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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에서, 나는 예술영화가 가아할 길을 보았다

[리뷰] 넷플릭스라는 거대한 자본이 만들어낸 예술영화의 미래

17.07.16 17:43최종업데이트17.07.16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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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봉준호 영화 정말 좋아해, 보러가자,"
"<옥자>? 웬일이냐. 네가 영화를 먼저 보러가자고 하고. 더군다나 봉준호 영화를. 철학적이잖아."
"무슨 소리야, 나 봉준호 영화 엄청 좋아해."
"뭐 좋아하는데?"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설국열차> 다 좋아해."

영화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때문에 보기 시작한 내 친구는 마블 히어로 영화의 광팬이다. 미술을 전공하던 그 때문에 급기야 전공까지 바꿨다. 하지만 진지한 영화는 사절이라는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봉준호 영화의 광팬이라고 말했다. 다루고 있는 주제가 무겁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봉준호의 영화를 말이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영화 <옥자>의 스틸 이미지. ⓒ (주)NEW


사실 대다수의 예술영화 혹은 심오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화들은 관객들의 흥미를 자극시키고 눈길을 끄는데 실패한다. 영화를 좋아하는 나는 영화감상의 목적을 그 영화를 만든 감독과 일정한 사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감상을 나누는 것에 둔다. 그렇지만, 이런 나조차 예술영화는 버겁고, 무거우며 불편하다. 그래서 나를 비롯한 수많은 관객들은 이 영화들이 아주 원초적인 인간의 본성에 반한다는 이유로 예술영화, 실험적인 영화, 소재가 무거운 영화를 외면한다. 바로 재미가 없다는 이유다.

하지만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사실은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다는 자체가 관객들이 영화들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절대적인 요소가 아니라는 점이다. 쉽게 말해, 이 영화들 못지않게 봉준호의 영화들 역시 매우 무겁고 철학적인 주제와 내용을 이야기하는데, 봉준호의 영화는 관객들에게 매우 사랑받고 있기 때문이다. 집에서 편하게 인터넷으로, 심지어는 무료로까지 감상할 수 있는 영화를 이토록 많은 관객들이 영화관, 그것도 찾아가기 힘든 작은 영화관을 가득 매우니까.

그렇다면 그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무엇이 이토록 관객들은 봉준호의 영화에 열성적인 것일까. 그 이유를 그의 신작 <옥자>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철학적 소재, 대중적으로 말하기

<옥자>라는 영화는 탄탄한 스토리 라인, 1인 2역으로 열연한 틸다 스윈튼을 비롯한 할리우드의 수많은 스타들의 호연,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할 정도로 탄탄한 감독의 연출력, 미야자키하야오의 부활이라고 극찬 받을 만한 동화적이고 몽환적인 미장센들과 CG 등 다양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영화다.

한 미국의 영화지는 봉준호의 신작 <옥자>를 두고, 아카데미 감독상, 작품상 후보에 오를 작품으로 선정하기까지 했다. 전방위적으로 아름다운 이 영화가 관객들의 열성적인 사랑을 받는 이유는 사실 화려한 연출과 짜임새 있는 각본, 배우들의 호연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 바로 동물학대, 육식과 채식, 자본주의의 문제, 계급과 빈부격차, 그리고 그 자본주의를 대해야 하는 방법들이,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방법으로, 그래서 관객들에게 아주 매끄럽게 전달된다는 것이다.

영화 <옥자>의 스틸컷. ⓒ 넷플릭스


아주 철학적인 이야기를 담기로 유명한 홍상수 영화가 다른 영화가 감히 담기 힘든 매우 철학적인 주제를 담는 영화이기에 놀랍다고 이야기한다면, 봉준호 영화는 그 매우 철학적인 주제를 너무나도 효과적이고 흥미로운 내러티브 방식으로 경량화시키고 대중화시키는 영화이기에 놀랍다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영화관을 나서는 관객들은 봉준호 영화의 영화적 장치와 복선, 스토리, 그리고 캐릭터들을 이야기한다고 느끼지만, 실은 매우 철학적이고 심오한 주제를 이야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얼마나 놀랍고 매력적인 일인가. 어려운 내용을 어렵게 이야기하는 것보다 어쩌면 정말 어려운 건, 어려운 내용을 쉽게 전달하는 것일지 모른다. 봉준호 영화의 핵심이자, 그의 영화가 많은 관객들에게 사랑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것이 가능한 건 전적으로 콘티 하나 하나부터 이야기 하나 하나, 장면 하나 하나를 세밀하게 총괄하고 직접 작업하는 그의 스타일 덕택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숨겨진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넷플릭스에 '작품 창작의 자유'가 있었다

<옥자>는 사실 개봉 전부터 제작사 문제로 시끄러웠다. 넷플릭스의 투자아래 만들어진 영화는 개봉을 앞두고 영화배급사들과의 심한 다툼으로 얼룩졌고, 뉴욕타임즈는 이를 두고 봉준호의 새로운 영화가 사실은 미란도(극중에서 나오는 거대 자본회사)가 아니라 표현의 자유와 배급문제로 한국의 거대한 세 멀티플랙스와 투쟁한다고 표현했다.

프랑스에서 열린 올해 칸 영화제에서는 넷플릭스에서 제작된 영화를 예술적인 작품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말까지 나왔다. 결국, 무엇이 봉준호로 하여금 넷플릭스를 선택하게 만들었나는 물음은 봉준호의 신작을 집 주변 영화관에서 볼 수 없냐는 불만 아래 퍼져만 갔고, 봉준호는 결국 인터뷰를 통해 물음에 대답했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담긴 '도살장 시퀀스'를 극장 개봉 편집본으로 승인해준 제작사가 넷플릭스 밖에 없었다는 게 그의 대답이었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영화 <옥자>의 스틸 이미지. ⓒ (주)NEW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도살장 시퀀스는 사실 영화의 핵심 시퀀스로써, 자본주의와 타협하고, 자본주의를 처음 마주하는 순수한 소녀, 그리고 그 소녀를 기다리는 자본주의, 우리가 자본주의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 지 매우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따라서 도살장 시퀀스가 없다면, 봉준호의 <옥자>는 봉준호의 <옥자>가 아니라, 킬링 타임용으로 소비되고 잊히는 할리우드의 그저 그런 영화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봉준호에게 100% 창작의 자유를 보장한 덕에 <옥자>는 세상에 나와 빛을 볼 수 있었고, 나를 비롯한 극장을 메운 수많은 관객들은 이토록 아름답고 완벽한 영화 <옥자>를 극장에서 볼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됐던 것이다.

결국 봉준호의 이번 영화가 가장 봉준호스럽고, 아주 철학적인 소재를 흥미로운 내러티브를 이용해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넷플릭스라는 거대자본이 봉준호에게 작품 창작에 100% 자유를 보장해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단순히 흥행을 위한 편집보다 영화에서 중요한 것들이 있고, 진정한 예술성은 돈보다 위에 있다는 제작사의 의지가 결국 봉준호의 신작을 더욱 봉준호스럽고, 예술영화의 정수이자 예술영화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해 주는 기념비적 영화로 탄생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도살장 시퀀스에서 옥자를 두고, 미자가 미란도에게 건네는 대사를 인용하고 수정해 이 글을 마칠까 한다.

(넷플릭스가 말을 한다고 가정하고) "진정한 예술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전 예술작품을 자유롭게 창작하고 싶어요. 그거 얼마면 돼요? (돈을 툭 던진다.) 이걸로 사겠어요. 창작자의 자유로써 완성되는 위대한 영화 예술작품."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영화 <옥자>의 스틸 이미지. ⓒ (주)NEW



봉준호 넷플릭스 옥자 할리우드 칸 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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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는 세무학과 경제학을 공부했습니다. 신입생 첫 수업 과제로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읽고 감명 받은 바람에, 회계사, 세무사, 공무원이 되어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다른 동기생들과 다르게 프랑스로 떠나, 바게뜨와 크로와상만 주구장창 먹고 있습니다. 그래도 위안인 점은 프랑스 빵이 정말 맛있다는 점과 토마 피케티를 매일 본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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