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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화 원작이 더 낫다"던 아주머니... 제 반론은요

[리뷰] <작은 아씨들>이 새롭게 다가온 이유

20.03.08 15:06최종업데이트20.03.08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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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두 번이나 보았다는 지인의 말도 있었지만 그러잖아도 꼭 보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베스의 죽음으로 유년의 우리가 겪었던 아픔 때문에 더욱 각별한 <작은 아씨들>. 하지만 극장으로 들어가는 길에 마주친 아주머니 한 분이 던진 말에 난 잠시 어리둥절했다.

"별거 없네. 원작이 더 나아."

그제서야 나는 영화가 현대적으로 각색되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당연히 무엇이 그분을 못마땅하게 만들었는지 궁금해졌다. 영화는 시작부터 원작과 확연히 달랐다. 조는 이미 로리의 청혼을 거절한 뒤였고 방황하는 로리 곁에 에이미가 다가서는 장면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가 시시때때로 교차하는 방식으로 플롯이 굴러갔다.

영화의 아련함
 

영화 <작은 아씨들>(2019) ⓒ 소니픽처스코리아

 
현대적으로 각색된 내용은 예상대로 페미니즘이었다. 그 아주머니를 실망시킨 것도 중년층들이 페미니즘에 익숙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페미니즘은 에이미의 변신으로 나타났다. 사치스럽고 허영심이 많지만 얼굴만 예뻐 결국 로리를 조에게서 빼앗아가 그렇게 우리의 미움을 샀던 에이미. 하지만 영화에서 그녀는 화가가 되려는 확고한 꿈이 있는 신여성이었다. 여자는 스스로 돈을 벌 수 없는 당대 현실에 비판적이었으며, 그래서 부유한 남자를 선택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결혼의 정치경제적 속성을 간파한다. 그리고 정략결혼을 파기하고 사랑을 선택했다.

또한 조도 선머슴 같은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독립적인 기상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사랑이 아니라 친구라며 부자인 로리의 청혼을 거절하지만 한편으로 당대 관습을 깨뜨리기 어려워 고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친구를 잃은 고독한 시간에 필생의 역작을 써가며 건강하게 성장해 나갔다. 마침내 대고모가 유산으로 남긴 대저택에 학교를 세움으로써 박애를 실천하는 자유로운 인격체로서 완성되었다. 그리고 소설처럼 베어 교수와 결혼하는 낭만적인 결말을 써주는 대신 출판사에서 판권과 선금을 받아내는 장면에서 실용주의적인 모습이 두드러졌다.

지금도 가슴 아리는 베스의 죽음은 문학에서 비극이 미치는 영향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다른 언니들이 노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을 때 가난한 가족을 홀로 돌보다가 성홍열에 걸려 결국 목숨을 잃을 만큼 베스의 동정심은 남달랐다. 보통 이상의 사람이 예기치 못한 불행을 겪어야 비극이 완성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 떠오르는 부분이었다.

영화는 먼저 베스가 죽지 않고 가족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조의 꿈을 보여주어 관객이 잠시 방심한 틈을 타 베스의 죽음이라는 현실로 반격했다. 만약 베스의 죽음이 없었더라도 이 작품이 이토록 아련하게 마음속에 자리 잡을 수 있었을까.

실제 원작자의 삶
 

영화 <작은 아씨들>(2019)에서 대고모 역을 맡은 배우 메릴 스트립 ⓒ 소니픽처스코리아

 
원작자인 루이자 메이 올컷(Louisa May Alcott, 1832~1888)은 1832년 11월 펜실베이니아 주의 저먼타운에서 <작은 아씨들>에서처럼 네 자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 브론슨 올컷은 진보적인 교육자이자 사상가로 루이자 올컷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브론슨 올컷은 초월주의자인 랠프 왈도 에머슨과 헨리 데이비드 소로, 그리고 낭만주의자인 너새니얼 호손과 친구였다. 그는 물질주의에 반대한 인도주의적 초월주의의 영향으로 엄격한 도덕적 분위기에서 자녀를 양육하였다.

원작에서 크리스마스 아침식사를 어려운 이웃에게 가져다주는 모습에서 그러한 면모가 드러난다. 또한 처음엔 로리의 할아버지가 그들에게 물질적인 은혜를 베푸는 모습을 보면서 언뜻 부자를 미화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금욕적인 청교도의 영향을 받지 않았나 궁금해졌다. 하지만 그의 사상을 알아가면서 어쩌면 그가 부를 독점한 탐욕스러운 부르주아들에게 경종을 울린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노예해방론자이기도 했던 브론슨의 진보적 실험 교육은 당대에는 인정받지 못했다. 따라서 올컷은 소녀시절에 콩코드 지역을 옮겨 다니며 늘 가난하게 살았다. 올컷 일가를 위해 에머슨이 '오처드(과수원) 주택''을 사 준 뒤에야 그들은 정착할 수 있었고 올컷은 이곳에서 <작은 아씨들>을 집필하였다. 그녀는 소설과 달리 평생 독신으로 살았으며, 1888년 3월 쉰다섯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작은 아씨들>로 대표되는 그녀의 작품에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로 널리 퍼진 자유·평등·박애의 정신이 흐르고 있다.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조와, 빈부의 차이를 넘어 올컷 가족과 로리 집안이 서로 평등하게 지내는 모습에서 그러한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올컷은 <작은 아씨들>의 서문에서 자신이 '너무 고통스럽게 살았기 때문에 즐거운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했다. 이미 끝나버린 과거는 툴툴 털어버리고 오늘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 지금 우리가 대단한 것처럼 여기는 욜로를 그녀는 이삼백 년 전에 이미 터득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작은 아씨들 페미니즘 자유, 평등, 박애 부자 인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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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면서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정체성을 단단하게 세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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