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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질라' 혹시나 했다...그러나 역시나 실망

[영화리뷰]역대 거대 괴수 영화의 '실패의 전철'을 그대로 밟았다

14.05.18 12:51최종업데이트14.05.20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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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질라' 포스터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오마이스타>는 스타는 물론 예능, 드라마 등 각종 프로그램에 대한 시민기자들의 리뷰나 주장을 폭넓게 싣고 있습니다. 물론 그 어떤 반론도 환영합니다. 언제든지 '노크'하세요. <오마이스타>는 시민기자들에게 항상 활짝 열려 있습니다. 편집자 말

혹시나 하는 기대는 역시나 하는 실망으로 끝났다. 최근 개봉한 <고질라> 얘기다. <고질라>가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설렘이나 기대가 없었다. 지금껏 봐왔던 블록버스터급의 거대 파충류 괴수 영화들을 떠올려보면 영화적 깊이는 고사하고 상업영화로서의 재미라는 최소한의 미덕마저도 포기한 영화들에 대한 기억이 많았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예로는 진중권이라는 스타 인문학자를 탄생시킨 MBC <100분 토론>의 명장면 – "(남녀 주인공 헤어지는 게) 슬프지가 않으니까 용이 대신 울고 지나가더라구요"를 있게 한 국산 블록버스터 괴수 영화 <디워>가 있다. 좀 더 멀리는 1998년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졌던 <고질라>가 있다. 당시 고질라 몸 크기와 비교하면 발이 너무 작다느니, 고질라가 강물에 뛰어들어도 고작 물이 저것밖에 안 튀는 게 말이 되느냐느니 하는 희한한 과학 논쟁으로 흐르다가, 종국에 개봉했을 때는 흥행에 참패했다. 나름 괜찮은 괴수영화 중에는 <미스트>와 <클로버필드>가 있었지만, 이 둘 모두 전형적인 거대 괴수 블록버스터라고 하기에는 스릴러적 요소가 영화 전반에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선입견에도 불구하고 리메이크작 <고질라>의 예고편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자연재해를 연상시키는 위압적이고 불가항력적인 고질라의 모습과 여기에 압도되어 웃음기 가신 절망감에 절어 있는 주인공들의 표정은 웰메이드 괴수영화가 탄생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하게 했다.

실제로 영화의 초반부까지는 밀도 있고 심각한 전개를 보여준다. 고질라와 뮤토 등의 거대 괴물들은 지구의 방사능 수치가 지금보다 훨씬 높았던 시절에 살았던 고대의 포식자이다. 지구의 방사능 수치가 줄어들자 맨틀 밑의 핵 근처로 들어갔고, 한동안 인간과 만날 일이 없어졌다. 그런데 현대문명이 핵을 사용하여 발전소를 돌리고 무기를 만들자, 방사능을 찾는 괴물들이 슬슬 육지로 기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핵발전소, 핵무기라는 민감한 사회적 이슈를 거대 괴수의 설정에 녹여내는 솜씨가 좋다. 또 극 초반에 주인공의 부모가 방사능을 찾으러 온 뮤토에 의해 일본의 핵 발전소에서 사고를 당하는데, 이는 2011년에 있었던 동경대지진 때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관객들 뇌리에 오버랩시킨다.

<고질라>는 잘만 하면 방사능 문제와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잔상 위에서 그럴듯하고 멋진 괴수영화가 될 수 있었다. 핵과 방사능에 대한 진지하고 무거운 사회적 물음을 던지면서도 할리우드의 웅장한 CG로 관객들의 혼을 빼놓는 영화일 수 있었다. 2010년작인 50만 달러짜리 저예산 영화 '몬스터즈'(Monsters)로 BIFA(British Independent Film Awards)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감독 가렛 에드워즈(Gareth Edwards)의 경력을 상기해 볼 때 전혀 무리한 기대가 아니었다.

영화 <고질라>의 괴수 고질라.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그러나 어느 것도 실현되지 못했다. 극 종반으로 갈수록 분위기는 할리우드의 흔한 가족애로 점철된다. 주인공 포드와 일본에서 처음 조우한 뮤토는 그 많은 미국의 해안 도시 중 하필 포드의 가족이 사는 샌프란시스코까지 날아가 고질라와 난장을 벌인다. 가족을 구하는 포드의 분투를 그리고 싶은 감독의 의도는 이렇게 이야기의 개연성을 증발시키며 관철되었다. 또 인류의 적 뮤토와 싸우고 사람들의 박수갈채 속에 유유히 사라지는 고질라는 영락없이 착한 용가리의 모습이다. 심형래의 <용가리>에서 막판에 정신 차리고 나쁜 괴물과 싸운 그 용가리 말이다.

고질라와 뮤토의 거대한 크기는 볼만하지만 이 둘이 맞붙는 신은 둔중한 움직임 때문에 박진감이 떨어진다. 결국 괴물간의 육탄전은 덩치들의 지루한 레슬링이 되어버렸다. 차라리 <퍼시픽림>에서 카이주와 예이거가 대결하는 장면이 훨씬 낫다. <고질라>가 상업영화로서 관객들에게 줄 수 있는 영화적 재미마저 실패하는 순간이다.

안전한 흥행공식을 무리하게 외삽하며 간섭한 제작사의 입김 때문이었든, 갑자기 거액의 프로젝트를 수주한 감독의 흥분이 낳은 조급함 때문이었든, 무엇이 원인이었든 간에 <고질라>는 이렇게 역대급 거대 괴수 영화의 전철을 충실히 밟아주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제 블로그 http://blog.naver.com/pellicks513 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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