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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인의 수상소감이 왜 '오글'거리지?

[주장] 유아인을 보는 즐거움은 다름과 마주하는 기쁨이다

16.01.03 09:45최종업데이트16.01.03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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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치 않는 걸 억지로 하게 되면 병이 든다."

배우 유아인이 어느 인터뷰에서 했다는 말이다. 지난 2015년 12월 31일 <SBS 연기대상>에서 있었던 유아인의 수상소감이 연일 화제다. 소감의 내용이나 말투, 표정, 제스처 등이 남달랐단 것. 여론의 호불호도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SBS 연기대상> 최우수상 수상한 유아인

▲ SBS 연기대상 시상식 장면 캡쳐 화면 배우 유아인이 장편드라마 남자배우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고 소감을 전하고 있다. ⓒ SBS


이날 시상식에서 장편드라마 남자배우 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유아인은 "최우수연기상인데 제가 최우수한 연기를 펼쳤는지 모르겠다, 많은 선배님이 계시는데, 제가 잘해서 주시는 건 아닌 것 같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육룡이 나르샤>라는 50부작의 긴 드라마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었다, 마냥 행복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기꺼이 많이 배우면서 임하고 있다"라며 "사실 오늘 함께 이 자리를 빛내주고 계신 변요한, 신세경, 윤균상, 박혁권 선배님까지 뜨거운 열정을 가진 젊은 친구들과 함께하는 행복감이 굉장히 크다, 저 친구들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싶어 이 자리에 섰다"라고 말했다.

또 상의 무게와 배우로서 자세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 상패 안에 참 많은 스토리가 있고 많은 생각이 오가고 많은 야심이 뭉쳐있고, 힘겨루기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의 일은 카메라가 돌아가는 순간 가장 순수하게, 가장 유연하게 연기하는 거다"라며 "막 영악하고, 여우 같고, 괴물 같아지는 순간이 많지만 잘 떨쳐내고 좋은 배우로서 '더 좋은 배우는 뭐지?', '더 수준 높은 연기는 뭐지?' 고민하면서 끊임없이 다그치고 또 다그치고 다그치면서 좋은 배우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도록 하겠다"라고 수상소감을 전했다.

유아인 특유의 비유적인 표현들도 있었지만, 배우로서 연기를 하며 자주 마주했을 속 깊은 고민들이 물씬 풍기는 진지하고 성찰적인 소감이었다. 자신의 연기에 대한 겸손한 자평과 동료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빠지지 않았다. 해석하기에 따라 시상식을 주관하는 방송사에 대한 비판으로 들리기도 했다.

내용 외에 말투나 표정, 제스처 등도 말 그대로 배우다웠다. 살아있는 듯 생생했고 어딘지 모르게 신선했다. 기존의 시상식에서 자주 볼 수 있던 놀라서 붕 뜬 듯한 인상, 감동으로 말을 잊지 못하거나 우물쭈물하는 모습, 연신 눈물을 글썽이는 얼굴, 하느님이나 미용실 실장님 등에게 공을 돌리는 인사치레들도 없었다. 유아인은 그냥 본인이 그동안 느꼈던 소회를 자신만의 화법과 표정에 담아 자기 방식으로 차분하게 풀어냈다.

연기에 대한 진정성 있는 고뇌 vs. 연기하는 것 같은 오글거림?

▲ 유아인, 카메라 앞에서 용된 천만배우 배우 유아인이 지난 2015년 12월 31일 오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 2015 SBS 연기대상 > 레드카펫에서 동영상 공유서비스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파장은 의외로 뜨거웠다. SNS나 인터넷 댓글들에는 "영화 <베테랑>의 조태오가 유아인인 척 연기하고 있다"는 글을 필두로 '오글거린다', '시건방지다', '느끼하다', '섹시하다', '매력적이다', '광기가 보인다' 등 다종다양한 반응들이 현재까지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유아인의 수상소감에 대한 부정적 반응들의 요지는 '오글거림'으로 압축된다. 과거 미니홈피 시절의 장근석이나 려원과 비교하기도 한다. 하지만 저런 내용의 소감조차 허세나 오글거림으로 치부해 버린다면 진지한 사유란 것 자체가 당최 불가능해지는 건 아닐까 싶다. 저 정도의 소회조차 조롱거리가 된다면 도대체 우리는 무슨 말을 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어슷비슷한 방식으로 익숙한 이야기들을 반복하며 사는 사회는 재미도 없을뿐더러 그 자체로 억압적이다.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은 각기 다 다르다. 물론 학교, 군대, 회사 등의 사회화 코스를 차례로 밟아가며 공동체 내의 구성원들이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은 사회 지배적(혹은 지배층의) 가치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방식으로 코드화된다. 하지만 이게 정말로 안 되는 이들도 있다. 실제로 유아인은 고교를 자퇴했다.

범인들은 훈육과정 속에서 '원치 않아도, 억지로 하지 않으면 다칠 수 있다'는 공포에 압도되어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고 사는 방식을 습득한다. 하지만 유아인은 "원치 않는 걸 억지로 하게 되면 병이" 날 정도로 자기 욕망에 목말랐던 사람이다. 그렇기에 자기 방식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왔는지 모른다.

개인의 말하기 방식에 대해 굳이 멋있다며 추켜세울 필요까지야 없겠다만, 굳이 부러 오글거린다며 비하할 필요도 없을 듯싶다. 2분 남짓의 수상소감 몇 마디로 새해 초장부터 (두 건의 굵직한 열애보도를 물리치고) 연예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그의 끼와 남다른 자의식을 우리가 조금 더 보듬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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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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