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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진 지워줘"...당신에겐 잊힐 권리가 있나요?

[TV리뷰] 'SBS 스페셜' - '나를 잊어주세요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회' 편

14.07.21 14:34최종업데이트14.07.21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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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스페셜 > '나를 잊어주세요.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회'의 한 장면. ⓒ SBS


올 상반기 인터넷과 관련된 가장 큰 이슈는 바로 인터넷 세상에서 '잊힐 권리'에 대한 것이다.

물밑에서 논의되던 이 화두가 수면 위로 급부상된 계기는 지난 5월 13일 유럽 사법 재판소(ECJ)가 내린 '잊힐 권리(right to be forgotten)'에 대한 판결이었다. 스페인 변호사 마리오 곤잘레스가 자신의 압류 주택이 경매에 넘어간다는 1998년 신문 기사가 여전히 검색을 통해 나온다며 포털사이트 구글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재판소가 '삭제' 판결로 '잊힐 권리'의 손을 들어 주었다.

< SBS 스페셜 >은 이와 관련해 '나를 잊어주세요.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회' 편을 20일 방송했다. 우선 다큐가 제기하고 있는 것은 마리오 곤잘레스와 관련된 '디지털 주홍글씨'의 피해자들이다. 남자 친구가 몰래 찍은 성관계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출된 27살의 권영진(가명)씨는 평범한 여성이다. 하지만 한번 유출된 동영상은 수십 개의 사이트로 퍼 날라졌고, 이제 그녀는 일상생활을 영위하기조차 힘들게 되었다.

결혼 후 이혼한 임혜진(가명)씨는 이혼한 전 남편이 올린 자신의 과거 사진 때문에 고통을 받고, 결혼 경력이 있는 연예인 A씨는 자신의 결혼 사실만이 남아있는 인터넷 기록 때문에 이혼한 지금도 그 누구를 만날 수가 없다.

청소년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이미 미국에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섹스팅(Sexting·음란한 내용의 글이나 사진을 주고받는 채팅)'이 우리 사회에서도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호기심에, 혹은 사귀는 사이라 안심하고 올린 자신의 사진이 다수의 사람들에게 유포되거나 협박의 빌미가 되었을 때,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 청소년은 '죽음'까지 이르게 되는 경우도 있다.

'잊힐 권리'와 '알 권리'의 충돌

감당하지 못한 자신의 기록에 대해 개인들은 삭제를 시도한다. 하지만 무한 복사가 가능한 인터넷 세상에서 개인은 수없이 증식되는 자신의 기록에 거의 대부분 백기를 들고 만다. 그래서 이들을 대신하는 '인터넷 기록 삭제' 업체가 있지만, 그 대표는 말한다. 처음 1년, 그리고 다음 또 1년, 집중적인 삭제로 기록은 점점 줄어들기는 하지만, 혹시나 개인의 하드에 소장되었을지도 모르는 기록에 대한 싸움이 어쩌면 평생 걸릴 수도 있다고.

평범한 시민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자신들의 인터넷 기록에 대해 자신한다. 하지만 '구글링(구글로 정보를 검색하는 것)' 등을 통해 참가자들의 기록이 나열되었을 때, 대부분 그들은, 기록된 자신의 흔적 중 상당수를 지우고자 했다. 7월 20일 방영된 <1박2일>의 한 선생님처럼, 대학 시절 별 생각 없이 쓴 인터넷 댓글이 그의 예능 프로그램 참가를 계기로 '검증'의 부메랑이 되어 날아올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인이 원한다면 그의 인터넷 기록은 무조건 삭제되어야 할까?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우선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잊힐 권리'와 '알 권리' 사이의 충돌이다. 즉 개인과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존재의 충돌인 것이다. 개인의 신상에 대한 자의적 삭제는, 또 다른 면에서 한 개인의 과거사에 대한 윤색이나 왜곡의 우려가 있다고 다큐는 말하고 있다. 실제 유럽 사법 재판소의 판결이 있자, 미국 커뮤니케이션 협회는 이런 결과가 '정치인이나 무엇을 숨기려는 사람들에게 악용될 우려가 높다'고 성명을 냈었다.

그와 관련하여 다큐가 주목하는 것은 인터넷 공간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른바 '블라인드' 처리다. 특정 사이트에 게시된 글에 대해 신고가 들어 올 경우, 그 글을 삭제하거나 가리는 처리를 하는 관행을 말한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사이트가 그 신고 내용을 판단치 않고 신고 여부만으로 무작정 블라인드 처리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그로 인해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는 경우가 있으며, 이런 관행을 잘 아는 혹은 이런 관행을 조직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기업이나 연예인들의 기획사가 이를 자의적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실제 우리나라에서는 다음,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에 명예 훼손을 이유로 삭제를 요구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그런데 지난 국정 감사 기간 동안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이 요청을 한 상당수가 정치인들이라고 하니, '알 권리'의 우려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측면이다.

< SBS 스페셜 >은 개인의 모든 정보가 무한한 공간 안에서 확장해 나갈 수 있는 인터넷이란 공간 속에서 잊힐 권리와 그 이면에 숨겨질 수 있는 알 권리에 대해 설명했다. 유럽 사법 재판소의 판결 이후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면서 수면 아래에서 쉬쉬하며 문제시되고 있던 디지털 주홍 글씨에 대해 사례를 들어 그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였다. 결국 개인의 사적 공간을 뛰어넘은 또 하나의 세계로서 인터넷 세상, 그 권리와 한계의 딜레마에 대한 고민을 균형적으로 담고자 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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