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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파이터의 아름다운 분투기

지체장애를 딛고 격투기에 도전한 어느 파이터의 이야기

14.11.29 21:27최종업데이트14.11.29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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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희 동영상 소규모 대회 영상입니다. ⓒ 배동일


지난 달 25일. 그래플링 대회가 열린 서울 신림동의 한 체육관. 77kg급 예선 첫 경기 승자가 결정되자, 지도자인 유우성 관장(유짐 팀파시)이 갑자기 매트 위로 올랐다.

"솔직히 준희는 일반인과는 다르지만 항상 밝고 자유롭게 운동하는 친굽니다. 체육관 하면서 본 관원 중 제일 열심히, 또 멋있게 사는 친구 중 한 명 입니다."

작은 대회장. 지체장애를 안고 남들과는 다른 손과 발로 일궈낸 승리에, 관중들은 김준희(26, 유짐 팀파시)를 향해 아낌없이 박수 갈채를 보냈다. 최종 체급 3위에 입상한 김준희는 분명 여느 우승자 못지않게 눈길을 끄는 선수 중 하나였다.

인터뷰를 시작하자 "공개적으로 말할 위치에 있는지, 또 내 이야기가 재미있을지 모르겠다"며 머리를 긁적였지만, 자신감 있는 눈빛은 홍대를 걸어다는 20대 중반과 다를 바 없었다. 선천적 장애가 격투기를 선택한 중요한 동기였다는 점을 설명하는 진솔한 대답에서 그의 자존감을 읽을 수 있었다.

"학교 가면 싸움 잘 하는 친구들은 카리스마도 있잖아요? 주위에 여자도 많고요. 그런 원초적 욕구 때문에 운동을 시작했던 게 가장 컸죠.(웃음) 남자로서 강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있잖아요. (게다가) 스스로 열등감이 많아서... 그렇다고 열등감이 있는 채로 사는 것은 너무 억울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컸어요."

중학생 때부터 킥복싱 체육관을 드나들던 그가, 본격적으로 격투기 매력에 빠져들게 된 것은 5년 전 고향인 온양에 위치한 김세기 킥복싱 짐의 문을 두드리면서 부터다. '글러브 착용에 지장이 없느냐'고 묻자 "복싱 글러브는 괜찮다"며 과거 입식 타격 경기를 복기했다.

"도장에서 다들 칭찬해 주셔서 경기에 참여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쉽지 않더라고요. (상대편이)발이 불편한 점을 알고 특별히 복싱룰로 진행했는데 무참히 졌죠(웃음)"

이후 서울로 터전을 옮기고 나서부터는 주짓수와 종합격투기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접한 기간은 길지 않았지만, 열정과 관심은 여느 관원 그 이상이었다.

"'누구도 얕보지 않을 만큼 강해지리라'생각하고 운동을 시작했죠. 처음에는요.(웃음) 그런데 이제는 어떤 목적이 있어서라기보다 재미있어서 운동을 한다. 주짓수가 무엇보다 재밌더라고요. 어느 날 친구들이 '너는 운동할 때가 가장 행복해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앞으로도 기회가 닿는 한 경기에도 출전하고 싶고요"

하지만 김준희 그 자신 역시 '삼포시대' 한 가운데를 걷고 있는 20대 중반의 청년이었다. 홀로 서울에서 식당일을 하며 좁은 자취방 생활을 하는 그의 생활도 결코 경제적으로 윤택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보증금만 지원을 받자'고 생각하고 올라왔다"면서 "일 때문에 운동 시간이 나지 않아 오전 훈련에만 참여하고 있습니다만 '20대까지는 하고 싶은 것 다 해보고, 30대부터는 생업에 매진하자'고 계획했기 때문에 괜찮다"며 소박하게 웃었다. 틈틈이 독일어 공부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도 전공(재활심리)을 살리기 위해서라고 귀띔했다.

운동을 통해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묻자, "보이지 않았던 정신적 상처가 더욱 컸던 것 같다"면서 마지막 말을 이었다.

"앞서 말했듯 처음에는 움츠러드는 게 몸이 약해서였다고 생각했었어요. 운동을 하게 된 이유도 그 때문이었고요. 물리적으로 강해지고자 노력을 많이 했죠. 그런데 요즘에는 정신이 문제였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몸도 건강해지고 운동도 많이 하는데, 내 콤플렉스는 완전히 치유되지 않더라고요.

혹시라도 저와 비슷한 장애를 안고 있는 친구가 있다면, 그래서 운동을 할지 말지 혹은 어떤 계획을 실행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중이라면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생각 멈추고 행동하시라'고요. 운동을 많이 해서 육체적으로 건강해 지는 것만큼이나, 정신적 안정도 중요하거든요. 생각이 많아질수록 우울해지고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겁도 많아지고요. 대인-이성관계에서도 움츠러들기 마련이거든요. 장애물이 놓이면 직접 맞부딪혀 보는 게 답이 아닐까 싶습니다. 당신의 욕망과 소망대로, 행동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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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체장애 파이터 김준희 격투기 장애인 주짓수 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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