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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인 박연은 왜 조선을 떠나지 못했을까?

[박정환의 뮤지컬 파라다이스] '푸른 눈 박연' 이란영 연출가 인터뷰

13.11.01 17:08최종업데이트13.11.01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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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푸른 눈 박연> ⓒ (재)서울예술단

얀 얀스 벨테브레라는 네덜란드 사람이 조선시대에 있었다. 오늘 소개하는 뮤지컬 <푸른 눈 박연>의 주인공이다. 하멜은 조선을 떠났지만 박연은 조선에서 평생을 살면서 조선 여자와 결혼하여 아이까지 가진 서양인이었다.

그는 우리나라의 국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서양인이다. 병자호란의 승자인 청나라는 조선이 대포를 만들지 못하도록 했다. 하지만 조선에 대포를 만드는 제조법을 가르쳐 준 이가 박연이다. 벽안의 서양인이 자주 국방에 일익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뮤지컬 <푸른 눈 박연>의 이란영 연출가를 지난 달 25일 예술의 전당에서 만났다.

- 시대적인 배경에 주안점을 두는가, 아니면 당시 인물에 역점을 두고 연출을 시도하는가?
"대본이 있는 상태에서 연출을 제의 받은 게 아니다. 박연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를 함께 생각하며 작업했다. 우리가 잘 아는 하멜은 박연보다 27년 뒤에나 표류되는 사람이다. 하멜은 조선을 떠났지만 박연은 조선에서 아이를 낳고 정착했다. 그가 왜 조선을 떠나지 않고 살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다. 사료를 보면 박연은 조선에 엄청난 적응력을 보였다고 한다. 조선 사람의 정 때문에 끌린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 현재 우리나라는 국사가 필수가 아닌 선택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다보니 20~30대 관객에게 어필하려면 역사적인 배경을 어렵지 않게 접근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했을 것 같다.
"역사적으로 접근하면 박연이라는 사람의 사연이 사라지고 만다. 박연을 역사 속 인물로 반영하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그렇다고 역사적인 사건을 다루지 않으면 극적인 영향력이 사라진다. 조선을 왜 떠나지 못했을까 하는 박연의 마음에 중점을 두었다. 여기에 주안점을 두고 뮤지컬을 끌어가는 게 어렵다.

당시 조선은 대포를 수입했다. 강대국이 만들지 못하게 해서다. 조선의 힘이 커지는 걸 청은 바라지 않았다. 당시 박연은 조선에 엄청난 혜택을 가져다준 인물이다. 수입하던 대포를 박연 덕에 만들 수 있었다.

이 점 외에는 역사적인 부분보다 인물의 내면에 중점을 두고 만들었다. 왕 역시 역사적인 사건을 제공하는 인물이 아니라, 박연과 친구가 되어주고 박연을 조선에 남게 만들어주는 정신적인 지주가 된 인물로 그리고자 한다."

<카르멘> 아르바이트 계기로 배우 생활하다가 연출자로

뮤지컬 <푸른 눈 박연>의 이란영 연출가를 10월 25일 예술의 전당에서 만났다. ⓒ 박정환


- 서울예술단 배우들의 열기가 연출가의 입장에서는 어떤가.
"3년 동안 서울예술단 단원으로 있었다. 단원으로 있을 당시 행복했다. 지금은 배우와 배우의 만남이 아니라 연출가와 배우의 입장에서 만나는데 너무나도 열정적으로 작품 연습에 임하고 있다. <잃어버린 얼굴 1895>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푸른 눈 박연>이라는 새로운 작품을 하는지라 연출가의 입장에서는 배우들이 모든 걸 전작에 쏟고 작업하는 것이 안쓰럽지만 그럼에도 열정적으로 연습해 주기에 배우들에게 감사한다."

- 필모그래피를 보면 큰 전환점이 두 번 보인다. 하나는 발레를 하다가 뮤지컬 배우로 전향하고, 안무가를 하다가 연출가로 진로가 바뀐다.
"대학생 때 뮤지컬 <카르멘>에 아르바이트로 출연한 게 뮤지컬에 푹 빠진 계기가 됐다. <카르멘>을 하고 15만원을 받을 정도로 당시 뮤지컬 개런티가 많지 않았지만 너무나도 행복하고 좋았다. 배우 생활을 하다가 전문적이고 깊게 무언가를 해야 할 시기가 다가왔고, 제 분야를 깊이 연마하기 위해 영국으로 떠났다.

당시에는 안무가와 연출가를 병행하고 싶었다. 외국은 안무가가 연출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귀국하고 보니 우리나라의 풍토는 안무가와 연출가를 분리하는 경향이 있었다. 안무가의 길을 걷다가 제가 하고 싶은 연출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연출가의 길을 걷고 있다."

- 연출가는 작가의 상상력을 무대에서 관객에게 어필해야 하는 어려운 자리가 아닌가.
"안무가로서 한 작품을 할 때마다 제 안목이 성장했다. <푸른 눈 박연>으로 네 번째 연출이다. 연출할 때마다 관객과의 소통에 한 발자국씩 다가간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관객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관객과의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박연이 느낀 당시 조선의 유쾌함과 아름다움을 관객이 함께 느꼈으면 한다. 우리나라의 장점을 어필하고 싶다. 대신 조선의 나약함이나 슬픔, 아픔과 같은 부분은 도려내고 싶었다.

네덜란드 사람 박연을 아픈 사람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으로 그리고 싶다. 행복한 박연을 보면서 관객도 행복해지는 경험을 했으면 한다. 관객이 박장대소를 할 만큼 최대한 재미있게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박연이라는 유럽인이 동양 문화에서 겪는 적응기이자 동시에, 조선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에 초점을 맞추는 등의 장면을 재미있게 만들고자 노력했다."

푸른 눈 박연 이란영 하멜 뮤지컬 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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