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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부산 가는 영화아카데미... "한국 영화 전체 손실"

9일, 14년 만에 서교동 시대 마감... 영화계, 졸속 이전에 '우려'

18.03.09 18:41최종업데이트18.03.09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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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교동에 위치한 한국영화아카데미 ⓒ 성하훈


한국영화아카데미(아래 아카데미)가 9일 정부 기관의 지방 이전 정책에 따라 서교동 시대를 마감하고 부산 이전을 시작했다. 2004년 11월 18일 서교동 시대를 연 지 14년 만이다. 3월말까지 3주간 이전 준비기간으로 설정한 아카데미는 오는 4월 2일부터는 부산에 마련된 교사에서 수업을 이어갈 예정이다(관련기사 : 준비 없는 부산 이전, 한국영화아카데미 '추락' 우려).

하지만 이전을 바라보는 영화계의 표정을 그리 밝지 못하다. 기대보다는 우려와 걱정만 가득한 모습이다. 아카데미 구성원들 역시 비슷해 보인다. 제대로 준비 되지 않은 졸속 이전으로 인해 장밋빛 기대보다는 잿빛 전망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아직 준비가 덜 된 것이 많고 아예 준비가 안 된 것도 있어, 이전으로 인한 아카데미의 질적 저하와 경쟁력 약화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부산 이전이 '한국영화 사관학교'로 불리는 아카데미의 위상에 변화를 줄 가능성이 많은 것도 무거움을 더하는 부분이다.

기숙사 문제 해결 안 돼

아카데미에 올해 입학한 신입생 중 다수가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부산 이전에 따른 부담이나 불편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아카데미는 최소한의 조건인 기숙사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으나 결과적으로 어렵게 됐다. 기획재정부와 문화체육관광부 등 정부 차원의 절차가 더뎌지면서 빨라야 올해 추가 경정 예산안이 편성될 경우에만 그나마 기숙사 등의 시설을 갖출 수 있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카데미 측은 기숙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비용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학생들을 위해 '한국영화아카데미 발전기금'에서 임대료를 부담해주는 대책을 마련해 놓고 있다. 그렇더라도 대다수 학생들이 개별적으로 숙소를 알아봐야 하는 상황이라 임대 보증금 등으로 인한 학생들의 부담은 해소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부산 이전에 따른 영화 제작비 상승도 아카데미가 부담해야 할 짐이다. 아카데미의 장편과정은 국내외 영화제 등에서 주목받고 흥행에서도 성공을 거두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대략 8천만 원 정도의 초저예산으로 영화를 만들면서도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충무로 영화사들의 지원과 영화계에 얽힌 학생들이 주변 지인들이나 친구들의 도움을 받기 때문이다. 그동안 인적자원과 제작환경이 잘 갖춰진 서울에 아카데미가 있었다는 것도 성장의 밑바탕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부산 이전으로 인해 이런 이점이 대부분 사라지게 됐다. 제작비 상승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아카데미 측은 인건비 등 제작비를 현실에 맞게 계산해보니 2배 가까이 늘어난 1억 4~5천만 원 정도가 필요하게 됐다고 밝혔다. 운영 예산은 늘지 않은 상태에서 제작비만 늘어난 터라, 고민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일부 아카데미 관계자들은 당분간 초저예산으로 우수한 영화를 제작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교수진들 사이에서도 "지금껏 대외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위상이 더 올라가기는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 "물론 어렵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는 이야기는 나오고 있으나 난제들이 쌓이고 있는 것으로 봤을 때 원치 않는 이전은 불안 요소만 키우고 있는 셈이다.

당장 올해 주요 영화제에 선보이기 위해 진행하고 있는 영화들의 마무리 작업도 차질을 빚게 생겼다. 3월말까지 진행 예정이었던 여러 편의 영화 제작이 영향을 받게 된 것이다. 아카데미는 현재 작업 중인 영화들을 고려해 편집실 등 일부 공간을 그대로 유지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전에 따른 어수선함으로 인해 작품 완성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게 아카데미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졸속 이전에 멍드는 한국영화

홍댕 인근에 위치한 한국영화아카데미. 3월 9일로 수업을 끝내고 4월부터 부산으로 이전한다. ⓒ 성하훈


가장 큰 문제는 영화기관의 이전이 체계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오랜 시간 문화 예술적 기반을 쌓은 곳을 떠나게 되면서 발전보다는 퇴보의 가능성만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아카데미뿐만 아니라 부산으로 옮겨가려는 종합촬영소 문제도 마찬가지다.

영화계 관계자는 "정부 기관의 지방 이전에 동의하지 않는 게 아니지만 문화예술 특히 영화는 다르다"며 "오랜 시간 기반이 닦여 있고 인프라가 있는 곳을 떠나는 순간 부담이 커진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다른 대안을 고민해야 하는데 일방적인 이전을 밀어붙이니 한국영화 전체로도 손실이 크다"고 비판했다.

아카데미 이전 후 부산시가 어느 정도 지원에 나설지도 관심거리지만, 그것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아카데미측은 "부산시는 학교가 내려오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 뿐"이라며 "부산시의 지원 등을 타진해 봤으나 지방선거 끝날 때까지는 쉽지 않다는 반응이었다"고 밝혔다.

부산 이전을 요구만하던 정치권 역시 아카데미가 겪을 애로사항이나 불편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사실상 무책임한 이전에 대한 영화계의 비판이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아카데미 측도 예산은 줄이면서 운영과 영화제작 비용 부담은 늘게 만드는 이전에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지만 공개적으로 의견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벙어리 냉가슴 앓는 식이다.

아카데미 한 관계자는 "출연 배우 캐스팅이나 오디션 문제도 커서 서교동 교사를 일부 활용할 수밖에 없다"면서 "배우들을 부산으로 오라고 할 수도 없는 데다, 그렇게 할 경우 소요되는 경비가 적지 않아 관심이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영화계에서는 영화기관의 부산 이전 문제가 조금 더 깊이 있게 검토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최근 종합촬영소 문제만 봐도 소유권도 안 된 부지에 수백 억대 건물을 지으라는 태도에 불만이 크다. 이 때문에 종합촬영소 문제는 상식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점들이 많아 사실상 진행이 중단된 상태다.

그럼에도 부산시 등은 문제 해결보다는 무조건 옮겨만 오면 된다는 식이다. 문제점에 대한 지적을 '서울 영화인들이 내려 오기 싫어 핑계를 댄다'는 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준비 안된 이전에 대한 손해나 손실 등에 대해서는 대책을 마련할 의지조차 안 보인다. 부산에 새로운 공간을 추가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닌,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의 이전에 한국영화가 멍드는 모습이다. 

한 중견 영화제작자는 "남양주종합촬영소가 없어질 경우 수도권 대체 촬영소를 마련해야 하고, 아카데미가 이전했으니 서울에는 또 다른 방식의 영화학교가 세워질 수도 있다"며 "부산영화제나 부산아시아영화학교처럼 지역 특성에 맞게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면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영화관계자도 "서울에서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영화기관들이 내려간다고 해도 부산이 대한민국 영화 중심 도시가 된다는 것은 착각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영화아카데미 부산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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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독립영화, 다큐멘터리, 주요 영화제, 정책 등등) 분야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각종 제보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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