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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니면 감옥에..." '여배우 스캔들'로 얼룩진 토론회

[리뷰]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지사선거 초청 후보자 TV 토론회

18.06.06 14:03최종업데이트18.06.06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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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후 진행된 경기도지사 후보자 초청 TV 토론회 ⓒ MBC


대한민국 광역자치단체 중에서 가장 많은 유권자가 있는 곳 경기도. 자그마치 1200만 명 넘는 인구가 이곳에 산다. 그만큼 선거 때만 되면 치열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5일 밤 11시 15분, 경기도지사 후보 TV 토론회(초청)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자유한국당 남경필, 바른미래당 김영환, 정의당 이홍우 후보가 참석했다.

사실 TV토론은 '정책토론'을 목표로 하지만, 수박 겉핥기가 되기 싶다. 100분이라는 토론 시간은 꽤 길어 보이지만 주요 후보만 해도 4명이라, 후보 1명이 이야기할 수 있는 총 시간은 산술적으로도 25분에 불과하다. 그 중에서 사회자 진행 발언 등의 소소히 들어가는 시간을 빼고 나면 20분 남짓 남는다. 짧은 시간에 임팩트 있는 모습을 유권자들에게 보여야하는 후보 입장에선 짧을 수밖에 없는 시간이다.

시청을 끝내고 나니 각 후보가 내세운 주요 정책들은 기억이 나지 않았고, 이재명 후보에 대한 사생활 시비만 머릿속에 남았다. 후보든 유권자든 무엇을 기대하고 토론회를 시청했든지 네거티브적인 소재만 임팩트 있는 효과를 발휘한다. 어쩌면 이것은 TV 토론이 갖는 숙명일 수도 있다.

수도가 아니면서 수도권으로 분류되는 그런 곳, 경기도

5일 오후 진행된 경기도지사 후보자 초청 TV 토론회 ⓒ MBC


여기서 경기도가 갖는 특별한 위상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 서울시장으로 나온 김문수 자유한국당 후보는 경기도지사 시절에 '대수도론'을 내세운 바 있다. 모호한 경기도의 정체성이 드러난 공약이었다. 경기도는 수도가 아니면서 수도권으로 분류되는 그런 곳이기 때문이다.

전주와 나주(전라도), 충주와 청주(충청도) 등 지역 내 대표적 지역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다른 도와 달리 경기도는 이름에서도 '서울의 주변부'라는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경기도 산하에 있는 시군구 등 기초자치단체는 대부분이 '시'이다. 그 중에는 도농통합형 시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도청이 있는 수원과 저 북쪽 멀리 있는 연천의 정체성을 단일하게 묶을 수 있는 그 무엇이 금방 떠오르지 않는다.

행정구역이 같은 것 이외에는 공통의 지역 특성을 찾아볼 수 없다. 그나마 찾을 수 있는 것은 서울의  구심력이 크게 작용한다는 것 정도다. 그래서 서울 주변의 경기도 도시들은 죄다 '위성도시'라는 성격을 갖고 있다. 비근한 예가 경기도를 한바퀴 도는 고속도로는 경기도 순환 고속도로가 아니고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이다.

이러한 경기도에서 정책 쟁점은 어떻게 나타날 수 있을까?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의 최대 치적으로 꼽는 청계천 복원과 같은 메가 공약이 나올 수 없는 곳이 경기도이다. 서울의 중심부를 흐르는 청계천과 같은 위상을 가진 지역이 경기도에는 없다. 경기도의 중심은 서울이고 그곳에 한강이 흐르지만, 경기도를 흐르는 강은 대부분이 보호구역이고 그 중심부는 경기도가 아니다.

한적한 시골에서 공장지대, 최첨단 신도시가 공존하는 지역이 경기도이다. 이곳의 공약은 양극화된다. 후보자 개인이 갖고 있는 독특한 개성에 기댄 미세 공약 혹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해결하기 힘든 거대 공약, 둘 중 하나다.

경기도지사 후보 네 명, 정책으로 공방 벌였지만...

이날 1분 간 주어진 기조연설에서 이재명 후보는 "네거티브 없는 정책 토론이 되길 바란다"라고 당부했고, 김영환 후보는 "정책토론에 성실히 임하겠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토론만 할 수 없다"면서 여배우와 관련된 스캔들을 지속적으로 제기할 것임을 피력했다. 토론회 내내 두 후보 사이에 오갈 공방의 내용을 예측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김영환 후보는 이후 이재명 후보를 상대로 이 부분을 집중 공격하였다.

이재명 후보는 정책 토론에서 성남시장 경험을 살린 공약들을 제시하였다. ▲무상교복 ▲청년배당 ▲지역화폐 경제 활성화 ▲공공개발 이익 도민 환원 등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 반대 1:1 자유토론에 나선 김영환 후보는 자신은 "돈 버는 도지사가 되겠다"며 성장과 일자리를 강조하면서 분배 정책에 중점을 두고 있는 이재명 후보와 대립각을 세웠다.

구체적 공약에 중앙 정치 차원의 이념적 대립 구도가 영향을 끼치는 순간이었다. 이재명 후보의 반론은 증세 이야기로 나아갔고, 김영환 후보는 반론으로 법인세 증세 이야기를 꺼냈다. 결국 토론은 세계적 추세와 경제 살리기에 대한 원론적인 이야기로까지 이어지면서 중앙정부 차원에 나올 만한 내용으로 확장되고 말았다. 결국 두 사람의 1:1 토론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인 최저임금제 논란으로 나아가서야 마무리 되었다.

현직 경기도시자인 남경필 후보는 이재명 후보가 경기도 소속의 성남시장 출신임을 활용하여 성남시 인구와 사업체 수 감소 내용이 담긴 통계를 가져와 맹공을 펼쳤다. 남 후보는 "이사오고 싶은 성남이다라고 하는데, 통계는 거꾸로다. 성남 인구는 줄어들고 있다. 경기도는 늘고 있는데... 업체 수도 성남은 줄고 경기도는 늘고 있다. 어떻게 된 것인가"라고 물으며 자신의 업적을 은근히 강조했다. 이에 이재명 후보는 "인구 줄어든 것은 가구원 수가 줄어든 것 때문"이라면서 "성남 시민들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전국에서 성남으로 이사를 오고 싶어 한다"고 반박했다.

김영환 후보는 본인의 이름을 딴 '김영환 케어'로 명명한 의료비 후불제를 대표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에 대해 남경필 후보는 "의료 후불제는 좋은 정책인 것 같다. 연정 사업으로 같이 하고 싶다. 비용이 문제인데 진료비 보증 이자비용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며 관심을 보였다.

전반적으로 토론 내내 남경필 후보와 김영환 후보 간에는 크게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특히 김영환 후보가 이재명 후보에게 사생활 문제에 대한 공세를 펼칠 때 남경필 후보가 이에 대해 구체적 근거를 묻는 등 공동전선을 펼치는 모습도 보였다. 이에 반해 이재명 후보와 이홍우 후보는 여러 분배 정책이나 최저임금제 논란에 인식을 같이 했다.

5일 오후 진행된 경기도지사 후보자 초청 TV 토론회 ⓒ MBC


남경필 후보는 일자리와 주거, 보육, 사교육 문제에서 자신의 정책 성과들을 자랑하면서 현직 프리미엄을 마음껏 활용하였다. 그러면서 "이재명 후보는 일자리는 줄어도 남은 일자리 임금 오르면 된다고 하는데, 이는 무책임한 것이다. 저는 경기도에 일자리 70만 개 새로 만들겠다. 청년과 여성 위한 일자리 만들겠다"라고 말했다.

이에 이홍우 후보는 "남경필 후보는 이미 70만 개 조금 안 되게 일자리를 만들었고, 또 70만 개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공적 일자리 몇 개 만들었느냐"면서 "일자리는 경기변동과 노동시장, 산업정책이 복합적으로 작동해 만들어지는 것이지 남 후보 혼자 만드는 게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남경필 후보와 김영환 후보는 경제보다는 정치 부문 대립각을 세웠다. 김영환 후보는 남경필 후보에게 "바른당에서 나왔다가 실패해서 돌아갔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패권정치 반대해서 나왔으면 한 번 쉬어야 한다. 다시 경기도지사를 하겠다는 건 과욕이라고 본다"라고 비판했다. 특히 "좋은 학력에 한 번도 낙선도 낙방도 안 하고, 좌절이랄까 고통이 없으신 분 같다"면서 남경필 후보의 이미지를 은근히 깎아내렸다.

이날 사회자가 후보들에게 던진 공통 질문은 '남북평화시대를 대비한 미래 비전'이었다. 북한 접경 지역인 경기도의 특성을 감안한 질문인 듯했다. 김영환 후보는 "남한 내에 북한 공단을 만들겠다"고 했고, 남경필 후보는 잘 되었을 경우와 안 되었을 경우의 대비책을 만들었다면서 잘 되었을 경우에는 "문화 예술 스포츠 등 인도적 지원부터 하다가, 북핵 폐기가 되면 쌍둥이 공단을 만든 뒤 평화 테크노밸리를 만들겠다"고 대답했다. 두 사람은 중도 보수 내지 보수 정당 후보이기는 하나 최근 평화 무드에 역행하지 않는 공약들을 내보였다.

남경필, 주도권토론 시작하자마자 여배우 스캔들 거론

5일 오후 진행된 경기도지사 후보자 초청 TV 토론회 ⓒ MBC


후보자 주도권 토론 시간이 되자 각자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남경필 후보는 자신에게 주도권이 주어지자마자 김영환 후보에게 "이재명 후보의 여배우 스캔들에 대해 근거가 있어서 이야기 했느냐?"라는 질문을 던지며 이재명 후보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 이에 대해 김영환 후보는 "근거는 이재명 후보가 해명해야할 일이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이다. 거짓말이 드러나면 후보 사퇴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제 말이 사실이 아니면 저는 교도소를 가야한다고 생각한다"면서 공동 전선을 펼쳤다.

정의당 이홍우 후보는 남경필 후보에게 "김영환 후보가 평생 꽃길만 걸어왔다고 했는데, 바른정당 갔을 때 기대를 많이 했다. 그새를 못 참고 다시 돌아왔다. 자유한국당 혁신하겠다고 했다. 최근에 홍준표 대표 유세도 못 다니고 있다. 남 후보의 혁신의 징표가 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남경필 후보는 과거 당 개혁을 위해 나섰던 전력을 강조하며 "그동안 혁신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재명 후보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스캔들과 관련 "선거가 앞서 나가는 후보 헐뜯기, 네거티브 흑색선전으로 흐르고 있다. 문제가 있다면 근거를 대야 한다"면서 "마녀사냥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이야기가 있으니 결백 증명하라는 건 옳지 않다. 주장하는 사람이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나를 일베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일베와 전쟁 선포한 날 가입해서 게시판 본 일 있다. 그 이후엔 들어간 적 없다"라고 덧붙였다.

이날 토론회의 진흙탕 싸움은 김영환 후보의 주도권 토론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다. 김영환 후보는 이재명 후보에게 여배우 관련한 행적을 물으며 '옥수동에 갔느냐 안 갔느냐'에 대한 질문에서 "예, 아니오로만 답하라"는 질문자와 "30초간 길게 답변하겠다"는 답변자가 길게 논쟁을 벌였다. 대부분의 시간은 여배우와 관련된 이야기로 흘러갔고 이재명 후보에 대한 집요한 공격이 계속되었다.

결국 시간을 다 끝내고 나서도 "없는 사실 갖고 그러는 거 아니다"(이재명)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 말라"(김영환)는 말로 격한 감정들을 주고 받았다. 이렇게 해서 이날 경기도지사 TV토론은 '여배우 스캔들'에 대해서만 강력한 인상을 남기며 막을 내렸다.

지자체장 선거 모습에 대한 숙제만 던져준 토론회

경기도의 수장을 뽑는 선거에서도 지역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다시금 반복되었다. 성장과 분배, 법인세율, 최저임금제 등 지자체 단위를 넘어서는 주제에 대한 토론이 길게 이어졌고, 그것이 아니면 경기도지사로서 어찌할 수 없는 부분들에 대해 공방을 벌였다. 그나마 후보 간의 차이를 극명히 드러낸 부분은 개인 스캔들이나 정치적 처신에 관한 문제들이었으니, 어쩌면 정책 토론이 정치적 이상에 그칠 수밖에 없는 방송 토론회의 숙명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사회자가 공통 질문으로 던진 접경지역 지자체로서의 비전은 경기도만의 고유한 영역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중앙정부가 개입해야 해결할 수 있는 대안들만 나열됨으로써 지자체장 선거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과연 경기도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이날 토론회에서 그 숙제를 풀어줄 거대 비전은 보이지 않았다. 큰 비전은 중앙정부 차원으로 거대해졌고, 작은 비전은 정치적 공방을 주고받는 것으로 끝이 났으며 그나마 인상 깊은 공방은 개인의 정치적 혹은 사적인 행적들에 관한 것이었다.

'경기도지사의 바람직한 모델은 무엇인가'라는 더 근원적인 고민을 해야 할 시점이다. 우리의 지자체장 선거가 어떤 모델을 만들어가야 할지 큰 숙제를 던져준 토론회였다.

경기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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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고등어 사전(메디치미디어)>, <나의 권리를 말한다(뜨인돌)>, <세상을 보는 경제(인포더북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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