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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진구의 눈물만 보는가, 더 큰 괴물이 있거늘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를 보고, <와이 : 부조리를 삼킨 아이> 시놉시스 짓다

13.10.17 11:51최종업데이트13.10.17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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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화이> 주인공 여진구가 해맑고 웃고 있는 장면. ⓒ 나우필름


꼬맹이 둘을 키우는 부부가 극장 나들이를 하기는 공룡이 단춧구멍 지나가기보다 어려운 일이다. 벼락 맞을 확률보다 좀 더 높은 그런 일이 오늘 오전에 벌어졌다. 남들 열심히 일하는 평일 오전에 쉰다는 건, 거기에다 조조 영화라는 감미로운 메뉴가 더해진다는 건,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삶이 가끔 주는 선물이다. 그렇게 로맨틱한 날에 혈흔이 낭자한 '폭력의 영화'를 보러가자고 선뜻 말 꺼내기 어려웠다.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주인공이였던 "여진구가 나온다네, 글쎄!"라는 낚시성 멘트를 던져보았더니, 순박한 아내는 별 의심 없이 냉큼 물어버렸다(영화 끝나고 욕을 바가지로 먹긴 했지만).

주말 누적 관객 백오십만 명 돌파, 초호화 캐스팅에다 천재 감독의 10년만의 귀환 등등 이 영화 <화이>를 장식하는 미사여구들이다. 사실 궁금하기도 했다. 다섯의 아버지 밑에서 자란 괴물 아이의 성장 과정과 결말. 뭐 전문 평론가가 아닌 이상 영화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내 영역이 아닌 것 같다.

장준환 감독의 어느 인터뷰에서의 말처럼 "영화 속에 숨은 것들을 찾아보는 분들에겐 양파 껍질처럼 파면 팔수록 나오는 영화였으면 한다"라는 말에 힘을 얻어 내 자신만의 허접한 칼과 손놀림으로 양파 껍질을 한번 파헤쳐 보기로 한다.

이 영화에서 말하는 괴물, 비정상적 능력 가진 이

아직도 봐야 할 분들이 더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하기에 스포일러 역할은 사양하고, 마지막 장면에서부터 나의 빈약한 상상력은 시작된다. 저격용 라이플을 담은 기타 가방을 메고 군중들 속으로 유유히 사라지는 열일곱의 아이. 누구의 말대로 저 아이는 괴물을 삼켜서 괴물이 되었을까? 아니면 그로 인해 괴물로부터 벗어났을까?

여기서 생각해 볼 문제 중 하나는 과연 이 괴물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는 것이다. 괴물의 사전적 정의는 괴상하게 생긴 물체, 좀 더 부연하자면, 사람의 입장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기이하게 생겼다고 보는 생명체를 말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말하는 괴물은 사전적 정의를 살짝 빗겨나간 비정상적인 능력을 가진 이를 뜻하는 것일 게다.

범죄자 아버지 다섯의 손에 길러진 괴물 아이. 다시 말해 이 영화에서의 괴물의 의미는 정상의 범주를 훨씬 뛰어 넘는 폭력성, 잔인함, 야만성, 파괴본능 등을 포함한 범죄성을 지닌 사람이다. 굳이 오지랖을 넓혀서 과연 악은 태어날 때부터 존재하는 것이냐, 만들어지는 것이냐의 성선, 성악설의 철학적 논쟁을 꺼낼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기에 최대한 괴물의 범위를 구체화 해 본 것이다.

또한 폭력성과 잔인함 등의 부정적 요소로 괴물의 범주를 묶어 놔야지만, 주인공인 화이에게 관객들이 몰입할 테니까. 정상적인 관객이라면 화이가 괴물에게서 벗어나 또래의 평범한 삶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라지 않겠는가?

화이의 마지막 뒷모습에서 내가 느낀 것은 만일 저 아이가 가지게 된 괴물 같은 능력을 폭력이 아닌 재력, 권력, 명예, 인맥 등 이 사회가 간절히 원하는 욕망의 분야로 폭을 슬쩍 넓혀 본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였다. 괴물에 대한 개념을 좀 더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 볼때, 우리 사회는 이미 스스로 괴물을 삼키고 괴물이 되어버린 사람들로 차고 넘치는데 말이다. 

어째서 그런 사람들에게 화이에게 바라는 연민이나 안타까움 대신, 존경과 부러움의 시선을 갖는지가 의문이었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정상의 범주를 넘어서는 욕망의 실현이 성공의 기준이고, 삶의 목표가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부패한 권력의 괴물을 아버지로 둔 화이... 더 큰 괴물될 것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 스틸 컷 ⓒ 나우필름


부패한 권력의 괴물을 아버지로 둔 화이는 우리가 원하든 원치않든, 제 스스로가 권력의 괴물이 되어 거침없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으며, 엄청난 부의 괴물을 아버지로 둔 화이는 그 재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더 큰 괴물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쓸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다만 폭력성과 피해 의식, 극악무도함 등의 괴물을 아버지로 두었기에, 영화 속 화이가 부디 괴물의 길을 택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일 뿐인 것이다.

그랬구나. 기형적 역사에 의해 괴물로 커버린 정치권력, 언론, 재벌, 지역감정, 빈부 격차 등등에 대해서는 느끼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으면서, 그저 스크린 속 범죄의 괴물로 성장한 화이의 뒷모습에는 안타까워하는구나. 친일의 세력들이 괴물로 성장하여 독립 유공자들의 자손을 등쳐먹고 있는데도, 그저 화이의 눈에 고인 눈물에만 관심이 있구나.

괴물이 되고 싶어 안달이 난 사회에 함께 숨 쉬며 살고 있으면서도, 누구 하나 그건 잘못된 것이라고 지극히 상식적인 말 한마디 하지 못하는구나. 내가 괴물이 되면 더 이상 괴물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닌, 내가 괴물이 되어 다른 사람들이 나를 괴물로 보고는 머리 조아리길 원하는 세상 속에서 우린 살고 있구나.

여기까지 미친 나의 상상력은 급기야는 메가폰을 잡더니만, 이내 속편을 머릿속에서 찍어나가기 시작한다. 전작의 흥행에 힘입어 새롭게 탄생한 화이의 속편, 와이. 전작보다 방대해진 스케일과 탄탄한 스토리가 당신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영화제목: 와이(why), 부조리를 삼킨 아이.
시놉시스.
다섯 명의 아비를 둔 아이, 와이. 군부 출신 독재자, 친일 후손 국회의원, 경찰 고위간부, 대기업 총수, 언론사 사장을 아비로 둔 와이의 엄마는 시내 모처 요정의 특급 기생이었던 명월이.

누구의 씨앗인지 본인만 알 수 있는 아이를 낳다가, 명월이는 그만 명을 달리하고, 평소 끔찍하게 명월이를 아끼던 다섯의 아비들은 서로 자신의 아이일 거라는 착각 속에 아이의 교육을 나누어 맡기로 한다.

다섯의 아비들이 질투에 사로잡혀 일을 그르치지 않았던 것은 그 바닥은 한 다리만 건너면 대부분 친인척 관계로 묶이기 때문이었다는데…(사돈 지간에 씨 문제로 얼굴 붉힐 순 없지 않은가, 쪽팔리게).

각각의 아비로부터 한번 배운 것은 바로 흡수해버리는 와이는 파시즘의 철학, 정치꾼의 야비함, 고위 권력층의 줄서기 및 복종, 재벌 몸집 불리기, 여론 조작 등의 고난이도 스킬을 습득해가며 날이 갈수록 성장해 나간다.

어느 순간 아비들의 능력을 뛰어넘는 괴물이 된 와이는 뿌려 논 세작들에 의해 어미의 출신을 알게 되고, 미천한 신분인 자신의 근본을 원망하다가 그 화살을 아비들에게 돌리기 시작하는데.

와이, 부조리를 삼킨 아이.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끝으로 석태(김윤석 분)의 대사인 "애비들이 괴물이면 너도 괴물이 되야지!"를 살짝 비틀어 보며 글을 마무리한다.

"애비들이 썩었으면, 너도 썩은 물에서 놀아야지, 너만 맑게 살 수 있을 것 같냐?"

이런 사회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요즈음….

화이 부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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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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