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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살아남자" 축구 대표팀만큼 비장한 각오로 출발합니다

[아, 맞다. 월드컵시리즈] 러시아를 향한 여정 준비, 꼭 챙겨야 할 것은

18.06.14 16:50최종업데이트18.06.14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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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화면이 반짝, 열리더니 메시지가 왔음을 알린다. 아직 잠을 깨지 못하여 비몽사몽인데, 갑자기 후다닥 정신을 차린다(사실 지방선거일이라서 늦잠을 자도 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출국이 오늘이었나? 하는 걱정 때문이기도 했다).

"언니, 모스크바 도착역이 어디야? 레닌그랏스키 맞아요?"

예전에 KOICA의 해외봉사단 활동을 하던 시절에 인연을 맺은 친구가 모스크바에서 보낸 메시지였다. 당시 러시아어 전공이었던 친구는 카자흐스탄 파견단원이었는데, 작년부터는 공부할 기회가 생겨서 모스크바에서 살고 있다. 처음에 친구의 파견 소식을 들었을 때, '월드컵에서 만나. 자리 잡고 기다려!'라고 했던 날이 오고야 말았다. 아직 눈이 다 떠지지도 않았는데 급하게 전화기를 뒤져서 답장을 보낸다.

▲ 출국 준비 완료! 이제, 드디어 수속을 모두 끝냈습니다. 무사히, 잘~ 다녀올께요. 제발, 푸틴 파이팅, 안전한 월드컵을 기원합니다! ⓒ 이창희


"이게 뭐라고 읽는 거니? Moskva Passazhirskaya라는데, 파사지르스카야?"

갑자기 메신저가 먹먹하다. 분명히 메시지를 읽었다며 '1'은 사라진지 오래인데, 전화기 너머의 그녀가 잠잠하다. 분명히 내가 뭔가 실수를 한 것이고, 그녀는 예의 그 호탕하고 느긋한 웃음을 웃고 있는 게 분명하다. 잠시 후에 답장이 왔다.

"언니, 음. 그거 말고, 그냥 티켓을 찍어보내주세요."

분명히 그녀는 웃고 있었다. 화면 너머로 익히 알고 있는 친구의 웃음이 들리는 것만 같다. 나중에 알고 보니, 티켓에 쓰인 역의 이름은 '악짜브리스카야(Oktiabrskaia)'였고, 그녀는 새벽에 도착하는 나에게 '역에서 나오지 말고 내가 갈 때까지 기다릴 것'을 신신당부한다. 월드컵의 '세계 최상의 경계태세'와 푸틴의 경찰력을 믿는 내가 그냥 갈 수 있겠다고 했지만, '술 취한 아저씨들'이 새벽에도 돌아다니는 곳이라며 조심해야 한단다. 아, 내가 도착하는 역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데 우랄산맥 서쪽의 러시아 대륙에서 문제없이 다닐 수 있을까? 큰일이다.

세 번째 월드컵 원정, 메시 경기는 못 보지만...

▲ 짐을 챙겼다. 언제나의 여행에서처럼, 차는 너무 작은데 짐은 너무 크다. 게다가, 저 안에 뭘 넣은 것도 없는데, 가방은 출발 전부터 무겁기 그지 없다. 제발, 끝까지 무사히, 나를 지켜주길! ⓒ 이창희


이번 여행은 준비하면서도 정말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일단, 러시아어의 알파벳이 영어의 익숙한 것들과 전혀 다르기도 하고, 경기를 보러 가야 하는 도시에 역들도 몇 개씩이나 있어서 결국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분명히, 볼고그라드에서 한국의 두 번째 경기가 열리는 로스토프-온-돈까지는 지도로 볼 때, 이번 여행 중 가장 가까운 거리인데 직접 가는 열차가 없다면서 모스크바까지 갔다가 오라고 하는 식이었다. 이대로 '한국의 두 번째 경기를 포기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즈음, 그것이 역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아챘고 바로 가는 기차를 찾아낼 수는 있었지만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 혹시라도 러시아에서 평양냉면이 생각날까봐서, 후다닥, 내가 알고 있는 가장 맛있는 평양냉면을 급하게 들이켰다. 근데, 모스크바 북한 식당에서 냉면을 판단다. 우리는 6월 19일 저녁에, 모스크바에서 평양냉면을 먹기로 했다. 아자! ⓒ 이창희


이번 여행은 개인적으로 세 번째 월드컵 원정이다. 2006년의 독일은 여행사의 힘에 의지하던 '배낭여행 초보'였고, 2014년의 브라질은 친구들에 의지하던 '남미 여행 초보'였는데, 2018년의 러시아는 아예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러시아 초행'이다. 아, 어쩌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월드컵을 마음 편하게 다닐 수 있는 내공은 생기지 않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이번엔 나름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한국전 세 경기 사이사이로 다른 나라의 경기를 채워 넣겠다는 용기를 냈다. 사실 메시의 마지막 월드컵을 현장에서 보고 싶었는데, 아르헨티나의 열성적인 팬들은 이길 수가 없어서 '메시님 대신' 선택한 경기들이라 아쉽긴 하다.

▲ 독일에 1승을 하는 전략을 씁시다! 얼마전에 최용수감독이 시사프로그램에서 그랬다. 그런데, 이번에 월드컵을 준비하며 읽은 글에서, 이리도 단호한 '전망'은 없다. 저 담박한 두 글자에, 단숨에 설득당했다. 우리, 그냥 즐겁게 합시다! ⓒ 이창희


"어떻게 월드컵은 다 위험한 나라에서만 하냐?"

동생 찬스로 막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오는 차에서 동생이 던진 말을 듣고 있자니, 어제까지는 트럼프에게 의지하던 내가 오늘부터는 (독재자라며 지금껏 욕을 하던) 푸틴에게 의지해야 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는 게 의아하긴 했다. 그래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몰려드는 축제라는 월드컵의 이면에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범죄자들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위험도 같이 존재하고 있으니 역설적이다. 게다가 평소에도 '조심, 또, 조심'하라며 주의를 들었던 러시아를 헤매고 돌아다녀야 할 테니, 자연스럽게 '푸틴, 파이팅!'을 외치게 된다.

가까스로 이번에 계획한 여섯 번의 경기 관람의 사이사이를 '움직일 수는' 있도록 채워 넣기는 했다. 갑자기 기차가 늦어지거나, 비행기가 취소된다면 곤란해지는 '아주 빡빡한' 일정이라서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모두 열여섯 밤을 러시아에서 보내야 할 테고, 이들 중 다섯 번의 밤을 기차에서 자야 할 테지만 말이다. 여행을 준비하는 마지막 단계로, 가져가야 할 짐을 챙기고 면세점에서 뭐라도 사야 하지 않을까 싶어 쇼핑을 했다. 시간이 지나 결제를 하려고 장바구니를 보고 깜짝 놀랐다. 영양제와 건강 보조식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오직, 오랜만의 장기 휴가 동안 '지치지 않고', '쓰러지지 않고',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뿐이다(이건 절대 대한민국 대표팀의 각오가 아니다).

월드컵 개막전이 열리는 14일 오후, 이제 막 인천공항에서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 모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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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다. 월드컵이지! 러시아 월드컵 2018 러시아어 푸틴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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