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외화 번역에 대한 오해, "내용만 전달하면 끝이라고요?"

[인터뷰] 윤혜진 번역가 "자막도 영화, 을들의 활약 기대하라"

14.11.02 12:31최종업데이트14.11.02 12:31
원고료로 응원

외화 번역가 윤혜진씨가 24일 오후 서울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이선필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극장의 블록버스터든 로맨스든 우린 자막을 통해 내용을 이해한다. 영화가 끝나고 등장하는 번역가의 이름을 무심코 지나치기 일쑤지만 이들을 통해 영화의 특징이 더욱 배가된다는 사실. 

외국어 좀 한다는 시네필(영화광)들은 종종 원래 대사와 번역을 비교하며 흠을 짚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중립적인 비판은 없다. 영화 자체가 취향을 타듯 번역 역시 각자의 취향이 강하게 반영되기에 객관적인 비판은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라스트 베가스> <로마 위드 러브> <블루 재스민> 등 100여 편 이상의 외화를 맡아온 윤혜진 번역가가 자막에 대해 말했다. "영화 평론과 달리 영화 번역은 외국어만 좀 잘하면 아무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외화 번역 역시 수많은 마케팅 회의를 통해 나온 결과물입니다!"

내용만 전달하면 끝? "자막도 영화 일부분이에요"

ⓒ 이정민


"영화와 영어가 너무 좋다"는 윤혜진 번역가는 분명 범상치 않았다. 중학생 시절 남들 놀 때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 <미녀와 야수> 등을 천 번 넘게 보면서 대사를 줄줄 외우고 다녔단다. 영화광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터에 삶에서 그것을 떼어 놓을 수 없었고, 성인이 되어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게 됐다.

2004년 OCN과 캐치온 등 케이블 채널에서 미국 드라마 등을 번역하기 시작해, 2010년 극장 영화 번역도 함께하고 있다. 특유의 따뜻한 감성과 유머로 주로 로맨틱 코미디나 드라마 영화를 맡았단다. 특히 우디 앨런 감독 작품과의 인연이 깊다. "대사가 많은 우디 앨런 감독의 작품 특성상 관객에게 말의 재미를 최대한 극대화해 전달하는 게 유효했던 거 같아요"라며 윤혜진 번역가는 나름의 영업 비밀 하나를 공개했다.

"케이블 작품을 할 땐 오역이나 맞춤법에 신경을 썼는데 극장 영화는 아무래도 마케팅이 중요하더라고요. 관객 입장에서 원하는 걸 읽고 충분한 회의를 거쳐 번역 방향을 정해요. 최근 맡았던 프랑스 영화 <컬러풀 웨딩즈>도 불어, 영어 스크립트를 함께 보면서 번역했는데 마케팅팀에선 최대한 재밌게 해달라는 요구가 있었답니다.

영상 번역가를 단순히 내용을 전달하는 사람 정도로 아시는데 사실 자막의 효과와 예능성을 잘 아는 사람이 번역가예요. TV에 나오는 많은 예능 프로그램에 자막을 쓰는 이유와 같죠. 극장에서도 그런 점을 사용하려는 경향이 있는 거죠."

언어적 감각과 함께 담당하는 작품에 대한 이해도, 관객들의 정서 등 고려해야 할 게 많아 보였다. 어찌 보면 영상 번역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인 셈이다. 윤혜진 번역가는 "그럼에도 자막이 단순한 내용 전달을 넘어서는 걸 많이 싫어하는 분도 있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영상 번역에 대해 좁은 생각을 가지신 분도 그렇지만 과도하게 마케팅 면만을 고집하는  생각 또한 문제가 있어요. 일부 회사는 오버를 해서라도 관객을 모으라 요구하는데 사실 영화가 안 좋은데 자막으로 살리라고 하면 힘 빠지죠."

"갑이 아닌 을들의 유쾌한 반란 꿈꾸고 있어요"

외화 번역가 윤혜진씨가 24일 오후 서울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사람 간에도 인연이 있듯 윤혜진 번역가는 "번역을 맡을 때도 내 영화다 싶은 작품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건 내 것이다 싶을 때 마법처럼 오는 영화가 있다"며 윤 번역가는 "<유아낫 유>, 그리고 <투 마더스> <블루 재스민> <컬러풀 웨딩즈> 등도 돌고 돌아 내게 들어왔다"고 말했다.

"언급한 작품들이 영화적 감성만으로는 한국 관객에게 생소해서 양념이 필요하거든요. 그걸 제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여러 유행어를 종종 쓰는 편인데 사실 비판도 좀 받긴 해요(웃음). 이미도 선생님 이하 지금 박지훈, 성지원, 홍주희 님 등 여러 번역가분들이 활동 중인데 의역으로 치면 이미도 선생님 때가 더 많긴 했어요. 대신 욕을 좀 순화하거나 대사들을 점잖게 번역했던 때였죠.

요즘엔 디지털 기술의 변화로 자막은 점점 짧게 하는 편이에요. 게다가 다들 영어를 잘하니까 번역가의 영어 실력도 많이 비판 대상이 되곤 하죠. 욕이나 비속어도 대부분 솔직하게 담는 편이고요. 아무래도 SNS가 발달하다 보니 실시간으로 관객들 반응도 신경 쓸 때가 많아요."

자기 일에 대해 차분히 자신감 있게 말하던 윤혜진 번역가였지만 "여전히 한국 영화 시장에서 영상 번역가는 을 중의 을"이라며 "일부 수입사에서는 번역료를 제때 주지 않기도 하고, 그만큼 전업으로는 자리 잡기 힘든 구조"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래서 윤혜진 번역가는 새로운 포부를 갖고 도전을 시작했다. '제인앤유'라는 수입사를 직접 차렸고, 영화사 '디씨드'와 함께 최근 <투와이스 본>을 수입해 개봉을 추진했다. 페넬로페 크루즈가 열연한 드라마로 지난 30일 개봉해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저도 이 시장에서 나름 자리를 잡은 편인데 이렇게 어려움이 많은 걸 보면 다른 번역가들은 더 힘든 현실이죠. 수입사와 함께 영상번역아카데미를 운영 중인데 그간 쌓은 노하우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원래 번역하는 분들이 정적이고 혼자 있길 좋아하는 성향인데 동시에 영화에 대해서 누구보다 박식한 분들이거든요.

제가 강조하는 건 이런 분들이 현장에 나와서 많이들 일했으면 하는 거예요. 가르치는 제 학생들도 열정을 갖고 영화 수입도 하고 시나리오도 쓰면 이 판을 바꿀 수 있는데 큰 힘이 되지 않을까요? 영화 수입을 하기 시작한 것도 왜 '항상 을인가, 직접 할 수도 있잖나'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그는 을들의 활약을 꿈꾸고 있었다. <투와이스 본> 이후 윤혜진 번역가가 맡은 작품은 일본 영화 <고양이 사무라이>와 <백설 공주 살인 사건> 등이다. 차근차근 자신의 일을 하면서 도약을 준비 중이었다.

외화 번역가 윤혜진씨가 24일 오후 서울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외화를 사랑하는 관객들에게..."

외화를 접하는 관객들에게 윤혜진 번역가가 전하고픈 말이 있었다. 바로 자막의 중요성이었다. "영화에 따라 자막이 작품을 죽여야 하는 게 있고, 반대로 살려야 하는 게 있다"며 그는 "관객 입장에서 자막에 대해 무조건 비판하기 전에, 영화의 특성에 대한 판단부터 해달라"고 말했다.

"관객 분들이 외화를 보면서 자막의 역할을 생각해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가 될 거예요. 감성은 살리고 있는지, 재치는 어느 정도 인지 말이죠."



윤혜진 투와이스 본 외화 번역 극장 번역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