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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할매'로 거듭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그 절박함을 보다

[김유경의 영화만평] 죽기 전에 들어야 하는 한마디, "미안해요" <아이 캔 스피크>

17.10.03 16:25최종업데이트17.10.03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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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편집자말]

현장에서 영어를 익히는 "도깨비 할매" ⓒ 리틀빅픽쳐스


<아이 캔 스피크>가 호평 속에 관객수 186만을 넘어섰다. "민원왕 도깨비 할매" 나옥분(나문희 분)과 "원칙주의 9급 공무원" 박민재(이제훈 분)가 이룬 쌍끌이효과다. 두 배우를 콤비로 찜한 김현석 감독의 따뜻한 연출이 관객에게 먹힌 거다.

그러나 영화는 불친절하다. 나옥분스러운 정체성을 왜 '도깨비'라 하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호기심과 재미, 그리고 웃음을 안기면서 스토리텔링이 2/3쯤 경과하고서야 눈 밝은 관객은 그 이유를 대충 짐작하게 된다. 물론 온전히 이해하려면 마지막 장면에 다다라야 한다.

"도깨비 할매"에서 도깨비는 할매를 수식하니까 관형어다.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구청 블랙리스트 1호"라는 단서로써 그 의미를 일단 추정하면, '평범하지 않은'이나 '이해하기 힘든' 또는 '괴상한'이 맞지 싶다. 그러니까 "도깨비 할매"라는 호칭은 시장사람들과 구청 직원들에게 각인된 부정적인 의미의 별종을 가리킨다.

한국 민담에서 환상의 종족인 도깨비는 인간 세계에 해를 주지 않으면서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자주 출몰한다. 따라서 한국 도깨비는 별종이지만 위협적이지는 않다. 도리어 '도깨비놀음'이라는 단어처럼 불가사의한 현상을 일으키는 위력을 지닌 존재로 수용되어 인간과 사이좋게 지낸다. 뿔이 돋고 방망이를 든 모습의 '오니'는 일본 도깨비일 뿐이다.

김현석 감독은 첫 장면부터 관객에게 으스스함을 안기는 연출 효과를 써먹는다. 비마저 추적거리는 밤에 재개발 상가건물 위층에서 아래층을 응시하는 우비 입은 뒷모습을 다짜고짜 보여준다. 카메라는 그 두억시니 같은 존재가 나옥분 할머니임을 밝힌다. 우비를 입고 들어선 인물을 보고 놀라 딴전을 피우는 구청직원들의 일련의 언행들을 훓으면서.

"도깨비 할매"는 재개발 떡고물을 노린 건물주 휘하 주먹의 불법 행위를 그 질척한 야밤에 포착한 사진을 구청에 제출하며 잘못된 행정에 대해 시정을 요구한다. 낮에는 밥벌이로 옷을 수선하면서도, 시장통을 순시하듯 살펴 공공질서를 어기는 시장 사람들의 행태를 일일이 타박한다. 그렇게 집요한 할머니를 주변 사람들은 쑥덕거리며 불편해 한다.

박민재 형제와 추석을 맞이하는 "도깨비 할매" ⓒ 리틀빅픽쳐스


그러나 그 유별스러움은 민생에 도움이 될수록 행하기는 어려운 이성적 행위이다. 한편 "도깨비 할매"는 따뜻한 감성적 행동이 몸에 익어 있다. 고3인 민재 동생 영재(성유빈 분)에게 따끈한 저녁상을 차려주기도 하고, 민재가 면접 때 입을 양복 상의를 손수 지어 입히기도 한다. 어느 날은 영어를 잘하는 친구를 만났다가 누군가를 피해 숨는 석연치 않은 마음을 드러내어 복심을 들키기도 한다.

그런 다양한 모습들이 더해지면서 영화 중반쯤에는 "도깨비 할매"의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선회한다. 후반부에서는 아예 활동 무대를 바꾸어 도깨비의 불가사의한 능력을 연상시키는 "도깨비 할매"의 용기와 열정을 소개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주눅 들었던 마음의 찌꺼기를 털어내는 엄마 무덤 앞에서의 울음 쏟아냄이 그 전환점이다.

결국 "도깨비 할매"는 한국말을 못하는 LA 사는 남동생과 통화하려고 기를 쓴 영어공부로써 2007년 6월 26일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HR121) 채택'에 기여한다. 그 이력을 도운 사회적 공감을 통해 관형어 "도깨비"는 '별나지만 인간 정신을 빛낸'의 긍정적 의미를 획득한다. 인간 세계에 친화적인 한국 도깨비의 상징적 재현이다.

따라서 <아이 캔 스피크>의 제목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인간정신의 승리를 함축하고 있다. 나옥분 할머니의 실제 모델인 이용수 할머니는, 지난 9월 22일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 세인 메리 스퀘어 공원에 건립된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 제막식 축사에서 "역사는 잊히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과거를 옳게 기억하는 "오늘의 이야기"가 건강한 미래를 설계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현재 상영 중인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조정래 감독, 2017.09.14. 개봉)는 성노예의 진실 알리기에 치중해 설계 주체인 관객의 마음과 어깨를 무겁게 한다. 반면에 <아이 캔 스피크>는 웃음과 눈물이 어우러진 감동으로써 사과 않는 일본 정부를 향한 항의성 합창에의 동참을 맘먹게 한다.

관객을 대신해 그 긍정적 파동에 동참한 인물이 박민재(박주임)다. 그는 사리가 분명하나 건조한 젊은 세대다. 부모의 죽음 이후 남동생의 보호자로서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공무원을 택한 과정에서 생긴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다. 그 아픈 속내를 당당한 공무원의 모습으로 포장했던 그는, "도깨비 할매"를 만나 서로 과거를 보듬는 유사 가족애를 경험하며 인간적으로 성장한다. 역사적 미해결과제에 필수적인 젊은 세대의 합류를 상징적으로 선보인다.

그렇듯 <아이 캔 스피크>는 동일 소재를 다룬 기존 영화들에 비해 참신해서 어디까지가 시나리오고 어디까지가 연출력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중요한 건, 영화가 결말에 이를수록 "도깨비 할매"와 민재의 따뜻한 소통을 좇으며 도깨비에 홀리듯 관객도 그 어울림에 이끌린다는 거다. 이용수 할머니를 포함한 생존자 36명이 죽기 전에 미안하다는 일본 정부의 사과를 들어야 한다는 절박감에 절로 사로잡힌다는 거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일본 정부는 사과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휴먼 드라마로써 역설한 김현석 감독의 연출력에 박수를 보낸다. 배우 나문희와 이제훈에게도. 그러면서 새삼 경계한다. 독일의 철저한 과거사 청산과는 비교도 안 되는 한마디, "미안하다"조차 안 하는 일본 정부가 지금 여기 한반도 정세에 관여하는 동맹국이라는 사실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증언하는 "도깨비 할매" ⓒ 리틀빅픽쳐스



아이 캔 스피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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