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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다는 건, 영웅이 사라진다는 것일까요?

[오늘날의 영화읽기] 나의 영웅들에게 작별을 고하며... 안녕, <원더 우먼>

17.06.21 17:10최종업데이트17.06.21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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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어릴 적 보았던 슈퍼맨과 원더우먼은, 소년과 소녀에게 같은 꿈을 꾸게 했고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며 어른이 되어갔어요. 시간은 흘렀고, 세상의 '진실'을 깨달아가며 어른이 된 소년은 더 이상 보자기를 뒤집어쓴 채 옥상에서 뛰어내리지도, 세상을 구하겠다며 악인을 응징하리라 외치지도 않습니다. 그러는 사이 소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설마, 나처럼 이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 테죠? 혹시라도, 2017년에 새로 태어난 <원더 우먼>을 만나면 답을 구할 수 있을까 하여 오랜만에 극장을 찾았습니다.

소녀가 어른이 되어가며 깨달은 진실은, 세상이 실제로는 선과 악으로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악을 응징하고 정의를 세워야 할 텐데, 악은 나도 모르는 사이 '선'이라 믿었던 것들과 손을 잡고 있었고, 간신히 이겼다 싶었던 전투에선 내가 더 크게 상처를 입기 일쑤였어요. 이건 뭘까, 의아해하며, 그녀는 더 이상 악을 응징하겠다고 나서지 않아요. 그냥,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 어딘가를 헤매면서, 영웅이 될 수 없는 자신은 더 이상 주인공이 아님을 느낄 때 즈음에서야, 어른이 된 것을 깨달아 버렸다죠.

하지만, 어른이 된다는 것이 슬픈 감정만을 남기는 것은 아닐 텐데, 이번에 <원더 우먼>을 만나면서 제게서 너무나 소중한 무엇인가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버렸습니다. 그게 무엇이냐고요? 더는 세상을 구하는 영웅의 이야기에서 감동할 수가 없더란 말입니다. 특히나, 인간보다 우월한 능력을 갖춘 채, 세상을 구하겠다고 나서는 그 '슈퍼 영웅들' 말이에요. 아, 왜 이런 하나 마나 한 투덜거림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냐고요? 삼십 년 만에 만난 원더우먼이 알려줬거든요, 너무도 적나라하게!

'너는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야. 무슨 이야기를 원한 거야?'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새로 태어난 <원더 우먼>이 보여주는 세상은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유럽의 어딘가에요. 결계를 뚫고 '데미스키라'에 들어온 트레버 대위와 함께 세상으로 뛰쳐나온 다이애나를 보는 것은 무척이나 아슬아슬해요. (트레버 대위를 연기하는 크리스 파인은, 리부트된 <스타트렉> 시리즈의 커크 선장이에요) 다이애나의 세계는 '데미스키라'의 신화로 완성되어 있었을 뿐, 새로 만난 세상을 받아들이지 못해요. 인간 세상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야 말겠다며, 영화 내내 다이애나는 그녀가 해치워야 할 '절대 악' 아레스를 찾아다니게 됩니다. 세계대전의 원인을 아레스라는 '전쟁의 신'에게 넘기는 또 다른 '신'인 원더 우먼을, 저는 어떻게 봤어야 할까요?

전쟁의 신 아레스를 찾아 천국을 뛰쳐나온 다이애나는 끝없이 '나를 아레스에게 데려다 달라'고 얘기합니다. 그녀의 세계에서 '아레스를 죽이는 것'만이 이 참혹한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요. 십 대의 저였다면 분명히, 그녀가 절대 악을 없애고 정의를 바로 세우기를 원했을 것이고, 그렇게 절대 악이 사라진 세상에서 절대적인 '선'이 세상을 환하게 밝힐 것이라 믿으며 그녀를 응원했을 것입니다. 저는 그녀가 휘두르는 진실의 올가미에 열광했고, 투명한 비행기, 승리의 팔찌에 열광했던 적이 있으니까요. 물론, 절대로 저는 입지 않을 것 같은 그녀의 패션 센스에도 말입니다.

하지만, 마흔을 훌쩍 넘긴 저는 더 세상이 선과 악의 이분법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선의만으로는 세상에서 '이길' 수 없을 뿐 아니라, 무언가와 싸움에서 이겨낸다 하더라도 거기에서 모든 것이 끝나지 않음을 알고 있지요. 선이라 믿었던 일을 행하고 있음에도 쉼 없이 흔들려야 하고, 때로는 '자기 합리화'라는 이름으로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자신을 위안하기도 합니다. 이런 저에게, 원더 우먼의 '확신'은 너무도 순진해 보였습니다. 아무리 나이를 먹었기 때문이라고는 해도, 실제로 존재하는 인간의 세상을 보고 나서도 계속 '아레스'만을 찾는 그녀를, '문화적인 충격'에서 헤매고 있는 다른 문화의 존재로 이해했어야 할까요?

'분명히 아레스를 죽였는데, 왜 전쟁이 끝나지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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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세상에서 만나게 된 '현실'로 인해 잠시 무너지는 듯 보였던 그녀의 세계는, 결국 등장해버린 아레스로 인해 다시 공고해졌어요. 이번의 전투에서 승리한 그녀는, 분명히 평온한 마음으로 '영웅의 본질'에 집중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이미 새로 태어난 <원더우먼>을 기다리는 DC코믹스의 수많은 시리즈가 대기하고 있다고 하죠? 하지만, 현실의 제가 마주치는 세계는 매일매일 또 다른 방식으로 무너져내립니다.

착한 아이로 살면 혼나지 않는다는 법칙은 이미 초등학교를 벗어나기도 전에 깨졌고, 정당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대가를 받을 수 있다는 가르침은 교과서 밖에서는 확인해 본 적이 없네요. 그렇게 세상은 이미 책에서 가르쳤던 것처럼 단순한 선악의 이분법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영웅들처럼 악인을 해치우고 선이 승리하는 세상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런 '단순한 승리'는 영화에서만 가능하잖아요. 영웅이 되고 싶었던 소녀가, '철이 든다'는 미명하에 꿈을 포기한 대가라고 하기엔, 너무 잔인하다면 투정인가요.

삼십 년도 넘었나 봐요. 티브이에서 성조기 스트라이프 팬티를 입은 하얗고 예쁜 원더우먼에게 반해서,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 외치던 시간이 말이에요. (<세일러 문>이라고요? 주문은 비슷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지금의 저는, 오랜만에 다시 만난 원더우먼에게는 반하지 않은 게 확실해요. 그만큼 제 세계는 무척이나 복잡해졌고, 저는 이제 어영부영 '어른'이니까요!

혹시라도, 지금의 <원더 우먼>을 보며 꿈을 갖게 될 소녀들에게는, 좀 더 당당하게 '세상을 구하는' 꿈을 가져도 된다고 응원해도 될까요? 그녀가 구하고 싶은 것이 '트레버 대위'가 아니라 이 세상이어도 괜찮다고, 당당하게 원하는 것들을 말하고 '여자다움' 안에 갇혀 답답해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해줘도 괜찮아요? 제게는 사라진 '영웅'이 지금의 소녀들에게는 '꿈'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올 것이라고 말해줘도 좋을까요? 제발, 그렇게 말해줄 수 있는 용기라도 남아있었으면 좋겠네요. 그들의 미래를 위해, 지금의 현실을 버텨낼 그 '용기' 말이에요.

제발, 남아있을 그 자그마한 '용기'를 기대하며, 오늘은, 슬프지만, 저의 영웅들에게 작별인사를 건네야 하겠습니다. 안녕, 원더우먼. 안녕, 나의 슈퍼 히어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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