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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윤-권민지, 센터·날개 오가며 활약하는 '팔방미인'

[프로배구] 센터와 날개 공격수로 팀에 활력 불어넣는 신예들

20.12.01 10:04최종업데이트20.12.01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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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심장' 박지성은 차범근, 손흥민(토트넘 핫스퍼)과 함께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를 이야기할 때 언제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다. 하지만 박지성이 최고로 불리는 이유는 그가 세계 최고의 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렸거나 월드컵에서 3회 연속 득점을 올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박지성이 현역 시절에 가졌던 최고의 가치 중 하나는 바로 '멀티능력'이었다.

실제로 박지성은 2002 월드컵과 아인트호벤 시절에는 오른쪽 윙포워드로 활약했고 맨유 이적 후에는 필요에 따라 수비형 미드필더로 변신해 상대 에이스를 전담 마크했다(특히 AC밀란의 안드레아 피를로를 막을 때는 '모기'가 되는 것도 감수했다). 주장완장을 차고 출전했던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중앙 미드필더로 나서 한국의 공격을 진두 지휘하며 한국의 사상 첫 원정 16강을 이끌었다.

사실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가 높은 가치를 인정 받는 것은 비단 축구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배구에서도 세터나 리베로 같은 특수 포지션을 제외하면 여러 포지션을 오갈 수 있는 선수가 팀 내에서 쓰임새도 많고 선수로서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최근 자신의 포지션을 떠나 새로운 포지션에서 재능을 발견하고 있는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의 정지윤과 GS칼텍스 KIXX의 권민지처럼 말이다. 

정지윤을 중앙에 묶어 두기엔 공격력이 너무 아깝다
 

정지윤은 중앙은 물론 좌우 어느 방향에서도 공격이 가능한 선수로 거듭나고 있다. ⓒ 한국배구연맹

 
경남여고 시절 에이스로서 홀로 팀을 이끌다시피 했던 정지윤은 201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여고생 국가대표 이주아(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와 박은진(KGC인삼공사), 박혜민(GS칼텍스)에 밀려 전체 4순위로 현대건설에 지명됐다. 당시 현대건설은 김세영(흥국생명)의 이적으로 센터 한 자리에 구멍이 뚫렸지만 180cm에 불과(?)했던 신장 때문에 이도희 감독은 정지윤을 윙스파이커로 키울 계획을 세웠다.

정지윤은 예상대로 수비가 불안했지만 대신 예상을 훌쩍 뛰어 넘는 공격본능을 가지고 있었다. 시즌 중반부터 정시영 대신 주전 센터 자리를 차지한 정지윤은 29경기에서 210득점을 올리며 우승 프리미엄을 얻은 이주아를 제치고 신인왕에 올랐다. 정지윤은 고예림이 가세한 지난 시즌에도 44%의 공격성공률로 272득점을 올리며 MVP 양효진(429점)에 이어 팀 내 토종 선수 득점 2위에 올랐다.

정지윤이 현대건설의 주전센터로 자리를 잡았음에도 이도희 감독은 '날개공격수 정지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정지윤이 좌우 한 자리를 지키며 더 많은 공격을 시도해 준다면 현대건설의 양 날개의 화력은 더욱 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침 현대건설에 서브리시브가 가능한 외국인 선수 헬렌 루소가 가세한 것도 정지윤의 날개 공격수 변신확률을 더욱 높여준 계기가 됐다.

정지윤은 현대건설이 6연패에 빠져 있던 29일 인삼공사와의 홈경기에서 처음으로 센터가 아닌 오른쪽 공격수로 선발 출전했다. 이날 팀 내에서 두 번째로 많은 26회의 공격을 시도한 정지윤은 38.46%의 성공률에 블로킹 2개를 곁들이면서 12득점을 기록했다. 정지윤이 오른쪽 공격수로 나서면서 현대건설은 그 동안 상대적으로 약했던 양 날개의 공격력이 강해짐과 동시에 블로킹도 더욱 높아지는 효과를 동시에 누릴 수 있었다.

물론 정지윤의 날개 공격수 투입이 무조건 정답이 될 수는 없다. 무엇보다 풀타임으로 서브리시브를 전담했던 루소에게 인삼공사의 목적타가 집중되면서 공격까지 흔들린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하지만 6연패의 수렁에 빠지며 반전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던 현대건설에서 센터와 라이트를 오가는 '멀티 플레이어' 정지윤의 활약은 이도희 감독에게는 가뭄의 단비와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윙스파이커로 지명했는데 중앙에서 펄펄 나는 권민지
 

GS칼텍스의 대표적인 '리액션 부자' 권민지는 다양한 표정으로 언니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 한국배구연맹

 
GS칼텍스는 윙스파이커 라인이 강한 팀으로 꼽힌다. 일단 리그에서 가장 강한 토종쌍포로 꼽히는 '쏘쏘자매' 이소영과 강소휘가 버티고 있고 코로나19 사태 전까지는 수많은 남성팬들을 몰고 다녔던 3년 차 유망주 박혜민도 있다. 2018-2019 시즌까지는 세터와 리베로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표승주(IBK기업은행 알토스)도 있었다. 작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GS칼텍스가 권민지를 호명했을 때 팬들이 아쉬움의 탄식을 내뱉은 이유다.

권민지 역시 대구여고 시절 윙스파이커와 센터를 겸했던 유망주다. 탄력이 좋고 윙스파이커로는 신장도 나쁘지 않지만 장신선수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여고배구의 특성상 권민지 역시 팀 사정에 따라 센터 역할을 하기도 했다. 차상현 감독 역시 고교 시절에 센터를 소화했던 권민지의 능력을 높게 평가하며 외국인 선수 메레타 러츠의 백업으로 활용하다가 경우에 따라 센터로도 쓸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권민지는 루키 시즌 러츠의 백업보다는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던 문명화와 김유리를 대신해 센터로 투입되는 시간이 더 많았다. 비록 미들블로커로 활약하기엔 신장(178cm)이 다소 아쉽지만 권민지는 신인다운 패기와 타고난 담력을 앞세워 센터로서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실제로 20경기에서 81득점을 기록한 권민지는 지난 시즌 신인들 중에서 신인왕 박현주(흥국생명,103득점)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득점을 기록했다.

권민지는 프로 두 번째 시즌에도 여전히 윙스파이커로 등록돼 있지만 실제로는 센터로 출전하는 시간이 더욱 많다. 특히 지난 24일 인삼공사전에서는 1세트 김유리의 교체 선수로 투입돼 66.67%의 공격성공률로 11득점을 올리며 GS칼텍스의 3-2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권민지는 센터 포지션에 있으면서도 속공을 주로 시도하기 보다는 러츠와 자리를 바꿔 양 쪽 코너에서 공격을 시도하며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물론 장기적으로 보면 윙스파이커 강소휘(180cm)보다 신장이 작은 권민지를 GS칼텍스의 차세대 주전센터로 키우는 것은 그리 현명한 생각이 아니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포지션에서 44.23%의 쏠쏠한 공격성공률을 기록하고 있는 권민지를 이번 시즌 중앙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센터 포지션에서 기대 이상으로 활약해 주고 있는 만 19세의 프로 2년 차 신예 권민지가 차상현 감독에게 행복한 고민거리를 안겨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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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배구 도드람 2020-2021 V리그 멀티 플레이어 정지윤 권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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