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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드라마의 운명 결정할, 연상호 감독의 새로운 도전

10일 첫 방송되는 tvN 월화드라마 <방법>의 작가로 변신한 <부산행>의 감독

20.02.10 09:53최종업데이트20.02.10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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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박신양, 김아중, 전광렬 주연의 SBS 드라마 <싸인>이 최종회 시청률 24.9%를 기록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지금이야 <유령> <시그널> <킹덤>의 작가로 명성이 높아진 김은희 작가의 지상파 진출작으로 유명하지만 방영 당시만 해도 <라이터를 켜라>를 연출했던 영화감독 장항준의 드라마 연출작으로 더 유명했다. 10회까지 연출을 맡았던 장항준 감독은 이후 연출에서 손을 떼고 아내인 김은희 작가를 도와 각본 작업에 전념했다.

천우희, 전여빈, 한지은, 안재홍 등의 현실감 넘치는 연기로 많은 마니아층을 확보했던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은 작년 영화 <극한직업>으로 1600만 관객을 동원했던 이병헌 감독이 연출과 각본에 참여했다. <극한직업>에서도 빛을 발했던 이병헌 감독 특유의 유머코드가 생활밀착형 로맨틱 코미디에도 잘 녹아 들면서 <멜로가 체질>은 낮은 시청률과는 별개로 '수다 블록버스터'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장항준 감독과 이병헌 감독 외에도 <연애시대>의 한지승 감독, <아이리스>의 양윤호 감독, <친구, 우리들의 전설>의 곽경택 감독 등 영화 감독들의 드라마 진출은 종종 볼 수 있다. 10일 <블랙독>의 후속으로 첫 방송되는 tvN 월화드라마 <방법>에서도 대중들에게 꽤 친숙한 영화인이 각본가로 참여했다. 4년 전 영화 <부산행>을 통해 천만 감독으로 우뚝 섰던 연상호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첫 실사영화 연출작을 천만 영화로 만든 애니메이션 감독
 

애니메이션 연출가였던 연상호 감독은 첫 실사영화 연출작인 <부산행>을 통해 천만 감독에 등극했다. ⓒ (주)NEW

 
대중들에게는 <부산행>을 통해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 감독 정도로 알려졌지만 사실 연상호 감독은 이미 스무살 때부터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공식 감독작만 해도 6편이나 되는 중견(?) 감독이다. 20대의 젊은 시절부터 <디 데이>, <지옥-두 개의 삶> 등 단편 애니메이션을 연출했던 연상호 감독은 2011년 96분짜리 장편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을 통해 공식적으로 데뷔했다.

사회적으로 민감한 학교 폭력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돼지의 왕>은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 사상 최초로 칸 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되며 많은 화제를 모았다. 연상호 감독은 2012년작 <창>에서는 군대, 2013년작 <사이비>에서는 종교 문제를 다루며 민감한 문제들과의 충돌(?)을 피하지 않는 패기를 선보였다(<사이비>는 작년에 방영된 OCN 드라마 <구해줘2>의 원작이다).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애니메이션 감독처럼 보였지만 사실 연상호 감독은 애니메이션을 연출하던 시절에도 꾸준히 대중들과의 교감을 시도했다. 특히 <사이비>에서는 양익준, 오정세, 권해효, 박희본 등 대중들에게 비교적 익숙한 배우들에게 더빙을 맡겼다. 훗날 드라마 <응답하라1988>에서 성보라와 장만옥 역으로 유명세를 탄 배우 류혜영과 이민지도 <사이비>에서 단역으로 목소리 출연을 했다.

그렇게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커리어를 이어가던 연상호 감독은 100억이 넘는 제작비가 투입된 블록버스터 실사영화를 연출할 기회를 얻었다. 한국 최초의 좀비 블록버스터 영화이자 국내 역대 흥행 11위(1156만)에 빛나는 <부산행>이었다. 대한민국 영화계의 유일무이한 캐릭터 마동석을 주연배우로 성장시킨 영화이기도 한 <부산행>은 칸 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되며 개봉 전부터 크게 화제가 됐다.

<부산행>은 피가 튀고 사방에서 좀비가 출몰하는 호러와 스릴러, 액션이 뒤섞인 장르임에도 15세 관람가로 상영등급을 낮추면서 청소년과 여성 관객을 사로 잡는데 성공했다. 특히 연상호 감독은 실사영화 첫 연출작이라고는 믿기 힘든 세련된 연출로 <부산행>을 천만 관객이 만족한 웰메이드 좀비영화로 만들었다.

차기작 촬영 끝내고 <방법> 작가로 변신, '연상호식 이야기' 통할까
 

연상호 감독의 차기작 <염력>의 관객은 <부산행>의 10%도 채 되지 않았다. ⓒ (주)NEW

 
<부산행>은 2015년 연상호 감독이 연출해 제2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됐던 애니메이션 <서울역>의 후속작이다. 그리고 <서울역>은 졸지에(?) 천만영화 <부산행>의 프리퀄로 큰 화제를 모으며 지난 2016년 8월 전국400개가 넘는 상영관에서 화려하게 개봉했다. 하지만 극장판 애니메이션에 익숙하지 않은 국내 관객들은 <서울역>에 전국 14만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선물(?)했다.

<서울역>으로 아쉬움을 남긴 연상호 감독은 2018년 <서울역>의 더빙에 참여했던 류승룡과 심은경 주연의 판타지 코미디 <염력>을 통해 명예회복을 노렸다. 하지만 <염력>은 오락 영화가 주는 장르적 쾌감도, 사회고발의 메시지가 주는 깊은 의미도 담지 못한 채 전국 99만 관객으로 막을 내렸다. 천만 감독이 천만 배우들과 함께 야심차게 만든 차기작에서 100만 관객도 모으지 못한 '흑역사'를 남긴 셈이다.

연상호 감독은 작년 10월 <부산행>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강동원, 이정현 주연의 신작 <반도>의 촬영을 마쳤다. 200억 원의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반도>가 여름개봉을 목표로 후반작업이 한창인 가운데 연상호 감독은 '초자연 유니버스 스릴러' <방법>의 각본가로 시청자들을 먼저 만날 예정이다. 비교적 가벼운 소재였던 전작 <염력>이 대중들에게 외면을 받았기 때문에 연상호 감독으로서는 <방법>을 통한 명예회복이 매우 중요하다. 

<방법>은 한자이름, 사진, 소지품 등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저주의 능력을 가진 10대 소녀 소진(정지소 분)과 정의로운 사회부기자 진희(엄지원 분)가 IT대기업 뒤에 숨은 거대한 악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다. 소재 자체가 한국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낯선 장르인 데다가 성동일, 조민수 등 베테랑 연기파 배우들과 <기생충>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신예 정지소의 출연 등으로 시청자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방법>은 2018년에 개봉한 마동석 주연의 영화 <챔피언>을 연출했던 김용완 감독이 연출하고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이 각본을 쓴 다소 실험적인 장르의 드라마다. 만약 <방법>이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받는다면 OCN의 전유물이었던 장르 드라마는 향후 타 방송국에서도 더욱 적극적으로 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연상호 감독의 드라마 진출이 그저 '개인의 도전'만으로 볼 수 없는 이유다.
 

연상호 감독의 드라마 도전작 <방법>이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받는다면 새로운 장르의 드라마들이 더 많이 제작될 것이다. ⓒ <방법> 홈페이지

 
연상호 감독 방법 부산행 반도 정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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