못한 한국 사회의 병적 징후를 오페레타라는 흥겨움을 빌어 풍자로 비꼬는 걸 의미한다. 김병만의 쥐 애드리브가 다른 어느 때보다 시의적절한 건 지금 이 시기가 5년을 좌지우지할, 대선을 앞두고 오페라 무대 가운데서 펼쳐진다는 점이다.

김병만 박쥐 국립오페라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