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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선영에서 정재원까지,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은 정당한가

[리뷰] JTBC <썰전> '평창동계올림픽 결산', 우리가 고민해야 할 부분들

18.03.03 12:29최종업데이트18.03.03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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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평창동계올림픽 폐회식이 열린 25일 밤 강원도 평창군 평창올림픽스타디움에서 ‘승리의 밤’ 공연이 진행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은 성황리에 막을 내렸지만 대회가 남긴 여운은 아직 가시지 않았다. 또 올림픽이 끝난 이후에도 우리에게 몇 가지 생각할만한 화두를 남긴 장면들도 있었다.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논란, 여자컬링대표팀의 깜짝 선전, 팀추월 대표팀 왕따 파동과 파벌 의혹 등에 이르기까지 이번 올림픽에서 대중들이 유독 뜨겁게 반응했던 사건들을 돌아보면, 비록 저마다 상황의 차이는 있지만 공통점은 '스포츠에서 반드시 결과와 목적만이 전부가 아니고, 어쩌면 과정과 내용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을 일깨워준 장면들이라는 것이다. 현대의 대중들에게 과연 '스포츠와 올림픽의 진정한 가치란 과연 무엇인지' 잠시나마 돌아보게 만드는 시간이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순간들이었다.

<썰전>의 평창올림픽 결산, 의미있는 지적

지난 1일 방영된 JTBC 시사예능 <썰전>에서는 평창올림픽을 결산하며 색다른 문제 제기가 나왔다. 패널인 유시민 작가는 한국이 금메달을 따냈던 남자 매스스타트 종목을 거론하며 "개인 경기에서 메달이 유력한 선수를 위하여 다른 선수가 희생하는 것을 아름다운 협동이라고 미화할 수 있는가"라고 지적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성공한 종목 중 하나로 꼽히는 매스스타트의 금메달 획득 과정에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유시민은 올림픽 대회 헌장 제1조 6항인 '올림픽에서의 경쟁은 개인이나 팀의 경쟁이지, 국가 간의 경쟁이 아니다'라는 문구를 인용하며 유력한 메달 후보였던 이승훈의 금메달을 위하여 정재원이 '페이스메이커'로 희생되었던 상황에 비판적인 시선을 던졌다. "같은 국적의 선수들이 역할을 나눠서 한 선수가 다른 선수 메달의 밑받침을 해주는 것이 스포츠맨십이나 올림픽 대회 헌장 정신에 맞는 것인가. 과연 그게 온 국민에게 칭찬받을만한 일인가?"라고 꼬집었다.

지난 1일 '썰전'에서 ‘팀워크 논란’이 일었던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 추월 경기와 빙상연맹 파벌 논란에 대해 이야기했다. ⓒ JTBC


유시민은 이런 상황을 우리 사회의 의식 문제와 연결지어 분석했다. "만일 우리 선수끼리 협력을 안 하고 서로 경쟁하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대중들은) 막 욕하지 않나"라며 "우리 모두 빙상연맹만을 욕할 자격이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유시민은 올림픽 당시 큰 논란을 일으켰던 여자 팀추월 대표팀 사건과 비교하기도 했다. 김보름과 박지우는 팀추월 준준결승전에서 뒤처진 노선영을 방치하고 두 선수만 먼저 결승선을 먼저 통과했다. 이 사건으로 김보름과 박지우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대표팀 내 '왕따' 논란이라는 큰 후폭풍을 일으킨 바 있다.

유시민은 "김보름과 박지우가 '올림픽 정신'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고 욕을 먹어야 한다면 이승훈과 정재원의 '협업'도 대회 헌장에 비추어볼 때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둘 다 잘못됐는데 누구는 욕먹고 누구는 칭찬받는 이유는, 국제대회를 마치 전쟁 대용으로 생각하는 '국가 스포츠 주의'가 강하기 때문"이라며 여전히 결과만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의식에도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방송이 나가고 난 후 대중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유시민의 지적이 충분히 일리 있다며 공감을 표시하는 반응도 있는가 하면, 비판하는 목소리 또한 적지 않다.

유시민의 의견에 대한 반론은, 주로 '논점의 본질을 잘못짚은 훈계질'이라는 비판이다. 매스스타트는 개인전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단체전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참가국들이 팀플레이에 대한 전략을 세우고 임하는 실정이다. 결승전에서 같은 국적을 지닌 선수들이 복수가 있으면 더 유리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점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올림픽에서 개인전의 성격이 변질되었다거나 규정의 허점을 이용하려는 발상은 굳이 한국만의 탓이 아님에도, 이를 우리 사회의 결과 지상주의와 연결시켜 스포츠맨십에 어긋난다는 식의 비판은, 지극히 편협한 관점으로만 바라본 해석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팀추월 대표팀의 왕따 논란과 매스스타트의 협업을 동일 선상에서 비교할 수 있느냐도 논란이 될만한 부분이다. 팀추월은 마지막 주자의 기록을 측정하는 경기임에도 뒤처진 동료를 방치했고, 결정적으로 경기 후 김보름과 박지우가 뒤처진 노선영에게 책임을 떠넘기는듯한 인터뷰를 했던 것이 여론에 불을 붙인 치명타였다. '팀워크의 부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계기가 된 것이 가장 문제였다. 반면 매스스타트의 금메달은 비록 정재원의 희생이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철저하게 사전에 약속된 팀워크의 산물이었다.

지난 1일 '썰전'에서 ‘팀워크 논란’이 일었던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 추월 경기와 빙상연맹 파벌 논란에 대해 이야기했다. ⓒ JTBC


유시민은 정재원과 노선영의 사례를 나란히 '결과지상주의의 희생양'이라는 관점에서 동일 선상에 놓고 싶었던 듯하지만, '동료를 위하여 희생을 감수한 것'과 '동료에게 버림받은 것'은 엄연히 다르다. 국민들이 단지 결과만 보고 열광한다는 식의 해석은 이 사건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의식 수준 자체를 절하하는 주장에 가깝지 않을까.

차라리 올림픽 같은 국제 스포츠 이벤트가 오늘날 순수한 스포츠맨십이나 국제 교류의 장으로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 구조적인 원인을 분석했다면 어땠을까. 여론의 편향성을 논하고 싶었다면 이슈가 벌어졌을 당시에만 반짝하고 금세 시들해지거나, 근본적인 해결책보다 김보름-박지우 같은 특정 선수에 대한 '마녀사냥'에만 치우치기 쉬운 집단 지성의 부작용을 논했더라면 좀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은 어디까지 가능한가?

▲ 이승훈 매스스타트 금메달! 이승훈 선수가 24일 오후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매스스타트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뒤 함께 경기를 뛴 정재원 선수와 함께 태극기를 들고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이희훈


다만 이 지점에서 단 한 가지는 우리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부분도 있다. 유시민의 주장에 대한 논리적 공감 여부는 둘째 치더라도 "스포츠에서 과연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라는 명분은 과연 어디까지 합리화될 수 있는가"에 대한 해묵은 화두를 다시 한번 꺼내 든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매스스타트 종목에서 서열상 대표팀에서 가장 어린 막내였던 정재원이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받아들인 것은 과연 100% 본인의 의지였을까, 혹은 만일 정재원이 금메달에 욕심이 있었더라도 본인에게 선택의 자유는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은 충분히 합리적 의심을 가질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노선영은 지난 1월 23일 대한빙상경기연맹의 행정착오로 올림픽 출전이 무산될뻔한 위기를 겪었을 때 "연맹이 이승훈·정재원·김보름 등 일부 유력한 메달이 유력한 선수들만 별도로 훈련을 시키고 있다"고 파벌에 따른 차별 의혹을 폭로한 바 있다. 이로 인하여 노선영이 속한 팀추월 대표팀의 훈련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승훈도 매스스타트 금메달 획득 이후 "다른 선수들에게 상처를 준 것을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간접적으로 사실을 인정했다.

▲ 경기장 떠나는 노선영, 김보름 노선영, 김보름 선수가 21일 오후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팀추월 순위결정전을 마친 뒤 경기장을 떠나고 있다. ⓒ 이희훈


정재원이 이승훈을 위하여 희생했다면, 그들이 속한 메스스타드 대표팀의 금메달은 노선영과 팀추월 대표팀의 희생을 통하여 이루어진 셈이다. 별도의 사건이 아니라 전체가 하나의 연결고리로 이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선수들의 노력과 의지와는 무관하게 누군가에 짜놓은 판에 의하여 '영광을 가져가는 자'와 '소모품처럼 희생당해야 할 자'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은 분명히 우리가 스포츠를 통하여 기대하는 스토리는 아니다. 출발선이 다른 금수저와 흙수저처럼 순수해야 할 스포츠도 점점 우리 사회의 어두운 축소판같이 되어가는 현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올림픽은 끝났지만 스포츠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무조건 일등에만 열광하던 시대는 지났다. 국제 스포츠 이벤트에서의 단기적인 성적에 목을 매달며 '국위선양'을 논하던 시대도 아니다. 오늘날의 대중들은 스포츠에서 점점 더 결과보다 과정과 내용의 가치를 중시하고 있다. 우리가 이번 올림픽에서 노선영과 정재원의 '희생'을 이야기해야 했고 앞으로도 오래 고민해야만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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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 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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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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