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어서와, 이런 '에반게리온'은 처음이지?

[리뷰] 시종일관 폭탄을 던지는 영화 '에반게리온: Q'…변화인가, 폭력인가

13.05.04 10:25최종업데이트13.05.04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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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반게리온:Q 포스터 ⓒ 씨너스엔터테인먼트, T-JOY


<오마이스타>는 스타는 물론 예능, 드라마 등 각종 프로그램에 대한 리뷰, 주장, 반론 그리고 인터뷰 등 시민기자들의 취재 기사까지도 폭넓게 싣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노크'하세요. <오마이스타>는 시민기자들에게 항상 활짝 열려 있습니다. 편집자 말

1995년,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의 원작인 TV판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TV도쿄에서 방영되었습니다. 사랑·용기·우정·열정 같은 강하고 굵직한 주제를 가진 기존 메카닉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또한 강한 금속 마찰음이나 폭발음과는 달리,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고독·소외감·인간에 대한 몰이해 같은 무거운 주제를 다뤘습니다.

생체 병기라는 설정으로 피가 튀고, 사지가 뜯기고 장기가 튀어나오는 장면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처음엔 이 황당한 설정에 미적지근한 반응이었지만, 회를 거듭하면서 조금씩 관심이 모아지더니 종영 후엔 재방영을 요구하는 여론까지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그 여파는 한국으로 넘어와 당시 '90년대 키즈'였던 1970~80년대생 사이에서 '에반게리온 신드롬'을 형성했고, <에반게리온>은 이전 세대의 <상실의 시대>와 같은 그들의 성서가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약 10여년이 흐른 뒤, 원작자인 안노 히데아키가 TV판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리부트 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이하 <에반게리온>)으로 20세기 당시, '신세기'를 의미하던 21세기가 도래했음으로 '신세기'라는 말이 빠졌습니다. 그리고 이 기획은 <서(序)><파(破)><급(急)> 3부작이었다가 4부작인 <서(序)><파(破)><Q(急의 일본식 발음 'きゅう')>, 그리고 마지막 <디카포>(추정)로 수정되었습니다.

'에바 신극장판', 비틀기 넘어 자기파괴

<에반게리온: Q> 스틸 컷 ⓒ GAINAX


<에반게리온>의 재미는 더 화려해진 액션과 영상미겠지만 무엇보다도 고전이 되어버린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재해석입니다. '떡밥의 제왕' JJ에이브람스보다 10년 앞선 '떡밥 감독' 안노 히데아키의 작품답게 작품 곳곳에선 원작과 이어진다는 떡밥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고, 주인공인 이카리 신지와 그의 주변인들의 성격, 관계, 지위가 조금씩 변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창출해냅니다. 즉 고전 비틀기가 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하지만 <에반게리온: Q>(이하 <Q>)를 향한 여론의 엄청난 반감은 비틀기를 넘어 전혀 딴 이야기를 만들면서 발생합니다. 부제인 Q가 Quickening(되살아나는)을 뜻한다고 하지만, 영화는 되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이전 육신을 완전히 비틀어 죽여 버리고 새로 태어난 수준이었습니다. 이것은 안노 히데아키가 <신세기 에반게리온>부터 <에반게리온: 파>(이하 <파>)까지 녹여놓은 자신의 철학마저 부셔놓은 꼴입니다.

결과론적으로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오타쿠 문화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이 되었지만, 실제 작품은 그 반대로 오타쿠를 비판하는 내용입니다. 주인공 이카리 신지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위시로 '고슴도치의 딜레마'로 인한 대인기피증이 있는 14살 소년입니다. 그런 신지에게 신지의 아버지는 끊임없이 에반게리온 초호기를 타고 사도와 싸우기를 요구합니다.

이는 숨거나 피하지 말고 세상과 맞서 싸워야한다는 메시지를 생산해냅니다. 이에 마지못해 신지는 생물학적 어머니인 유이의 영혼이 담긴 '초호기'를 타게 되고 사회학적 어머니로 비유되는 네르프 소속 카츠라기 미사토 소령(신극장판은 대령)의 도움으로 사도와 싸웁니다.

하지만 신지는 사도와의 싸움(혹은 대인관계)에 상처받게 되고 결국 세상을 리셋(reset) 시키는 '서드 임팩트'를 발동시킵니다. 그리고 그 서드 임팩트를 통해 "너와 나라는 구분으로 우리가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다면, 아예 하나가 되자"라는 의미로 지구의 모든 생물체를 태초의 존재로 환원시켜버립니다. 하지만 곧 아무도 없는 세상을 보며 후회합니다.

이런 메시지는 <서>와 <파>에서도 존재 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욱 더 강하게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신극장판에서는 놀라운 점은 신지가 조금은 능동적으로 아버지에게 인정받고자 행동하고 자기 스스로 삶을 개척하려는 본연의 변화입니다. 그 증거로 원작에선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하던 워크맨이 신극장판에선 아버지가 준 선물로써 아버지를 상징합니다. 이제는 아버지가 된 안노 감독의 바람이 담겨 있는 걸까요?

시종일관 폭탄을 던지는 'Q'

<에반게리온: Q> 스틸 컷 ⓒ GAINAX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Q>로 넘어오면서 와르르 무너집니다. 우선적으로 신지에게서 '~를 해야 한다'라는 메시지가 사라졌습니다. 히키코모리, 오타쿠 등 사회와 등지고 사는 이들을 향에 던지던 비판이 사라진 자리엔 신지와 관객을 향한 조롱이 가득 차버립니다.

전작 <파>에서 충격적인 결말로 끝냈지만 <Q>는 어떠한 설명도 없이 14년 후로 뛰어넘습니다. 영화의 시점은 14년 만에 눈을 뜬 신지에게 고정시켜, 변해버린 시대에 대한 모든 정보를 제한시켜버립니다. 인류가 사라진 지구와 반 네르프 조직인 뷔레, 그들이 이끄는 전함 분더. 이 모든 것들은 <파> 마지막 장면인 니어 서드 임팩트의 결과며, 모든 인물들이 신지에게 그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해야할 점은 어머니인 초호기마저 신지를 거부하고, 또 다른 어머니인 카츠라기 미사토 역시 신지를 거부한다는 점입니다.

초호기는 전함 분더가 되고, 미사토는 뷔레의 수장이 되어, 신지의 아버지가 있는 네르프를 공격합니다. 쉽게 보면 '부부싸움'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에 신지는 아버지를 택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닮아가며 비이성적 행동을 보입니다. 원래 신지가 갖고 있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변화가 발생한 겁니다. 어머니를 얻기 위해 아버지와 대립을 하고 그 대립으로 성장한 자식이 어머니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어머니에게 버려집니다. 그리고 어머니를 얻기 위해 아버지와 닮아갑니다.

4부작으로 바뀌면서 <Q>는 이야기를 종결시켜야 한다는 책임이 사라졌습니다. 헌데 그 유예기간동안 영화는 이야기가 갖춰야할 예의도 무시한 채 시종일관 폭탄들을 던져댑니다. 쉴 새 없이 터지는 폭탄들은 마지막 20분에 준비된 핵폭탄을 위한 겁니다. 그 폭탄들은 안노 감독 스스로 쌓은 기존의 에바 시리즈를 짓밟고, 주인공 신지(히키코모리, 오타쿠)를 움츠리게 만들었습니다. 관객 역시 1시간 30분짜리 폭탄을 맞고 나오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습니다.   

<파>에 발동된 서드 임팩트는 오타쿠들을 위한 서드 임팩트였습니다. 일반 관객 즉, 외부인들은 들어오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막아버리고, 안노 감독과 오타쿠만의 언어로만 제작된 영화입니다. 롱기누스 창, 카시우스 창, 인류보환계획, 아담스의 그릇, 리린의 자손 등등, 에반게리온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이들 뿐만 아니라, 90년대 에반게리온 키즈 내에서도 정보의 경계선을 그어버린 작품입니다.

'소통'이라는 신지를 향한 메시지는 이제 '변화'라는 메시지로 바뀌었습니다. "과거의 파괴를 받아들이고 미래의 새로움을 받아들여라" 아무리 안노 히데아키가 원작자라고 하지만, 원작자라는 이유로 이 많은 변화를 용납할 수 있을까요? 제 생각엔 이 모든 것은 '폭력'으로 보입니다. 오타쿠를 끄집어내려던 안노 히데아키, 허나 지금의 안노는 오히려 오타쿠를 양성하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새로 창조된 안노월드를 만들기 위해.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http://blog.naver.com/hoohoots)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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