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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으로 인생이 결정되던 그때... 꿈을 꿨던 여성들 이야기

[리뷰] 영화 <작은 아씨들> ‘그레타 거윅’ 만의 스타일로 다듬은 불후의 명작

20.02.13 12:56최종업데이트20.02.13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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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작은 아씨들> 스틸컷 ⓒ 소니픽처스코리아

 
누구에게나 가장 찬란한 순간이 있다. 영화 <작은 아씨들>의 네 자매들은 다시없을 찬란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7년 후 성년이 되어 과거를 회상한다. 동명의 소설을 쓴 작가 조는 성장하는 여성의 꿈, 사랑을 대변한다.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자전적인 소설 영화화

예나 지금이나 글쓰기를 업(業)으로 삼고 싶은 여성들에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여성이 작가가 되기 위해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버지니아 울프의 말이 불문율처럼 여겨질 정도다.

루이자 메이 알코트의 <작은 아씨들>은 실제로 19세기 미국 네 자매와 어머니와의 유대관계를 반영한 자전적인 소설이다. 아버지 에이머스 브론슨 알코트가 초월주의 사상가로 활동했던 점이 자녀들 교육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결혼으로 여성의 삶이 결정되는 때에 태어난 루이자가 작가가 되기란 쉽지 않았다. 루이자가 쓰는 가장 중요한 동기는 경제적인 자립이다. 성(性), 결혼, 사랑에 이중적인 태도를 가진 루이자는 서른세 살에 본격적으로 프로 작가에 입문하게 된다. 여성의 직업 선택이 어려웠던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행보다.

처음으로 성공을 안겨준 작품은 <병원 스케치>다. 남북전쟁이 한창인 1862년에 입대, 야전병원 간호사로 일한 경험으로 1863년 <병원 스케치>를 쓴다. 1868년 발표한 <작은 아씨들>은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어 성공적인 작가이자 안정적인 생활의 밑바탕이 된다. 자매들의 다양한 성격에 자신을 투영하며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매력적인 소설이다. 소녀들을 위해 썼지만 세대를 넘나들며 지금까지도 영광을 누리고 있다.

4인 4색 캐릭터 열전
 

영화 <작은 아씨들> 스틸컷 ⓒ 소니픽처스코리아

 
영화는 무엇보다도 여성의 눈과 목소리를 투영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자매들을 통해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게다가 미묘한 관계를 유지하는 옆집 소년 로리의 활약으로 긴장감도 유지한다.

첫째 메그(엠마 왓슨)는 결혼으로 안락한 가정을 꿈꾸는 19세기 전형적인 여성의 모습이다. 연기에 관심 있고 네 자매 중 가장 아름다운 외모를 소유하고 있다. 둘째 조(시얼샤 로넌)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작가가 되고 싶어 한다. 자매들을 주인공으로 한 연극 시나리오를 쓰며 습작을 이어나간다. 다혈질에 말괄량이이며 연극에서는 늘 남자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옆집에 이사 온 소년 로리(티모시 샬라메)와 친구가 된다. 둘은 자주 붙어 다니며 모험을 떠난다.

셋째, 베스(엘리자 스캔런)는 피아노 치길 좋아하고 집안 일을 즐긴다. 조용하고 섬세하며 착한 성품과 매사에 헌신적이다. 이타심이 뛰어나 가난한 사람들을 보살핀다. 넷째 에이미(플로렌스 퓨)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돈 많은 부자와 결혼해야 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가장 어리지만 자기 의사가 분명하다. 돈이 가진 물질만능주의가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훗날 부유한 대고모 할머니(메릴 스트립)의 후원으로 프랑스 유학을 간다.
 

영화 <작은 아씨들> 스틸컷 ⓒ 소니픽처스코리아

 
어머니 마치 부인(로라 던)은 전쟁에 복역 중인 남편의 대신한 실질적인 가장이다. 이웃에게 친절을 베풀며 딸들을 올곧게 키워낸다. 자신보다 이웃을 먼저 생각하며 솔선수범을 실천한다. 크리스마스 아침에 가난한 이웃과 아침을 나누고, 물질적인 풍요와 성공보다 마음의 풍요를 우선시한다. 돈은 있다가도 없어지지만 영혼을 살찌우는 것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그 사람 자체이기 때문이다.

딸들이 힘들어할 때면 각기 다른 조언을 철석같이 내놓는다. 명언 제조기이자 멘토이기도 한 마치 부인의 혜안도 본받고 싶다. 그중에서도 모두 자신만의 짐을 짊어지고 산다는 말이 인상 깊다. 살아가면서 때로는 등에 진 짐이 버겁기도 가볍기도 하겠지만 모두 각자의 지혜로 짊어지는 방법을 터득하길 바란다고 말한다. 혼자 힘으로만 사는 사람은 없다고 한 대목도 빼놓을 수 없다. 때문에 자매들은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이 커진다.

영화는 혼자 독주하는 플롯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 서로 캐릭터가 섞이며 자연스럽게 독립적인 이야기를 키운다.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매사에 부정적인 대고모 할머니까지 귀여워 보이는 장점이 된다. 크리스마스 장면과 조와 로리가 처음 만나는 장면은 언제 봐도 사랑스럽다. 겨울이 끝나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다시 눈 덮인 크리스마스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해진다.

19세기 고전 명작 21세기 스타일로 만들어져
 

영화 <작은 아씨들> 스틸컷 ⓒ 소니픽처스코리아

 
<작은 아씨들>은 원작 소설의 시간 구성과 같은 1994년 작에 비해 소설의 2부(후반부)에 해당하는 성인이 된 자매를 중심에 둔다. 영화화만 여덟 번째. 19세기 만들어진 스테디셀러 <작은 아씨들>을 21세기 그레타 거윅의 스타일로 완벽히 재해석했다.

자신도 소녀를 거쳐 여성이 되었기에 누구보다도 소녀들을 잘 알고 있기에 가능했다. 그레타 거윅은 배우 출신으로 꾸준히 각본을 썼고, <레이디 버드> 성공 이후 차기작으로 <작은 아씨들>을 택했다. 벌써 단독 연출의 두 번째 작품이자 소포모어 징크스(sophomore jinx, 첫 작품의 성공 후 두 번째 작품의 부진)도 가볍게 타파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원작의 시간 구성을 도치하고 7년 전을 회상하는 방법을 택해 자매들의 우애와 캐릭터를 한껏 살렸다. 누구 하나 뒤처짐 없이 매력적인 인물로 적절히 안배했다. 누구든 영화를 보며 메그, 조, 베스, 에이미가 되는 순간을 만끽할 수 있다.

19세기 여성은 직업을 가질 수 없어 가족을 부양하거나 독립해서 살 수 없었다. 여성은 오로지 결혼을 통해 한 남자의 아내, 아이들의 엄마로만 허락되었다. 독신 여성은 부자이거나 직업 여성, 배우여야만 한다는 대고모 할머니의 뼈 있는 충고가 떠오른다. 대고모 할머니는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한다. "네 엄마처럼, 가난한 남자랑 결혼하지 말고 돈 많은 부자와 결혼해야 한다"라고 말이다. 이와 가장 거리가 멀 것 같은 막내 에이미는 가장 현실적인 어른으로 성장하고 가난하지만 마음이 이끄는 선택을 한 메그도 행복한 가정생활을 이어간다.

다만 조는 결혼하지 않고 살 거라며 뉴욕으로 떠나 작가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조는 글쓰기를 통해 성취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작가는 언제나 능동적이어야 하며 독립적이어야 함을 깨닫는다.

영화 속에서는 소설 <작은 아씨들>을 쓰고 출판사와 협상하는 부분을 추가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편집장과 인세를 조율하고 저작권을 쟁취하며 자전적인 소설을 출간하는 순간의 벅차오름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고전은 바로 시대와 나라, 성별에 구애 없이 유효하다. 리메이크는 자주 독이든 성배에 비견된다. 기본 뼈대를 남겨 두고 각기 다른 옷을 입혀 새 스타일로 만드는 작업은 잘해야 본전치기다. 하지만 1983년생 그레타 거윅은 모두의 기대와 우려를 믿음으로 끌어올렸다. 감독의 전작 <레이디 버드>의 19세기 버전이란 생각도 든다.
     

영화 <작은 아씨들> 스틸컷 ⓒ 소니픽처스코리아

   
어쩌면 둘째 조는 루이자(원작자) 자체라고 해도 무방하다. 조를 연기한 시얼샤 로넌은 그레타 거윅의 페르소나다. 네 사람이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이야기는 세기를 뛰어넘어 우리 앞에 와있다. 21세기는 더 많은 여성상을 원한다. 앞으로 좀 더 많은 여성의 이야기가 회자되길 꿈꾼다.

마지막으로 조의 첫 번째 독자였던 프리드리히(루이 가렐) 교수의 말을 빌려 볼까 한다. "여성은 남성의 평가가 필요치 않다." 여성이 더 이상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길 바란다. 결혼이 성공을 위한 관문이 아닌 사랑의 선택임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으면 된다. 사랑, 일, 인생 모두 자신의 입장에서 선택할지는 오직 당신의 몫이다.
작은 아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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