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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도, 네 명도 아니고... 왜 하필 '여덟'일까?

[TV리뷰]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시리즈 <센스 8(Sense 8)>의 시즌 1을 보며...

16.11.07 20:20최종업데이트16.11.0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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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매트릭스> 삼부작 이후 워쇼스키 형제의 실적은 영 저조했다. 각본과 제작을 맡은 <브이 포 벤데타>는 성공도 실패도 아니었고, <스피드 레이서>는 봤다는 사람이 없었다. 비가 출연한 <닌자 어쌔신>은 본편보다 무술 연습 동영상이 유명했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전생과 윤회를 소재로 삼으면서 신기에 가까운 특수 분장술을 선보였다. 하지만 대중들에게는 다소 어려웠던 것 같다.

<매트릭스> 삼부작 이후 내부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워쇼스키 형제의 오랜 화두였다. 이 화두는 단지 작품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워쇼스키 형제가 더는 형제가 아니라 남매가 되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매트릭스>가 어정쩡하게 끝난 이유는 역시 어정쩡한 혁명론 때문이었다. 워쇼스키 본인들도 알고 있었다. 우리는 매트릭스 속에 갇혀 있지만, 그걸 깨부수려면 기존의 혁명을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을. 그래서 네오의 혁명은 어설픈 구원론으로 성급하게 막을 내렸다. 이후 남성에서 여성으로의 극명한 변화를 거친 워쇼스키 남매는 여러 실험을 거친 끝에 드라마 <센스 8>을 내놓았다. (그리고 얼마 전 자매가 되었다!)

SF의 확장, 더 커진 워쇼스키의 세계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시리즈인 <센스 8>은 워쇼스키 자매의 세계관을 잘 보여준다. ⓒ 넷플릭스


미국 IPTV의 대명사 넷플릭스를 통해 배급된 <센스 8>은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 시도한 전생과 윤회의 메시지를 SF적 화법을 빌어 대폭 확장했다. 이제 시즌1을 마쳤지만, 이 작품은 단연 걸작이다. <센스 8>은 변화하는 세상의 원리와 그 변화를 느끼는 소수의 인간이 연결/확장되는 이야기다. <센스 8>의 변화는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면서 일어난다.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의 고통과 희열을 오감으로 느끼면서 시작된다. 그 연결은 다시 사람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낸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마치 같이 있는 듯 신체를 공유하는 여덟 명의 남녀가 있다. 이들은 마치 한 몸처럼 모든 것을 공유하고 서로 위험에 처할 때마다 도와주며 위기를 넘기는 공동체가 된다. 이들의 성별과 국적, 성 정체성과 장·단점은 의도적으로 안배되어 있다.

센스 8이라고 불리는 여자 네 명과 남자 네 명은 미국, 영국, 케냐, 한국, 멕시코, 인도, 독일에 살고 있으며 직업도 경찰, 해커, 약학자, 도둑까지 제각각이다. 멕시코에 사는 배우 리토는 엄청난 스타이지만 게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산다. 영국에 사는 DJ 라일리는 아이슬란드 출신이며 아이와 남편을 잃은 고통스러운 기억이 있다. 케냐의 버스운전수 카피우스는 장 클로드 반담 숭배자이며 인종 학살 생존자이기도 하다. 한국에 사는 선은 가부장적이고 천박한 재벌가에 태어났지만, 가족을 위해 누명을 쓴다. 한국 촬영분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배두나를 비롯하여 이경영, 이기찬, 윤여정, 명계남, 마동석 등 모두 유명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영어로 연기하는 모습은 생각 이상으로 자연스럽다.

왜 8명인가

8에는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다. ⓒ 넷플릭스


<센스 8>은 처음엔 좀 어렵다. 8명이나 되는 주연들이 한꺼번에 각자 이야기를 펼쳐내기 때문이다. 미국에 사는 주인공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느닷없이 케냐에 사는 주인공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특수한 능력을 지닌 인간인 센스 8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따라가기 힘든 스토리다. 문제는 왜 주연을 8명이나 배치하여 일부러 이야기를 어렵게 만들었느냐이다.

이 드라마는 변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변화는 한자로 바꿀 역(易)이라고 쓴다. 동양적 전통에서 세상의 변환 원리는 주역(周易)에서 다룬다. 역경(易經)이라고도 불리는 주역의 기본 원리는 음양이다. 음과 양은 계속 변한다. 음 속에 양이 숨어 있고 양 속에 음이 숨어 각각 변화를 이끌기 때문이다. 음양을 둘로 나누면 넷이 되고 이들을 다시 둘로 나누면 팔괘가 된다. 팔괘는 서로 순환하기 때문에 원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다. 주역에서는 팔괘를 상징하는 산목으로 점을 친다. 이 점은 일생에 한두 번, 나라에서는 국운을 좌우할 만큼 중대한 일이 있을 때 치는 것이었다. (지금은 육효라고 불리는 점으로 남아 있으며 신묘할 정도로 구체적으로 맞춘다고 한다) 8개의 순환하는 괘. 바로 센스 8의 여덟 명이다.

여덟 명의 주인공들은 자기 안에 숨어 있는 특별한 능력을 깨닫게 되자 열심히 사용하기 시작한다. 중요한 것은 그 능력을 자신이 아니라 서로를 위해 쓴다는 것이다. 위험에 빠진 카피우스를 위해 격투기 선수인 선이 대신 싸워주거나, 거짓말을 잘 못 하는 볼프강을 위해 배우 리토가 즉석 연기를 펼치는 등이다. 이들 여덟 명을 연결하는 국제 테러리스트는 이렇게 말한다.

"원래 센스 8은 현재 인류가 진화하기 전의 인간형이야. 우린 다 연결되어 있었어. 그래서 살인이 불가능했지. 누군가 죽으면 그 고통을 다 같이, 똑같이 느꼈으니까. 그러다가 현재 인류가 나타났고, 그들은 서로의 고통을 느끼지 않았어. 그리고 그들은 우리를 죽이기 시작했어…. 우리는 서로가 겪는 죽음의 고통을 매번 느끼며 죽어갔지."

센스 8은 현재 인류가 나타나기 전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던 인간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서로의 고통에 공감하지 않는 현재 인류가 나타났다. 그들은 우리가 지금 사이코패스라고 부르는, 신자유주의에 적합하게 진화된 인간들이다. 현재 인류의 세계에서 서로 도와주러 달려가는 센스 8은 위험한 존재들이다. 세계 어딘가에는 이들을 없애기 위한 기관이 마련되어 있다. 이 기관은 센스 8을 감지하고, 사냥하고 감금한다.

<센스 8>은 <매트릭스> 이후 어떻게 하면 이 세상을 변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워쇼스키의 해답이다. 한 장소에 집중되어 폭력 혁명을 일으키는 것은 답이 아니다. 타인의 고통에 민감한 사람들이 만드는 네트워크가 변화의 시작이다. 워쇼스키의 아이디어는 지금 실현의 첫발을 내디디고 있다. 물이 부족한 난민촌에 수도를 놓자는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하면 전 세계에서 순식간에 성금이 쌓인다. 알지도 못하는 저 멀리 어딘가에서 고통받는 누군가를 위해 1달러를 지불하는 익명의 사람들이 분명히 있는 것이다. 세계의 변화는 정치 이념이나 경제가 아니라 개인의 근본적이고도 내면적인 변화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역경 서문을 번역한 융의 말이다. 빨리 시즌2를 보고 싶다.

센스8 미드 워쇼스키 역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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