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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티와 레드벨벳, 두 앨범에 숨겨진 재미

[기획] 이문세-이영훈이 그립다... 가요계의 페르소나를 찾아서

17.02.06 18:30최종업데이트17.02.09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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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9일 오전 10시 55분]

영화를 운운할 때 '페르소나'란 단어를 종종 쓴다. 영화 사전에 따르면 페르소나는 '영화감독 자신의 분신이자 특정한 상징을 표현하는 배우'를 뜻한다. 가요계에도 페르소나 사례가 존재한다. 이문세-이영훈 콤비가 대표적이다. '사랑이 지나가면', '이별 이야기', '가을이 오면', '깊은 밤을 날아서', '그녀의 웃음소리뿐' 등 이문세의 노래 대부분을 이영훈 작곡가가 만들었다. 즉 이문세는 이영훈의 페르소나다.

페르소나는 곧 개성

네 번째 미니앨범 <루키>를 발표한 레드벨벳. ⓒ SM엔터테인먼트


지난 1일 자정 동시에 앨범을 발표한 자이언티와 레드벨벳. 두 가수의 앨범 트랙리스트를 비교하며 재미있는 것 하나를 찾았다. 자이언티의 <OO> 수록곡 7곡은 모두 작사-작곡-편곡자가 자이언티, 피제이, 쿠시, 서원진 등 몇몇 일정한 멤버였다.

반면 레드벨벳 앨범 <Rookie>의 여섯 수록곡은 곡마다 새로운 작곡(작사)가 이름이 눈에 띄었다. 타이틀곡 'Rookie' 한 곡 안에서도 무려 8명의 작곡가 이름을 올렸다. Jamil 'Digi' Chammas, Leven Kali, Sara Forsberg, Karl Powell, Harrison Johnson, MZMC, Otha 'Vakseen' Davis III, Tay Jasper 등의 공동작곡. 앞선 곡 '러시안 룰렛'의 작곡가는 Albi Albertsson, Belle Humble, Markus Lindell이니, 전곡과 또 다른 작곡가들이다.   

새 앨범 < OO >를 발표한 자이언티. ⓒ YG엔터테인먼트


두 사례 모두 이문세-이영훈 콤비와 같은 페르소나와 거리가 멀지만, 자이언티의 경우는 페르소나에 조금 가까워 보인다. 자이언티는 YG 산하 레이블인 '더 블랙 레이블'로 소속사를 옮겼지만, 그의 음악적 동료들과 여전히 '자이언티 스타일'의 음악을 만든다. 페르소나가 있고 없고를 두고 무엇이 좋다 나쁘다 할 문제는 물론 아니다. 다만 한 가수의 음악을 오랜 시간, 정해진 작곡가가 만들어나갈 때 인격이나 성격에 비유할 수 있는 '개성' 같은 게 생기는 건 확실하다.

백예린도 자이언티와 유사한 사례다. 자신이 작사·작곡한 자작곡을 선보이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의 페르소나라고 단정짓긴 어렵지만, 일정한 작곡가와 함께 작곡 또는 편곡한다는 점에서 자이언티처럼 자신만의 음악색깔을 만들고 있다. 지난 2015년 발표한 솔로 앨범 <FRANK>('우주를 건너'로 인기를 얻었다)에 이어 2016년 발표한 또 다른 솔로 앨범 <Bye bye my blue>의 수록곡들을 가수이자 작곡가인 구름과 협업했다. 백예린의 음악에선 통일된 감성이 느껴진다. 'OO의 노래'라고 했을 때 "아, 그 사람 노래는 쓸쓸해" 하고 뚜렷한 하나의 감성이 떠오르는 건 긍정적인 현상일 것이다. 자신의 음악세계를 잘 이해하는 음악적 동료와 함께 백예린만의 감성을 지켜냈기에 가능한 일인듯 싶다.

윤상-러블리즈, 꽤 신선한 조합

걸그룹 러블리즈와 윤상의 조합은 꽤나 특별하다. ⓒ 울림엔터테인먼트


프로듀싱 팀 원피스(ONE PIECE)를 이끄는 가수 윤상은 걸그룹 러블리즈를 자신의 페르소나로 삼았다. 윤상은 이번 달 컴백하는 러블리즈의 새 앨범도 프로듀싱 했는데, 이들의 '페르소나 인연'은 '아츄', '데스티니'에 이어 4년째 계속되고 있다. 발라드 가수로 알려진 윤상이 아이돌 음악을 만드는 게 신선하게 여겨진다.

윤상은 러블리즈의 두 번째 미니앨범 <어 뉴 트릴로지> 쇼케이스에 참석해 "러블리즈는 완성도 있는 신스팝을 만들 수 있는 완벽한 대상"이라며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음악들을 러블리즈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결정적으로 직접 "페르소나"란 단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이문세-이영훈 같은 조합, 또 볼 수 있을까요

이문세 <골든라이브 86-92> 앨범 사진. ⓒ 이영훈 공식사이트


좋은 작곡가와 쭉 함께한다는 건 가수에게 행운이다. 반대로 작곡가에게도 자신의 예술을 효과적으로 표현해줄 가수가 있다는 건 행운이다. 이문세 노래에서 느껴지는 아련함, 풋풋함, 그리움의 감성은 이영훈이란 작곡가를 원천으로 하지만, 이문세란 가수가 불렀기 때문에 그 감성이 비로소 완성된 것이다. '윈윈효과'란 말이 이럴 때 딱 맞다. '광화문 연가', '옛사랑', '난 아직 모르잖아요',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등 수많은 명곡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오직 '그들만의 감성'이다.

요즘 가요계는 '베스트'를 위해 끊임없이 보석 찾기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장 좋은 곡을 탄생시키기 위해 가장 유능한 작곡가를 찾고, 그러다 얼마 후 더 좋은 작곡가가 나타났다 싶으면 그에게 곡 의뢰를 한다. 하지만 음악은 정답과 오답이 따로 있는 수학 문제가 아니다. '베스트 노래'를 확보한다고 반드시 대중으로부터 사랑받는 건 아니다. 사람 계획대로 딱딱 되는 게 음악이라면 모든 게 쉽겠지만, 보이지 않는 '마음의 영역'에 속한 게 바로 음악이다. 이름 없는 작곡가라 하여도 가수와 조합이 좋을 때 대중의 마음을 울리는 강력한 힘을 가질 수도 있다. 이문세-이영훈을 잇는 '환상의 콤비'가 가요계에 또 등장하길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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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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