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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다스리겠단 딸에게 엄마가 건넨 조언... 참 명대사다

[리뷰] 나는 왜 '글 쓰는 여자' 영화에 열광하는가, <작은 아씨들>

20.03.02 14:05최종업데이트20.03.02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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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에서 글쓰는 여자는 조 뿐일까? 나는 영화 속에서 또 다른 글쓰는 여자를 보았다. 엄마 마미 마치는 결국 자기글을 쓸 것이다. ⓒ 김화숙

 
여성 작가가 쓴 소설로 여성 감독이 만든 영화 <작은 아씨들>을 봤다. 이 코로나19 시국에, 조조로 혼자 한 번, 딸과 함께 저녁에 한 번. 글 쓰는 여자 조가 이야기의 중심이면서도 네 자매와 모든 여자들의 이야기였다. 150년 전 그 시대, 글을 써서 돈을 벌고 독립된 인간으로 살아보려 몸부림친 여자. 시시한 이야기라 안 읽을 거라는 통념을 깨고, 자전적 소설로 결국 '대박'을 친 작가 루이자 메이 올컷의 이야기였다.

​이런 유의 작품을 당시엔 분명 별 큰 사건도 없는, 지루하고 소소한, '지지고 볶는' 이야기라 했으리라.

여자들이란 주로 남자들의 아내, 연인, 정부 혹은 어머니로 등장하는 세상이었으니까. 여자들이 앞에 나서서 하는 이야기를 계속 들어줄 독자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이렇게 잘 만들어버리는 30대의 젊은 감독 그레타 거윅을 거장이라 불러 마땅하지 싶다.

주연 시엘사 로넌은 어쩜 연기를 그렇게 잘하냐. <레이디버드>에서도 그러더니 정말 매혹적인 배우다. 역대 일곱 번 째 <작은 아씨들> 영화화라니(솔직히 나도 전에 나온 <작은 아씨들>을 보다가 지루해서 포기한 적 있음을 고백하고 넘어가야겠다)!

여자가 돈 벌 길이 도무지 없어서 조는 글을 써서 팔았다. 늘 잉크가 묻어 있던 조의 손의 이미지는 강렬했다. 여자는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던 시대였다. 소설이 팔리길 원한다면 결말에 여자는 반드시 결혼시켜라, 편집자는 당당하게 요구했다. 여자도 생각이 있고 영혼이 있는 사람인데, 여자에게만 사랑이 모든 것이라 하는지, 조는 묻고 물었다. 돈을 벌어야 해서 편집자의 요구대로 자극적이고 통속적인 글을 쓰기도 했다. <작은 아씨들>이 팔릴 거 같으니까 판권을 넘기라는 편집자 앞에 앉은 조의 표정과 목소리를 보라. "내 책 판권은 내가 가진다."

​"지금 쓰고 있는 이야기가 별로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라서... 누가 읽을지는 몰라."

조가 이런 투로 자매들과 이야기하는 대목이 있다. 이때 에이미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한다(정확히 대사를 옮기긴 어렵지만 내 식으로 쓰자면 이런 식이었다).

"중요하고 안 하고 그건 누가 판단하고 결정하는 건데? 안 중요한 이야긴지 어떻게 알아? 그런 이야길 많이 안 쓰니까 안 읽은 것이고, 안 중요해 보이는 것뿐. 많이 쓰면 중요한 게 되는 거야."

조는 에이미에게 감동한다.

나를 오열하게 한 글 쓰는 여자들

글 쓰는 여자로 가장 먼저 내 머리에 떠오르는 영화는 <디 아워스>다. 버지니아 울프의 고뇌와 미친 글쓰기 그리고 남편과 나누는 대사는 마디마디가 리얼 그대로였다.

<해피 이벤트>에서 출산과 육아에 발목이 묶여 심하게 갈등하던 여주인공이 생각난다. 마지막에 결국 철학박사 커리어를 잠시 밀어두고 자기 이야기로 자판을 두드리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실비아>는 어떠하며 <조용한 열정>은 또 어떤가. 결혼 생활과 시 쓰기를 병행하는 실비아 플라츠의 하루하루는 미쳐가는 전쟁이었다. 결혼하지 않은 에밀리 디킨슨에게도 여자로 사는 삶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영화 < 82년생 김지영 >에서 감독 김도영은 원작 소설과 달리 김지영이 자전적인 글을 쓰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나를 가장 격하게 공감하고 오열하게 한 글 쓰는 여자 영화는 <더 와이프>다. 글을 쓰는 지금도 영화관에 앉아 떨며 흐느끼던 순간이 생생하게 떠오를 정도다(<더 와이프>는 꼭 글로 쓰고 싶은 이야기다).

나는 왜 글 쓰는 여자 영화에 열광할까.

나는 전문 작가도 아니고 글 쓰는 여자로 알려진 적도 없다. 글로 푼돈은 벌어봤지만 생계형으로 써 본 적도 없다. 그럼에도 글쓰기는 내 생애 유일의 꿈이다. 글 쓰겠다 큰소리치고 쓰다가 접고 다시 쓰고, 건강 때문에 쉬고, 오마이 블로그가 문을 닫고, 가본 적 없는 새 길을 가느라 글을 쉬고... 글 붙들고 서성이는 세월이 20년이다. 조와 에이미의 똑똑한 대사가 내 맘에 꽂히는 이유다.

올해 다시 블로그를 만들었다. 내 이야기, 그래 시시하고 별거 아닐 수 있어. 인정. 중요하지 않은지도 몰라. 인정. 그러나 말하지 않고 쓰지 않는데 누가 알아? 중요하고 안 하고 어떻게 판단해? 많이 써야 중요한 게 되는 거지.

여자는 왜 글을 쓸 수밖에 없는가?

그러나 <작은 아씨들>을 조의 글쓰기로만 말하기엔 마음 한 쪽에 아쉬움이 남는다.

조만 글 쓰는 여자일까? 조는 분명 치열하게 글 쓰는 여자 맞다. 그런데?

내겐 조 말고도 글 쓰는 여자가 보였기 때문이다. 누구? 조의 엄마다. 배우 로라 던은 조의 엄마 캐릭터에 너무 잘 어울리는 배우다. <와일드>에서도 엄마가 로라 던이었지. 아~~ 이 엄마. 이 엄마야말로 '글 쓰는 여자'라고 우기면 내가 과한가? 마미 마치의 삶은 글 쓰는 여자의 '은유'라고 말이다. 또 과한가? 여자는 왜 글을 쓸 수밖에 없는가? 여자의 삶에 글쓰기 말고 답이 있단 말인가? 내가 그렇게 감정이입하면서 봤다는 말이다. 엄마의 마음, 고뇌, 표정, 말투, 삶의 방식, 절창의 대사, 그리고 조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것까지. 나는 엄마의 삶에 들어가 영화를 봤다. 엄마는 결국 자기 글을 쓰게 될 것이다. 엄마가 글 쓰는 여자일 수밖에 없다. 수작이다!

조의 엄마는 네 딸들에게 화 한 번 안 내는, 가족과 이웃에게 헌신적인, 신앙심 깊은, 따뜻한 사람이었다.

"엄마는 화내지 않잖아"라는 조의 대사가 엄마의 삶을 압축적으로 말해주는 거 같았다.(사람이 그렇게 살아?)

에이미에게 불같이 화를 낸 후 조가 자책했을 때다. 엄마는 "나도 매일 화가 나는데 다스리는 거"라 말한다. 엄마처럼 그럴 수 있게 배워야겠다는 조에게 엄마는 따뜻하고 깊은 목소리로 말한다.

"넌 엄마와는 다른 방법을 찾으면 좋겠어." "어떤 천성은 누르기엔 너무 고결하단다."

명대사요, 절창이다. 엄마야말로 가슴에 하고 싶은 말을 차곡차곡 품고 사는, 글 쓰는 여자다.

"이제 얼굴 보며 화낼 수 있겠어."

전쟁에 나갔던 조의 아빠가 드디어 돌아왔을 때 엄마가 포옹하며 했던 한마디다. 엄마의 가슴속을 열어 보여주는 말 같지 않은가? 좋은 아내, 좋은 엄마, 좋은 이웃으로 살아온 엄마의 가슴에 쌓인 화를 말이다.

이쯤에서 내 상상의 날개는 결국 폭주한다. 아~~ 조의 엄마는 곧 갱년기를 맞을 거고 눌러 놓은 화를 폭발하는 거다!

엄마는 이제 이전처럼 살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자에게 자기 천성을 누르며 화를 내지 않으며, 참으며, 따스하게 품고 섬기며 살라고? 그게 그렇게 좋으면 네가 그리 살던가! 남편 얼굴 똑바로 쳐다보며 화를 낼지도 모른다. 딸에겐 엄마와는 달리 살라 조언하고 자기 삶은 계속 그대로? 절대 그럴 수 없을걸?(폭주 그만~~~~)

​<작은 아씨들>에서 진짜 글 쓰는 여자는 조의 엄마 마미 마치였다.

과한가?

그럼, 글 쓰게 될 여자는 엄마다, 로 하든가.
덧붙이는 글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 게재된 글
작은 아씨들 그레타 거윅 로라 던 시엘사 로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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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 운동하고, 보고 듣고, 웃고, 분노하고, 춤추고, 감히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읽고, 쓰고 싶은대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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