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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인생을 살고 싶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봤다

[공모]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계기가 되어 주었던 영화 <이키루>

16.08.15 15:59최종업데이트16.08.15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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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키루>는 삶에 대해 성찰하게끔 만드는 영화이다. ⓒ 도호


가끔은 나의 삶이 나의 주변의 여러 요소로부터 단절되어 있음을 느낀다. 인간이 살아간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삶의 의미가 어디 있는지 정의하고자 하는 시도 자체가 어찌 보면 모순된 행위일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이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면 그 의미는 남과 교류하는 가운데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나를 포함한 너무도 많은 사람이 조직의 일원으로 그것의 기계적 요구나 주어진 직책에 자신을 속박하고 그 안에서 편안함과 안정을 찾고자 하는 것 같다. 남의 삶을 외면하고 단절된 기계적 삶을 반복하면서 자신은 사회의 일원으로써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착각하거나 혹은 '이 정도로 적당히 타협하며 살면 되지'하며 자기를 합리화하는 듯하다. 자신의 삶을 조금만 더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면 이런 삶의 평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지극한 소수이지는 않을까?

아직 대학원 다니던 시절, 서른 즈음에 영화 <이키루: 살다>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사회가 점차 조직화하면서 사회에 내재하여 있는 모순뿐만 아니라 자기 삶에 드러나는 모순들을 감지하는 능력을 점점 상실해 가는 것 같다. 오히려 자기 발전이 전혀 없는 정체된 삶을 살면서 남들의 발전적 시도를 이상하게 여기고 싸늘한 시선을 보내기까지 한다. 이런 어찌 보면 변태적인 삶이 바람직한가? 사람은 자기 내외적 요소들을 느끼고 만지며 어떤 삶의 실체적 모순과 부딪혀 가는 모험 가운데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대 조직사회의 변태적 성향은 그런 외적 요소들과 나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회적 마찰을 최소화하려고만 하고 어떤 조직적 논리로 억압하려고만 하는 데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남은 건 자기희생이라는 명목으로 계속 반복되는 기계적인 삶과 남의 생고에는 너무나 무감각한 이기적인 가족·국가주의뿐이다.

제대로 사는 법

영화 <이키루>의 주인공 와타나베는 자신이 곧 죽는다는 것을 알고부터야 삶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고민하고 자신에게 의미 있는 시간적 그리고 물질적 투자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서야 진정으로 남의 삶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사회적 일원으로써의 책임을 다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의 삶에 정말로 의미 있는 투자를 할 줄 알고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사회에도 투자할 줄 아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우리는 개인주의가 없는 단체주의에 너무나 익숙하고 개인주의를 이기주의 인양 배격해 왔다. 무조건 조직의 통일된 요구에 순응하는 인간을 영웅시 하며 그것에 대한 고민조차 자제하도록 교육받았다.

신문에서 가끔 어떤 조직의 권위 하락을 이야기할 때 그것은 구성원들이 예전보다 도덕 희생정신이 없어서 그렇다고 하거나 단체를 생각하는 개념이 모자라 그렇다는 평가를 읽는다. 그러나 그 반대로 나 자신의 삶에 대해서 진정으로 고민하고 느끼고 투자할 때에만 조직의 억압적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고, 또 그래야만 삶을 보다 풍성하게 누리게 되고 또 사회에 대한 투자도 그만큼 더 할 수 있는 게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올바른 공공정신은 개인이 개인으로써 조직의 획일적 요구에서 인간이 자유로운 때에만 사회에 구현되는 것 아닌가 싶다. 아울러 사회 도덕이니 희생이니 하는 것들이 오히려 인간이 인간 본래의 모습을 기르고 느끼는 데 있어 우리를 억압하는 면은 없는지 생각하게 된다.

덧붙이는 글 내가 사랑한 OOO
이키루 인생영화 개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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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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