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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외과 의사가 한류스타로? 다시 만난 캐릭터가 반갑다

[기획] SBS <사랑의 온도> 박신혜부터 tvN <응답하라 1997> 은지원까지

17.10.27 11:11최종업데이트18.12.20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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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나 영화를 많이 보는 내게 가끔 주변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할 때가 있다.
 
"드라마, 영화를 그렇게나 많이 봐요? 왜요?"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이렇게 대답한다.
 
"저는 드라마도 영화도 결국은 문학이라고 생각해요. 문학은 당대 현실을 반영해서 그 시대를 더 정확히 볼 수 있게 해 주고 때로는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전망도 보여주니까요."
 
그런데 24일 방송된 SBS 월화 드라마 <사랑의 온도> 22화를 보면서 새로운 대답이 하나 더 떠올랐다. "드라마, 영화를 많이 봐야만 느낄 수 있는 묘미가 있다"고 말이다. 그 묘미를 드라마 속 다섯 장면으로 소개해볼까 한다. 순서는 가장 최근 작품부터 정리했다.

[하나] <사랑의 온도> 의사에서 한류스타로 돌아온 박신혜
 
24일 방송된 <사랑의 온도>에서는 배우 박신혜가 깜짝 출연했다. 유명 배우들이 여러 인연으로 카메오 출연하는 것은 물론 놀랍지 않은 일이다. 2016년 방영됐던 SBS 월화 드라마 <닥터스>를 본 사람들만큼은 박신혜의 등장을 보면서 또 다른 재미를 느꼈을 것이다. <사랑의 온도>에서 박신혜는 한류 스타 역으로 출연했지만 <닥터스>에서 신경외과 의사였던 때와 마찬가지로 극중 이름이 '유혜정'이었기 때문이다. 이름이 같았기 때문에 의사로 일하다가 한류 스타가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재미있는 상상도 가능하게 했다.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친구를 다시 만난 것과 같은 반가운 느낌도 가질 수 있게 했다. 만나 본 적 없는 친구에게 그런 느낌을 받을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닥터스>를 본 시청자들은 박신혜의 등장이 재미뿐만 아니라 반가움이라는 감정까지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SBS <사랑의 온도>에서 박신혜는 한류 스타 유혜정 역으로 깜짝 출연했다. ⓒ SBS

 
[둘] <당신이 잠든 사이> 이종석의 '풀꽃'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SBS 수목 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에서 정재찬 역을 맡은 이종석은 (이종석 분)이 한우탁(정해인 분)과 남홍주(배수지 분)이 다정하게 서 있는 모습을 창가에서 바라보며 하는 대사가 있다.  

"멀리서 봐야 예쁘다. 잠깐만 보아야 사랑스럽다. 저기 저 자가 그렇다."

한우탁에 대한 묘한 감정이 잘 느껴지는 이 대사를 어디서 많이 들어보았다고 생각하는 시청자들이 있을 것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이 시를 약간 변형한 대사라는 걸 잘 알 것이다. 그러나 그 대사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 사람들은 아마도 이종석이 주연으로 나온 KBS 2TV 월화 드라마 <학교 2013>이라는 드라마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학교 2013>에서 다른 아이들에 비해 다소 부족한 특수학생 한영우(김창환 분)는 강제 전학을 통보 받고 반 아이들과 마지막 인사를 한다. 그때 교실 뒤편을 바라보고 서 있던 고남순(이종석 분)이 바로 이 '풀꽃'이라는 시를 한영우에게 읊어 준다. <학교 2013>에서 시청자들 가슴을 울리는 감동적인 장면으로 꼽힐 만한 명장면이었다. 이를 기억하고 있는 시청자들은 <당신이 잠든 사이에>에서 이종석이 질투 가득한 마음으로 비슷한 시 문구를 읊고 있으니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지 않을까.

[셋] <귓속말> 짜장면이 먹고싶은 전직 검찰총장 조재현
 

지난 5월 종영한 SBS 드라마 <귓속말> 마지막회에서 조재현과 송태곤(김형묵 분)이 나누는 대화이다.
 
"나도 경찰서 갈 때 데려가면 안 되겠냐? 짜장면 한 젓가락 먹고 싶다."
"그건 안 됩니다. 부탁하다가 저도 안 데리고 나가면 어쩝니까? 짜장면 먹는 소리가 얼마나 큰 줄 아십니까?"
"소리 안 내고 짜장면 먹을 자신 있는데 그래도 안 되겠냐?"

이 장면을 보고 곧바로 웃음이 터진 사람들은 <귓속말> 박경수 작가의 전작인 SBS 드라마 <펀치>를 시청한 사람들일 것이다. 조재현은 <펀치>에서 막강한 권력을 지닌 이태준 검찰총장 역을 맡았다. 그리고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답지 않게 짜장면을 즐겨먹었다. 특히 박정환(김래원 분)과 대화를 할 때 늘 짜장면을 시켜 먹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나면 시청자들도 짜장면을 먹게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둘은 정말 맛있게 짜장면을 먹었다. 
 
그랬던 그가 모든 것을 잃은 채 감옥에 가서 짜장면 한 그릇을 못 먹어서 먹고 싶다고 울먹이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나오게 된다. 물론 거대한 악의 세력이었던 이태준이 감옥에 있는데도 또 다른 악의 세력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현실을 확인하게 해주는 장면이라는 점에서는 결국 씁쓸함을 남겼지만.

[넷] <38 사기동대> 박성웅, 비굴한 모습이 주는 재미
 

OCN < 38사기동대 >에서 박성웅은 비굴한 모습을 연기해 웃음을 자아냈다. ⓒ OCN

 
2016년 OCN 드라마 <38 사기동대>에서 박성웅은 대포폰 업자 두목으로 등장했다. 사무실이 난장판 된 모습으로 격렬한 격투 끝에 박성웅 일동이 박덕배(오만석 분)과 백성일(마동석 분)에 호되게 당하는 장면이었다. 무게감 있는 등장과 달리 격투 끝에 박성웅은 "형사 한 분 갈 거니까 뭐 물어보는 거 있으면 적극 협조하라고 전화 한 통 넣어 놓겠습니다"고 비굴한 모습을 보일 뿐만 아니라 코피까지 흘린다. 무게감 있는 등장과 달리 금세 비굴한 모습이 되는 박성웅을 보는 재미가 있었던 장면이다.
 
그러나 영화 <신세계>를 봤던 사람들이라면 이 장면의 재미를 배로 느꼈을 것이다. 박성웅이 처음 등장할 때 흐르는 배경 음악은 영화 <신세계>에서 쓰였던 음악이라는 사실이 기억났다면 말이다. 그 음악은 <신세계>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보여주었던 이중구(박성웅 분)를 기억하게 하며 그런 모습을 자연스레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런 무게감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웃음이 터지게 되는 것이다.
 
[다섯] <응답하라 1997> 15년 만에 연기력 일취월장한 은지원
 

2012년 방영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 은지원은 도학찬 역을 맡았다. 은지원은 여자친구 모유정(신소율 분)과 극장에서 심야영화 데이트를 즐겼다. 영화를 보다가 은지원은 여자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한다. 
 
"연기 좀 심하지 않냐? 내가 해도 저것보단 낫겠다."
 
이 말을 들은 시청자들은 웃었을 것이다. 은지원과 신소율이 보고 있던 영화가 바로 <세븐틴>(1998)이었기 때문이다. 은지원은 <세븐틴>에 출연해 "한 탕하겠어! 날 무시하지 말란 말이야"라는 대사를 정말 국어 책 읽듯이 읽었다.  
물론 드라마에서도 <세븐틴>의 한 장면을 보여주기 때문에 영화를 보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그 재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븐틴>을 보았던 사람이라면 그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은지원의 연기를 보면서 더 재미있게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잊었던 드라마, 영화 속 인물을 다시 만나는 즐거움
 

영화나 드라마가 현실을 반영하고 삶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런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많이 볼 만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역시 드라마나 영화는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 만날 일이 없을 것이라 여겼던 영화나 드라마 속 인물들을 다른 작품에서 만나게 되는 것처럼 사람도 이미 잊힌 시간이라 생각했던 것들을 인생의 어느 순간 다시 만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렇기에 더 열정적이고 후회 없이 바르게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펀치 사랑의 온도 귓속말 이종석 박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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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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