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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의 시대, 월스트리트를 잊지 마세요

[영화 리뷰] <인사이드 잡>, <마진 콜>, <투 빅 투 페일>

14.12.28 14:17최종업데이트14.12.28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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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정말이지 간사한 동물이다. 중요한 일도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면 금세 잊어버리고 만다. 물론 그것이 도덕적으로 부당하다고, 잘못되었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러한 무관심은 결국 큰 대가로 언젠가 다시금 돌아온다. 자신은 잘 모른다고, 자신은 그 일과 관련 없다고, 부정을 시정하는 데 참여하지 않고 방치한다면 그러한 일들이 있었다는 것조차 잊을 때쯤 당신은 그들에 잡아먹힐지도 모른다.

금융위기가 월스트리트를 덮친 지도 어느덧 6~7년 가량이 흘렀고, 많은 사람들이 이제 그 시간들을 서서히 기억 속에서 지워가고 있다. 어떻게 하면 그런 파국이 재발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을지를 논하던 정치인들, 학자들, 관료들은 이제 경제부양과 같은 상당히 외적인, 파생적인 주제들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본질적인 문제에서는 거진 모두가 눈을 돌려 버렸다. 불편해 하고 있다.

영화 <인사이드 잡> <마진 콜> <투 빅 투 페일>, 금융위기 직후 제작되어 강력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대표적인 세 작품들은 강력한 '경고의 기억', 혹은 그 창고와 같은 존재들이라고 생각된다. 왜 우리들은 실패했고, 월스트리트는 공황에 빠졌으며,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를, 하지만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는가를 말하는. 불편하고, 불만스러우며, 짜증날 수도 있는 기억들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마주해야만 한다. 그리고 바로 알아야만 한다. 지난 수십 년간 수많은 일상들을 만들어오고 일순간에 이를 파괴한 힘이 무엇인지 알고, 다시금 이에 당하지 않기 위해서.

<마진 콜>. 금융위기 이전, 월스트리트에 일하는 이들은 어떻게 막대한 부를, 지위를 창출해 내었을까?


월 스트리트, 그 막대한 부 이면의 무지

세 편의 영화들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충격은 바로 '거대한 무지'다. 월스트리트는 엄청난 호황을 누릴 당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선진적인 전자시스템들과 이를 개발, 관리, 운영하는 우수한 인력들을 자랑했다. 이들을 통해 이른바 '선진적'인 금융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를 통해 보다 많은 이들이 더 호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 주장했다. 월스트리트 밖에 있는 99%의 사람들에게는 거짓말처럼 들리는, 월스트리트에 뿌려지는 엄청난 보수와 보너스, 스톡옵션들은 그러한 '창조적 행위' 에 대한 '응당한 보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돼 왔다.

하지만 진실은 어떨까? <마진콜: 24시간, 조작된 진실>은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린 2008년 금융위기 발생의 바로 전날 한 MIT 공학도 출신의 금융맨이 그간 회사에서 등한시해온, 눈치채지 못한 곳에서 엄청난 리스크 관리의 실패가 누적되었음을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회사 전체의 총 자산을 가뿐하게 뛰어넘을 엄청난 규모로 커진 위기를 오랜 시간 동안 그 뛰어나다는 '시스템'과 '인재'들 중 그 누구도 제대로 발견해 내지 못했고, 우연찮게 그 위기가 발견되자 엄청난 혼란에 빠져버린 것이다.

<투 빅 투 페일>에서 드러나는 정부 당국자들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이 행보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렇기에 전날 리먼 브라더스를 파산시켜 놓고 다음날 AIG에는 거액의 구제금융을 단행한다. 대마불사의 논리로 서민들에 대한 지원은 고려치 않은 채 금융업체들에 막대한 지원금을 쏟아부었지만 그 돈은 전혀 시장으로 흘러들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정책을 총 지휘했던 재무장관 헨리 폴슨은 골드만삭스 출신이었다.

보이지 않는 가해자, 얼굴없는 사람들

<인사이드 잡>.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 실패에 대해 당사자들은 대개 회피와 무시로 일관했으며, 지금도 마찬가지다.


위기 발생 당시 정치권에서 구제금융 지원에 대한 반대가 심했던 것은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기류 때문이었다. 위기를 불러온 자들에 대한 단죄나 조사 없이 엄청난 규모의 세금을 퍼주는 것이 과연 옳으냐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까지 설득에 나선 가운데 가까스로 그러한 비판을 뚫고 구제금융들은 집행됐다.

하지만 <투 빅 투 페일>의 결말부에 나오듯, 투자은행들과 대형은행들은 지원 자금을 소비자들에 대한 대출에 운용하지 않고 리스크 관리를 위해 그저 창고 속에 쟁여두었다. 결국 TARP와 같은 제도들의 본래 목적은 실현되지 못했고, 위기는 장기화됐다. 그리고 그러한 행태에 대해서 역시 아무도 유의미한 책임을 지지 않았다.

<인사이드 잡>은 세 편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추적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강하게 띠고 있는 작품이다. 다른 두 작품들이 지난 시간의 특정 기간들을 재구성해 배우들의 연기로 보여주는 반면에, <인사이드 잡>의 경우 금융위기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인물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행적들을 추적해 실제의 모습을 영상에 담아내었기 때문이다(물론 배치, 나열과 구성의 과정 속에서 역시 재구성은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나 생생하게 금융위기에 깊숙히 연관된 이들의 '생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통로였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가장 생생하게 느껴지는 감정은 '분노', 그에 앞선 '어이없음'이다. 등장하는 인물들 중 그 누구도 자신이 금융위기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인정하지 않고 대부분은 인터뷰조차 거부한다. 그런 그들이 지난 십수 년간 벌어들인, 아니 위기 이후로만 벌어들인 돈만 따져도 평범한 샐러리맨들은 평생일 모아도 만질 수 없을 돈들이다. 얼굴없는 자들에게 흘러들어간 막대한 부, 그것이 어디서 나온 슬픈 돈인지 우리는 알지 않나?

"이게 다 돈 때문이지. 그걸로 이루어지는 거지. 잘못된 게 아니네."
"내가 이 자리에 왜 앉아 있는지 보여주지, 결국 우리만 살아남게 될 거야."


누구에게나 금융파국에 대한 책임은 존재한다


이제는 다르기를 꿈꾸자

사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상당수의 경제학자들은 금융의 규모에 대해 강한 의구심과 비판정신을 지니고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케인즈로, 지나치게 비대하진 금융업은 산업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든다고 우려했다. 실제 대공황을 거치며 이러한 문제의식은 거진 사실화되어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을 분리시키고 비대화를 막는 법안들이 만들어졌다.

한데 거진 30여년간 이어진 큰 호황의 구조 속에서 사람들은 결국 망각의 샘물을 마시고야 말았다. 규제는 하나하나 철폐되었으며 금융업은 엄청난 규모로 불어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평범한 필부들까지 나서 금융산업의 호황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 가속도는 가히 엄청나 수준이었고, 막대한 부가 부동산과 주식시장에 흘러들어갔다. 과거 끝없이 주가가 상승하던 대공황 직전, 어빙 피셔가 말했던 '이제 미국의 주가는 영구한 고점상태에 접어들었다'는 말이 미국인들의 심리를 대변하는 듯했다.

하지만 피셔의 발언 직후 주식시장이 붕괴되었듯 거진 모든 미국 국민들이 직간접적으로 금융상품에 의심없이 깊숙하게 발을 들였을 때 붕괴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피해는 금융업계가 아니라 고스란히 평범한 대중들이 짊어지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에서 살고자 했던 열망의 대가는 너무나도 컸다.

위기는 오로지 인간에서 시작되어 오롯이 인간에서 끝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같은 고리가 반복된다.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과거를 잊지 않고 늘 경계하면 된다. 원칙은 쉽지만 그렇지 못했기에, 이미 거진 100년이나 흐른 과거였기에 우리는 잊고만 있었고 그 망각에서 얻어지는 달콤한 열매들에 취해 있었다.

부디 이제는 다르기를 꿈꾸자. 기억을 붙잡고, 다시 고통스러운 시기가 올 수 없도록 이제는 모든 시민들이 늘 금융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길러가야만 한다. 단순히 감시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자산을 지키고 건전하게 늘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순서가 반복되고 누적된다면 새로운 길이 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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