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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착취하는 당신, 이미 유령이다

[리뷰] 다큐영화 <우리 체제의 유령들>

16.01.31 13:52최종업데이트16.02.02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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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영화 <우리 체제의 유령들>의 포스터 ⓒ Ghosts Media Inc


오늘날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착취 가운데, 현대 산업이 동물을 다루는 방식보다 심각한 착취가 과연 있을까? 사회심리학자로서 베스트셀러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를 쓴 멜라니 조이는 현대 산업이 동물을 대하는 방식을 가리켜 "참을성이 아주 많은 사람조차도 눈물을 쏟게 만드는 전 지구적인 잔혹행위"라고 했다.

그럼에도 이런 잔혹행위는 좀처럼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그 사실이 철저하게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가령 모피업계는 온갖 수식어를 동원해서 자사의 제품을 홍보하지만, 모피가 어떻게 생산되는지에 관해서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현실을 바꾸려면 진실을 알려야 한다. 동물보호 활동가들이 카메라를 들고 농장과 도축장, 동물실험실에 잠입하는 이유다. 그리고 이들이 폭로한 현실은 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고, 동물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는데 크게 기여해왔다.

그러나 잔인한 사진과 영상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런 것들을 공유할 때는 '임산부와 심약자는 보지 말라'는 당부를 덧붙이게 마련이다. '너무 잔인해서 끝까지 볼 수 없었다'거나, '차마 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는 반응들은 잔혹한 현실이 대중에게 또 다른 장벽이 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동물들이 처한 현실을 외면하기 싫지만 잔인한 장면은 보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에게 리즈 마샬의 다큐영화 <우리 체제의 유령들>(The Ghosts In Our Machine)를 권한다. 비참한 현실을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으로 전달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에도 리즈 마샬은 그 작업을 훌륭하게 수행해냈다. 

동물은 살아있는 물건인가

▲ 모피 농장의 여우 다큐영화 <우리 체제의 유령들>의 한 장면 ⓒ Ghosts Media Inc


영화의 주인공인 조 앤 맥아더는 사진작가다. 조 앤은 축산업·모피산업·실험산업·오락산업에 이용되는 동물들을 촬영한다. 그녀가 사진작가의 길을 택한 이유는 '한 장의 사진으로 수천마디의 말을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 앤의 사진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유령들이다. 그 중에는 오래 전에 죽은 진짜 유령도 있고, 살아있는 유령도 있다. 후자를 유령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들이 살아있고 의식 있는 존재로 간주되지 않기 때문이다. 산업에서 동물들은 물건처럼 다뤄지며, 그들의 감정과 고통은 완전히 무시된다.

낙농장의 젖소들은 우유를 위해 평생 강제 임신과 출산을 반복한다. 그리고 태어난 송아지는 즉각 빼앗긴다. 그들은 우유생산 기계다. 돼지 농장의 암퇘지 역시 평생 임신과 출산을 반복한다. 몸을 한 바퀴 돌릴 수도 없이 비좁은 감금틀에 갇혀 사는 그들은 고기생산 기계다.

가정에서 기르는 개나 고양이에게도 각자의 고유한 성격이 있다. 소·돼지·닭이라고 해서 그렇지 않겠는가? 그들이 개성을 말살당한 채 획일화된 시스템에 우겨넣어진 채 살아가는 모습은 삶이라기보다는 제품을 제작하는 공정에 가깝다. 이런 동물을 다른 개체와 구별하는 유일한 수단은 (영화 포스터에 등장하는 송아지의 귀에 달린 'R883'과 같은) 식별번호이다. 

영화에는 산업에서 구출된 동물들도 등장한다. 이들은 미국 뉴욕의 팜 생추어리 농장에서 안락한 여생을 보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본래의 개성을 발현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물건으로 취급되던 시절에 얻은 상흔은 사라지지 않는다. 부리 끝이 잘린 닭, 고기 생산에 최적화된 어마어마한 체중을 감당하지 못해 다리를 절뚝이는 소, 유선염을 앓는 젖소들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우유·달걀·고기 생산기계로 전락한 동료들의 현실을 알려준다.

변화는 관심을 갖는 데서 비롯된다. 특히나 동물은 스스로를 대변할 수 없는 목소리 없는 약자이기에, 그들의 처지는 사람을 통해 알려져야 한다. 우리 사회가 동물에게 자비로운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면, 우선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 체제의 유령들>이 암흑 속에서 신음하는 동물들에게 한줄기 빛이 되어줄 거라고 믿는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는 '동물, 물건이 아닌 지각 있는 존재'라는 주제로 생명공감 킁킁도서관에서 영화 상영회를 개최하고 있다. 총 네 편의 영화가 한 달에 한 편씩 상영되며, 첫 번째 영화인 <우리 체제의 유령들>은 지난 28일에 상영됐다. 2월 25일에는 요스 드 푸터 감독의 <치타, 칸지, 너클스>가 상영된다. 자세한 정보는 카라 홈페이지에 있다.

리즈 마샬 조 앤 맥아더 동물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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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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