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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셈블리'와 '추적 60분'에 담긴 부당해고의 간극

[TV리뷰] 동앗줄 잡은 드라마 속 노동자 Vs. 끝나지 않은 싸움 중인 현실 속 노동자

15.07.16 16:53최종업데이트15.07.16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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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방송된 KBS 2TV <어셈블리> 첫 회를 화려하게 장식한 것은 자신들의 부당 해고 판결을 파기 환송한 대법원의 판결에 항의하여, 법을 제정하는 국회로 질주한 일군의 노동자들이다.

드라마 속 부당 해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더라'

KBS <어셈블리>의 한 장면 ⓒ KBS



주인공인 진상필(정재영 분)이 조직부장으로 있는 한국수리조선소 정리해고자 복직 투쟁위원회(이하 복직 투위)는 경제시에 터를 잡고 있는 한국수리조선소에서 해고된 지 3년이 넘은 노동자들이다. 그들의 해고에 법원은 서로 다른 결정을 내렸다. 1심에서 회사 측에 손을 들어주었던 법원은 2심에서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 주었고, 대법원은 결국 원심을 파기하는 허무한 결정을 내려 버린다.

그런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분노한 진상필은 '사과'라도 하라며 울부짖는다. 항의하러 찾아간 지역구 국회의원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불법 자금 수수로 의원직을 잃고 만다. 아침마다 한국수리조선소의 아침 체조 구령에 맞춰 함께 체조를 하며 하루를 시작하던 노동자들은 이제 전기를 끊고, 천막을 철거하겠다는 회사의 통고에 벼랑 끝에 서게 된다.

그런데 지역구 국회의원의 의원직 상실이 뜻밖에도 이들의 투쟁에 호재로 작동한다. 조선소 등 노동자들의 다수가 선거권자인 이곳에 야당이 복직 투위 위원장을 경제시의 야당 국회의원 후보로 선출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복직 투쟁의 길이 막연해진 가운데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면 그나마 자신들의 억울함을 널리 알릴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이들을 흔들지만, 선거에 나서겠다는 위원장(손병호 분)과, 출마가 위원장 개인의 입신양명을 위한 것이 아니냐는 진상필의 만류로 복직 투위는 혼란에 빠진다.

그 가운데 뜻밖의 복병이 등장한다. 국회로 쳐들어 온 진상필을 눈여겨 본 여당 사무총장 백도현(장현성 분)이 진상필에게 야당이 아닌 경제시 여당 국회의원으로 출마를 권유했기 때문이다.

현실 속 부당 해고, 끝나지 않는 싸움


▲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 29일째 고공농성 9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옥상 광고탑 위에서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사내하청 노동자인 최정명, 한규협씨가 불법파견 근로자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29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의료진이 농성장을 찾아 부상을 입은 한규협씨를 치료하고 있다. ⓒ 유성호



여당이냐, 야당이냐. 국회의원에 나갈 것이냐, 말 것이냐. 그래도 <어셈블리> 속 복직 투위에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같은 날 <어셈블리>가 끝나고 이어진 KBS 2TV <추적 60분>의 '부당해고, 멀고 먼 복직' 편으로 가면 사정은 달라진다.

부당해고는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정당한 이유없이 행하는 해고를 뜻한다. 부당해고를 당한 노동자는 노동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하거나, 행정 소송, 민사 소송 등을 통해 부당해고를 인정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실제 법원에서 부당해고를 인정 받아도 노동자들이 자신들이 일하던 현장으로 돌아가는 길은 요원하다.

길고 지리한 법정 싸움 끝에 부당해고를 인정받았다 해도 '법적 강제력'이 없는 법원의 판결에 사측은 복직 대신 과태료를 내며 버티기도 한단다. 그리고 그 판결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며 재차 소송을 제기하고, 다시 끝없는 법정 싸움이 이어진다. 설사 복직이 된다고 해도 원래 일하던 업무를 맡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부당해고를 당한 그 순간부터 노동자들의 삶은 벼랑으로 몰려가는 셈이다. 몇 년의 시간을 들여 무효 판결에 이르는 시간은 삶과 가정을 파탄으로 몰아가는 지름길이요, 설사 판결을 받아 복직이 된다 한들 사측은 언제든지 다시 노동자를 해고의 늪으로 빠뜨릴 수 있다. 부당해고에 대한 법적 판결은 너무 긴 시간이 걸리는 데다 구속력이 없어 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복직 이후의 삶은 보호받지 못한다. <어셈블리>처럼 그들을 구원해 줄 국회의원 보궐 선거같은 건 없다.

408일 만에 굴뚝 농성을 마치고 내려온 스타케미칼 노동자 차광호씨를 기다린 것은 구속 영장이었다. 경영 악화를 핑계로 문을 닫은 회사를 상대로 싸우던 노동자들은 해고자 11명의 힘으로 해결할 방법이 굴뚝 밖에 없어 그곳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어셈블리>의 한국수리조선소를 연상케 하는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 강병재씨는 높이가 50m나 되는 크레인에 매달려 복직을 요구하고 있다.

생탁·택시 노동자 송복남, 심정보씨는 노조 인정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부산시청 앞 전광판에 92일째(16일 기준, 이하 동일) 올라가 있다.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 최정명, 한규협 씨가 '불법 파견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국가인권위원회 전광판에 오른 지도 36일째가 됐다.

사용자 측에 유리한 법, 그리고 사용자의 전횡을 묵과하는 각종 시스템이 항존하는 가운데자신들의 권리를 인정받을 수 없는 노동자들은 사면초가다. 외환 위기 이후 노조의 힘이 사회적으로 약해진 이후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막다른 길에서 높은 곳으로 오른다.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고 살아나 외칠 수 있는 유일한 길일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지난 15년간 노동자들이 오른 높이는 1389층 건물 높이인 4166m(<한겨레> 7월 2일자 보도에서 인용)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어셈블리 추적 6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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