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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도 영화도 문제적이었던 감독 김기덕

'충무로의 이단아' 김기덕 감독의 다사다난했던 삶

20.12.12 12:33최종업데이트20.12.12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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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의 미투 논란을 보도했던 PD수첩 ⓒ MBC

 
한국의 로만 폴란스키인가, 과대평가된 '괴장'인가. '문제적 영화 감독'으로 꼽히던 김기덕이 최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굴곡많았던 삶이 다시 대중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다. 김기덕 감독은 최근 거주하고 있는 유럽 라트비아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려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김기덕 감독의 인생은 그 자체로 한편의 영화였다. 1960년생으로 경북 봉화군 출신의 김기덕은 어린 시절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초등학교 졸업 이후로는 정상적으로 학업을 이수하지 못했고 농업학교를 거쳐 구로공간과 청계천 일대의 공장에서 기술자로 근무하며 일찍부터 생계 활동에 뛰어들어야 했다. 20대에는 해병대에 자원입대하여 하사관으로 복무했으며, 제대후에는 총회신학대학교에 입학하여 종교인의 길을 걷는 듯했으나 중퇴하는 등 다사다난한 젊은 시절을 보냈다. 이때까지만 해도 영화와는 전혀 인연이 없는 삶을 살았다.

1990년, 당시 30세의 김기덕은 그동안 모든 돈을 들고 돌연 프랑스 파리로 떠나 3년 동안 독학으로 그림을 배우고 거리에서 노숙하며 길거리 무명 화가의 삶을 살았다. 이때 우연히 접하게 된 영화의 세계에 흠뻑 빠져들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이 당시 김 감독에게 깊은 영감을 줬던 것으로 알려진 작품들이 조나단 드미 감독의 범죄스릴러 <양들의 침묵>,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기이한 로맨스 <퐁네프의 연인들> 등이었다. 훗날 김기덕의 영화세계에서도 이 작품들의 정서와 흔적이 강하게 묻어나는 것을 알수 있다. 이때부터 김기덕은 '영화 감독'이라는 자신만의 꿈을 가지게 된다.

1993년 한국으로 돌아온 김 감독은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교육원을 수료하고, 1995년 '무단횡단'이라는 시나리오로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데 이어, 같은 해 저예산 영화 <악어>를 완성하며 본격적인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이후 김기덕은 <나쁜 남자>,<해안선>,<섬>,<파란대문>, <빈집>,<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봄봄), <숨>,<시간>,<활>, <사마리아>같은 수많은 화제작들을 양산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 감독으로 성장했다.

김기덕은 역시 비슷한 시기에 활동을 시작했던 박찬욱-홍상수-봉준호 등과 함께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끈 젊은 감독으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다른 감독들과 달리 커리어 내내 대중적이거나 상업적인 작품들과는 거리가 있었고, 국내보다는 국제 영화계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 특징이다.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리우는 칸(2011년 아리랑, 주목할만한 시선상), 베니스(2012년 피에타, 황금사자상-최우수작품상), 베를린(2004년 사마리아, 은곰상-감독상)에서 모두 상을 받은 유일한 한국 감독이라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러시아에서는 특히 평가가 더 높아서 모스크바 영화제의 심사위원장에 위촉되기도 했다.

하지만 김기덕의 영화들은 뜨거운 화제성만큼이나 항상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김기덕 영화에서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화두가 바로 '폭력'과 '여성'을 묘사하는 방식에 있었다. 김기덕의 작품들은 거의 대부분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폭력적인 장면과 극단적인 상황들이 수시로 등장한다.

자신이 짝사랑하던 평범한 여성을 삐뚤어진 복수심과 소유욕에 창녀로 전락시키는 남자주인공이 등장하는 <나쁜 남자>, 간첩을 잡아 공을 세우겠다는 일념에 실수로 민간인을 오인 사살하고 죄책감과 광기에 미쳐가는 군인의 이야기를 다룬 <해안선>, 남편의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자와 짝사랑하는 그녀를 구한다는 명목으로 스토킹과 폭력, 납치 등을 저지르는 남자의 이야기인 <빈 집>, 채무자에게 잔인한 폭력을 행사하며 보험금을 갈취하던 사채업자와, 그에 복수하기 위하여 자신을 엄마라고 속이고 눈앞에서 자살하는 여자가 등장하는 <피에타> 등이 대표적이다. 심지어 김기덕의 영화중 드물게 서정적이고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봄봄>조차도 치정과 살인 등의 설정이 전개상 비중있게 등장한다.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들 정도로 사회 통념과 윤리에 어긋나는 부도덕한 상황들의 속출, 폭력과 섹스가 난무하는 영상, 그리고 이런 자극적인 구성을 영화적 연출보다는 '다큐'의 느낌에 더 가깝게 끝까지 리얼하고 건조하게 몰아붙이는 스타일 등은, 김기덕 영화를 관통하는 전반적인 특징이라고 할수 있다. 또한 그의 영화들에서 묘사되는 남성 캐릭터들은 대부분이 마초적이거나 폭력적인 반면, 여성 캐릭터는 지나치게 수동적이지 않으면 뭔가 다른 속내를 감추고 있는 모순적인 인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김기덕의 작품들은 노골적인 '여성혐오'와 '왜곡된 윤리관-인간관' 의혹으로 항상 많은 비판에 직면해야했다. 김기덕의 불우하고 평탄하지 않았던 개인사가 그의 여성관이나 세계관에도 부정적으로 반영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많았다. 국내 영화팬들 사이에서는 호불호가 갈리면서 김기덕의 영화들은 해외 영화제에서의 놀라운 수상실적과 달리, 정작 자국에서는 제대로 흥행한 작품이 전무하다.

이처럼 국내와 해외에서 극과 극으로 엇갈린 반응 때문에 김기덕에게는 '영화제용 감독'이라는 찬사인지 비난인지 모를 애매한 수식어가 한동안 따라붙기도 했다. 사실 인간 본성의 양면성을 집요하게 탐구하는 김기덕의 주제의식, 파격적인 소재를 남다른 개성으로 풀어내는 영화적 문법은, 유럽 영화계와 국제영화제들이 선호하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이점은 그와 영화세계는 다르지만 국내-해외에서의 평가와 위상이 비슷한 홍상수 감독과도 겹친다.

김기덕 감독도 자신을 향한 비판 여론을 적지않게 의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초기에는 자신을 비판한 언론에 공개적으로 항의 서한을 보낸 일화도 있었고, 2005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관객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영화제용 감독이라고 불리는 게 싫다"고 솔직히 고백하기도 했다. 2012년 <피에타>로 황금사장을 받은 이후에는 "내 영화에 대한 대중들의 오해를 풀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기덕 감독은 생전에 학벌과 출신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고, 이로 인하여 자신이 주류 영화계나 평론계로부터 차별을 받는다는 인식이 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김기덕 감독이 국내 영화제에서도 여러 차례 수상을 차지했고, 그의 작품이 나올때마다 찬사든 비판이든 많은 언론과 영화에서 주목받았던 현상을 봤을때 김기덕 감독이 국내 영화계에서 무시받았다는 주장은 과도한 해석이라는 반박도 있다. 김기덕은 영화제 수상 못지않게 많은 대중들과 접점을 이룰수 있을만한 영화에 대한 갈망도 강했지만 끝내 그 꿈은 이루지 못했다.

김기덕은 그의 영화적 페르소나로 알려진 배우 조재현과 함께 2018년 터진 '미투 논란'으로 인해 급격히 몰락했다. MBC < PD수첩 > 등에서 그의 행적을 조명하면서 그가 영화 현장에서 배우들에게 갑질을 하거나 제왕적 권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는 그동안 논란이 되었던 그의 문제적 영화세계까지 덩달아 재조명받는 계기가 됐다. 사실상 국내 영화계에서 퇴출된 것이나 마찬가지 신세가 된 김기덕 감독은, 결국 자신에게 우호적이었던 유럽으로 떠나 영화 활동을 이어왔고 거주지도 최근 라트비아로 옮긴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매번 화제와 충격을 몰고 오는 작품들을 만들어냈던 '충무로의 이단아'는 결국 고국이 아닌 낯선 타지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본인의 삶과 그의 영화를 둘러싼 수많은 엇갈린 평가와 논란들을 남긴 채. 마치 그의 영화속 수많은 남자주인공들의 마지막 모습처럼 씁쓸하면서도 허무한 여운을 남긴 엔딩이었다. 끝까지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의혹에 대한 제대로 된 해명이나 사과를 남기지 못했다는 점은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훗날의 영화 역사와 관객들은 과연 김기덕이라는 이름을 어떻게 평가할까.
김기덕감독 피에타 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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