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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브걸스에서 비까지, 역주행의 세계

[주장] 가수들의 역주행이 잠깐의 돌풍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

21.03.13 12:56최종업데이트21.03.13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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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브레이브걸스(은지, 유정, 민영, 유나)가 이른바 '역주행' 신드롬을 일으키며 주목받고 있다. 역주행은 연예계에서 주목받지못했던 작품(가요, 드라마, 영화)이나 아티스트가 시간이 흘러 재조명받거나 인기몰이를 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브레이브 걸스는 4년 전에 발매했던 노래 '롤린'이 국내 주요 음원사이트에서 1위까지 오르는가하면, 멤버들의 공연 하이라이트 장면이 담긴 '직캠' 등이 SNS와 유투브 등에서 높은 조횟수를 기록하며 연일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브레이브걸스는 2011년에 처음 데뷔했고 현재의 멤버들은 2016년부터 활동한 2기에 해당한다. 국내 최고의 아이돌 프로듀서이자 작곡가인 용감한 형제(강동철)가 제작한 걸그룹으로 많은 화제를 모았지만 오랜 활동에도 불구하고 성적표는 그리 시원치 않았다. 멤버들의 나이도 어느덧 30대로 접어들며 올해초에는 사실상 활동을 정리하고 해체수순을 밟는 모양새다. 하지만 2월들어 롤린이 갑작스러운 역주행을 통하여 브레이브 걸스는 탄생 10년차(2기 기준 6년차)만에 뒤늦게 가장 핫한 '누나돌'로 재조명받는 이변의 주인공이 됐다.

브레이브걸스의 역주행과 함께 자연스럽게 비교되고 있는 팀이 바로 EXID(하니, 솔지, 정화, 혜린, LE)다. 역주행이라는 말을 연예계에서 본격적으로 유행시킨 원조로 바로 EXID다. 브레이브걸스와 마찬가지로 데뷔 초기 큰 인기를 얻지 못했던 EXID는 2014년 발매했던 '위아래'가 3년만에 뒤늦게 신드롬을 일으키며 엄청난 화제가 된바 있다.

사실 역주행이라는 말 자체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이런 현상은 종종 있어왔다. 대중문화의 시스템이 지금처럼 다양하고 체계적이지 않았던 시절에는 발매된 지 한참된 음반들이 이른바 입소문을 타고 뒤늦게 주목받는 경우가 많았다. 발매된 지 1년이 넘어서 뒤늦게 인기몰이에 성공하며 가요프로그램 1위까지 올랐던 김국환의 '타타타', 이현우의 '꿈', 박정운의 '오늘같은 밤이면' 같은 명곡들은 이른바 '역주행의 시조새'로 꼽힐만한 전설들이다.

특히 '타타타'의 드라마틱한 역주행 사례는 널리 알려져있다. 산스크리트어로 '있는 그대로의 것' 의미하는 타타타는 난해하고 철학적인 가사와 클라이맥스의 호탕한 웃음소리로 기억되며 지금봐도 독특한 분위기의 곡이었다. 원래는 당대 최고의 인기가수였던 조용필을 염두에 두고 만든 곡이었지만, 본인이 자신의 스타일과 맞지않는다는 이유로 녹음을 하고도 정식 음반에 수록하지 않았고, 대신 무명가수였던 김국환에게 기회가 돌아갔다.

김국환은 80년대 <은하철도999><메칸더V> 등 인기 만화의 주제가를 통하여 친숙했지만 가수로서는 타타타 이전까지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타타타' 역시 발매 직후에는 큰 반응을 얻지못하고 잊혀질뻔 했으나, 당시 방송가 최고시청률을 기록하던 최고의 인기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서 배우 김혜자가 이 노래를 따라 부르는 장면이 화제가 되며 일약 재조명받게 됐다.

작가였던 김수현은 우연히 라디오에서 '타타타'를 듣고 깊은 인상을 받아 자신의 연속극에서 무려 두 차례나 그것도 노래 원곡을 거의 다 들려주는 형식으로 삽입했다. '타타타'는 당시 방송3사의 주요 가요프로그램을 휩쓸며 뜨거운 인기를 모았고, 김국환은 '타타타'의 역주행으로 인하여 지금도 김수현을 인생의 은인이라고 생각한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타타타'의 사례에서 보듯 1990년대까지만 해도 대중문화를 소비와 유행을 좌우하는 플랫폼은 TV, 라디오, 잡지, 신문 등 이른바 '레거시 미디어'가 주도했다. 가수나 매니저들이 카세테이프나 음반을 들고 노래 한곡이라도 더 틀고, 기사 한줄이라도 더 실리기 위하여 방송국과 신문사 등을 돌면서 홍보를 하는 것은 익숙한 풍경이었다. 가수의 노래와 이미지를 홍보할 수 있는 차가 한정되어있던 시절에는 TV 출연 자체가 가수들에게는 엄청난 혜택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매체가 급속하게 늘어나고 연예엔터테인먼트 경쟁도 고도로 발전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자고나면 새로운 노래와 가수가 쏟아져 나오고 경쟁이 포화상태에 이른 요즘, 초반에 팬들의 시선을 끌지못하면 뒤늦게야 다시 주목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EXID나 브레이브 걸스의 역주행이 그 자체로 화제가 된 것도 이런 희소성 때문이다.

'위아래'와 '롤린'의 역주행에는 모두 '직캠'이라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직접 촬영한 캠동영상의 약자로 팬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촬영한 모습을 유투브나 SNS 등에 올리는게 유행이 되었고, 아예 직캠만 전문적으로 촬영하는 팬들도 날로 늘어나고 있다. 방송에서 편집된 영상과는 다른 현장감, 규제와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외부 공연에서만 볼 수 있는 아티스트의 매력을 담아내는 것이 바로 직캠의 강점이다. 브레이브걸스 유정과 EXID의 하니 등 팀내 인기멤버들은 군부대 위문공연이나 축제 행사에서 공연하는 모습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역주행 신화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팬들이 직접 영상을 촬영하고, 다른 팬들이 그 콘텐츠를 함께 공유하며 노래와 아티스트의 숨겨진 매력을 확인하고 온라인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팬덤이 형성된다. 더구나 K-POP이 발전한 한국에서는 코로나19사태 이전까지 방송국 무대나 대형콘서트가 아니더라도 대학가나 군부대 공연, 각종 지역 축제 등 가수들이 공연할 수 있는 행사가 많았다.

여기서 TV나 언론같은 기존 미디어 매체에는 전혀 의존하지 않고서도 팬덤과 온라인을 통한 화제몰이가 가능한 시대가 됐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만큼 아티스트의 매력을 알릴 수 있는 창구가 다양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팬들이 역주행 신드롬에 더 뜨겁게 반응하는 이유는, 오로지 자신의 안목으로 기존 레거시 미디어나 주류 엔터테인먼트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나 음악의 매력을 직접 발굴-육성해냈다는 성취감 때문이다.

또한 2020년을 강타했던 비(정지훈)의 '깡' 신드롬은 조금 다른 의미의 역주행 신화를 대표한다. 비는 인지도와 유명세에서 이미 성공했던 가수지만, 지난 몇 년간은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7년 발표한 '깡'은 처음 선보일 당시만 해도 비의 과도한 허세이미지와 뒤처진 트렌드 감각을 비꼬는 의미에서 나쁜 쪽으로 유명세를 탔다. 깡을 통하여 비를 까는 것이 온라인 상에서 일종의 '밈'으로 자리잡으며 어마어마한 조롱의 대상이 되어야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뒤에는 난해하지만 중독성 있는 후렴구와 안무가 재평가받으며 '1일1깡'이라는 신조어를 자아낼만큼 오히려 역주행에 성공했고, 비에게 '제2의 전성기'를 열어주는 전화위복이 됐다. 비가 2020년 <놀면 뭐하니?>의 프로젝트 그룹 '싹쓰리'를 통하여 재기할수 있었던 것도 '깡 신드롬'이 바탕이 됐다.

여기서 '깡'의 인기몰이를 주도한 것은 누리꾼들의 풍자에 가까운 기상천외한 댓글놀이에서 비롯됐다. 같은 음악이라도 그 시대 대중의 반응이나 흐름에 따라 전혀 다른 평가가 나올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장면이다.

물론 역주행이 성공할수 있었던 데는 아티스트 역시 자신에게 돌아올 기회를 잡을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비는 한때 '깡'에 쏟아지던 대중의 조롱과 비판을 '자신을 안주삼아 함께 웃고 즐기는 놀이'로 기꺼이 승화시키는 대인배 기질을 보여주며 비호감 이미지를 호감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브레이브걸스나 EXID는 아직 대중의 주목을 받지못하던 시절에도 이미 마니아 팬들 사이에서는 뛰어난 실력파 그룹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이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온 무대와 음악, 팬들을 대하는 '진정성'은 대중들도 그들의 역주행에 진심으로 인정하고 응원하게 만드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역주행이 잠깐의 반짝 돌풍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대중의 평가는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다. 유투브라는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대중의 관심으로 얻게 된 기회를 잘 활용하여, 제2의 깡 신드롬이나 제3의 브레이브걸스같이 재평가받을 기회를 잡는 아티스트들이 더 많이 발굴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브레이브걸스 롤린 역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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