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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왜 두려운지 묻는 10살... 이 영화가 아쉬운 이유

[리뷰] 영화 <서복> SF 장르 클리셰로 가득한데... SF 아니라고?

21.04.25 09:47최종업데이트21.04.25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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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복> 포스터 ⓒ STUDIO101, CJ ENM


과거의 사건으로 인해 트라우마를 안은 채로 병까지 얻어 시한부 인생을 사는 전직 정보국 요원 기헌(공유 분). 은둔생활을 하는 기헌에게 정보국의 안부장(조우진 분)은 극비 프로젝트로 탄생한 인류 최초의 복제인간 서복(박보검 분)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키라는 임무를 맡긴다. 내일의 삶이 절실한 기헌은 서복을 이용한 치료를 기대하며 제안을 받아들인다.

서인연구소의 책임 연구원으로 서복을 탄생시킨 임세은(장영남 분)과 신학선(박병은 분)의 협력을 받아 서복 이동 작전에 나선 기헌. 그런데 정체 모를 세력의 공격을 받아 기헌과 서복은 납치를 당하고 만다. 가까스로 빠져나온 둘은 특별한 동행을 시작하게 된다.

복제인간 또는 유전자 복제를 다룬 영화의 역사는 깊다. 인간과 동물의 융합을 다룬 <닥터 모로의 DNA>(1932)는 1977년, 1996년 두 차례나 리메이크 되었다. 계보의 유명 작품으론 <쥬라기 공원>(1993), <저지 드레드>(1995), <가타카>(1997), <아일랜드>(2005), <더 문>(2009), <네버 렛 미 고>(2010), <레플리카>(2019), <제미니 맨>(2019) 등이 있다. 이들 영화는 유전자 복제가 초래한 재앙이나 윤리의 문제점을 장르의 형태로 보여주었다.
 

영화 <서복>의 한 장면 ⓒ STUDIO101,CJ ENM

 
<서복> 역시 복제인간을 소재로 삼았다. <불신지옥>(2009)으로 청룡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고, <건축학개론>(2012)으로 419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대성공을 거둔 이용주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맡았다. 

<불신지옥>은 공포/미스터리다. <건축학개론>은 멜로/로맨스다. 그런데 <서복>은 SF/액션/드라마 장르에 속한다. 장르의 변화에 대해 이용주 감독은 2021년 4월 12일 열린 <서복> 언론시사회 후 기자간담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다. 장면, 이야기의 외피가 장르라고 생각한다. 차기작의 장르를 정하기보단 <불신지옥>의 테마가 두려움이었는데 그 이야기를 확장하고 싶었다. 그 이야기를 만들다 보니 복제인간이란 소재가 어울릴 것 같았다."
 

영화 <서복>의 한 장면 ⓒ STUDIO101,CJ ENM


<서복>은 죽지 않는 복제인간 서복과 죽음을 앞둔 남자 기헌이란 대조적인 두 존재가 만나 서로 동행하는 과정을 담았다. 로드 무비의 형식으로 둘이 이해하게 되고 종국엔 구원을 받는다는 내용을 그린다. 그 속에서 삶과 죽음, 인간의 두려움을 탐구한다. 

<서복>은 무한성과 유한성이란 어려운 철학 문제를 다룬다. 그런데 기헌과 서복의 입장과 심리를 보여주며 관객을 설득하는 것이 아닌, 단순히 서복의 대사로 표현한다. 극 중에서 정신 나이가 10살 남짓한 서복은 '죽음이 왜 두려운가?', '사는 건 좋은가?'라며 질문을 툭툭 던진다. 알면서 묻는 건지, 진짜 몰라서 묻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이용주 감독은 "보통 이런 (복제인간) 이야기는 주인공이 복제인간이지만, <서복>은 복제인간을 바라보는 기헌의 시선, 평범한 우리들의 시선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기헌 캐릭터가 제대로 구축이 되질 않다 보니 몰입하기가 어렵다. 기헌이 과거에 무슨 실수를 저질렀는지, 그는 왜 삶에 그리도 집착하는지 영화는 제대로 설명하질 못한다. 

기헌은 서복과 하루 이틀 동행한 후에 갑작스레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감정의 변화를 일으킨다. 도대체 서복의 무엇을 보고 그런 건가? 단지 연민을 느낀 건가. 일부 관객이 둘의 관계를 '퀴어'라고 느낀 건 단순한 오해가 아니다. 그것 외엔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영화 <서복>의 한 장면 ⓒ STUDIO101,CJ ENM


조연 캐릭터도 편의적으로 소비한다. 안부장의 행동은 국가를 위한 건지, 아니면 인류를 위한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처음엔 냉정함을 유지하던 임세은 박사는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막판에 급변한다. 서인그룹의 회장(김재건 분)과 연구원 신학선은 인류 최초의 복제인간을 만든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어설프다.

국제 정세의 묘사도 단순하다. 영화 속에서 미국 정부는 인류를 걱정하며 우리 정부에 서복의 폐기를 요구한다. 북한의 핵무기를 둘러싼 우리나라,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이 치열한 외교 전쟁을 벌이는 걸 실시간으로 접하는 시대에 이런 순진한 설정이라니. 

<서복>은 SF 장르와 슈퍼히어로 장르를 결합한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복이 뇌파를 사용해 자기장을 형성하는 능력은 한 줄 설명에 그친다. 서복의 잠재적인 능력을 알면서 서인기업과 정보국은 아무런 대응 조치를 마련하지 않는다. 이런 무능한 조직에서 인류 최초의 복제인간이 나온 건 기적이다. <서복>은 무려 순제작비가 160억이 투입된 작품이지만 스펙타클 면에서는 아쉽기만 하다. 마지막 장면도 할리우드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지겹게 보았던 장면의 연속이다.
 

영화 <서복>의 한 장면 ⓒ STUDIO101,CJ ENM


이용주 감독은 한 번도 <서복>을 SF 영화라 소개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제작사, 투자사, 배급사 모두 <서복>을 SF 영화라 생각하지 않았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러나 정작 영화엔 SF 장르의 클리셰로 가득했다. 이는 앞서 복제인간, 유전자 조작을 다룬 소설, 영화들이 어떻게 소재를 다루었는지를 고민하지 않았다는 변명에 불과하다. 요즘 코로나 19로 인해 한국 영화계가 어렵다는 하소연이 곳곳에서 들린다. SF 영화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관계자들의 안일함이 더욱 아쉬운 이유다.
서복 이용주 박보검 공유 조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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