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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남우주연상, 단 16분으로 증명한 이 배우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아카데미 주요 5개 부문 휩쓴 <양들의 침묵>

21.06.17 15:11최종업데이트21.06.17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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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아카데미 시상식을 빛냈던 많은 명작 영화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역대 최고로 꼽히는 세 작품을 꼽으라면 바로 1959년에 개봉한 <벤허>와 1997년 개봉작 <타이타닉>, 그리고 2003년 개봉작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을 들 수 있다.

<벤허>는 196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윌리엄 와일러), 남우주연상(찰톤 헤스톤) 등 무려 11개 부문을 휩쓸며 '영원불멸의 영화'로 불렸다. 하지만 무려 38년의 세월이 지난 1998년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이 또 한 번 11개 부문을 휩쓸며 <벤허>와 타이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다시 6년 후 피터 잭슨 감독의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이 <벤허>,<타이타닉>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세 번째 전설에 등극했다. 특히 <반지의 제왕>은 <반지 원정대>로 4개 부문, <두 개의 탑>으로 2개 부분을 수상하면서 시리즈 3편으로 총 17개의 오스카 트로피를 휩쓰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이 위대한 세 작품들도 작품상과 남녀주연상, 감독상, 각본상(각색상) 등 주요 5개 부문을 휩쓰는 소위 '그랜드 슬램'의 주인공이 되진 못했다. 올해까지 93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아카데미 시상식 역사에서 주요 5개 부문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영화는 1934년 작 <어느 날 밤에 생긴 일>과 1975년작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그리고 1991년에 개봉했던 조디 포스터와 앤서니 홉킨스 주연의 <양들의 침묵>까지 총 3편 뿐이다.
 

<양들의 침묵>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요 5개 부문을 휩쓴 마지막 영화다. ⓒ 오리온 픽쳐스 코퍼레이션

 
스릴러 장르에 특화된 배우 조디 포스터

안젤리나 졸리로 대표되는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지만 할리우드 최고의 여성 배우를 이야기할 때 조디 포스터의 이름은 언제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일찌감치 아역배우로 활동하며 남다른 떡잎을 보였던 포스터는 1976년 14살의 나이에 <택시 드라이버>에서 어린 매춘부 역으로 단숨에 주목 받았다. 조디 포스터와 아카데미의 인연이 시작된 시기이기도 하다(여우조연상 후보).

<택시 드라이버> 이후 수많은 출연제의가 들어왔지만 포스터는 학업에 전념하기 위해 연기활동을 잠시 중단했다. 예일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포스터는 1988년 법정 스릴러 <피고인>에 출연했다. 조디 포스터는 <피고인>을 통해 골든 글러브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최고의 배우 반열에 올랐다. <피고인> 후에도 다작을 하지 않으며 신중하게 영화에 출연하던 포스터는 1991년 심리 스릴러 <양들의 침묵>을 선택했다.

<양들의 침묵>에서 FBI 연수생 클라리스 M. 스털링 역을 맡으며 섬세한 심리변화를 연기한 조디 포스터는 199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다시 여우주연상을 차지했다. <양들의 침묵>은 여우주연상뿐 아니라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색상까지 주요 5개 부문을 휩쓸는 기염을 토했다. 1900만 달러의 많지 않은 제작비로 만들어진 <양들의 침묵>은 세계적으로 2억7200만 달러의 성적을 올리며 흥행에서도 크게 성공했다.

3년 동안 2개의 아카데미 트로피를 차지하며 최고의 배우로 우뚝 선 조디 포스터는 같은 해 <꼬마 천재 테이트>를 연출하며 감독으로 데뷔했다. 포스터는 90년대까지 <써머스비>, <매버릭>, <넬>, <콘택트> 등에 출연하며 연기력과 흥행력을 갖춘 대표적인 여성 배우로 이름을 날렸다. 2000년대 들어서는 영화를 찍는 횟수가 줄어들었지만 <패닉룸>, <플라이트 플랜>, <브레이브 원> 등 스릴러 장르에서 여전히 인상적인 연기를 뽐냈다.

지난 2013년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받으며 커밍아웃을 했던 조디 포스터는 최고의 연기파 배우에 감독으로도 맹활약하며 많은 후배들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2011년 멜 깁슨 주연의 <비버>, 2013년 클레어 데인즈 주연의 <플로라 플럼>을 연출했던 포스터는 2016년 조지 크루니와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머니 몬스터>를 연출했다. 포스터는 올해 <모리타니안>으로 골든글러브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다시 최고배우의 위용을 뽐냈다. 

초짜 FBI 요원이 감당하기엔 벅찼던 한니발 렉터
 

<양들의 침묵>은 스털링과 한니발 렉터의 대화 만으로도 관객들에게 최고의 영화적 긴장감을 안겨줬다. ⓒ 오리온 픽쳐스 코퍼레이션

 
<양들의 침묵>은 희대의 연쇄 살인마 한니발 렉터가 등장하는 토마스 해리스의 소설 4편 중 2편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소설은 <레드 드래곤>,<양들의 침묵>,<한니발>,<한니발 라이징>의 순서로 나왔지만 영화는 <양들의 침묵>,<한니발>,<레드 드래곤>,<한니발 라이징>의 순서로 제작됐다(<한니발 라이징>은 한니발의 청년기를 다룬 '프리퀄'이다). 따라서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한니발(앤서니 홉킨스 분)은 이미 감옥에 갇힌 상태로 나온다. 

한니발 렉터 사건이 종료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피해자의 살가죽을 벗겨서 살해하는 버팔로 빌(테드 레빌 분)이라는 또 다른 엽기적인 살인마가 등장한다. FBI 행동과학부 과장 잭 크로포드(스콧 글렌 분)는 한니발 렉터로부터 버팔로 빌에 대한 정보를 캐내기 위해 교육과정도 채 수료하지 못한 견습생 클라리스(조디 포스터 분)에게 한니발에 대한 수사를 맡긴다. 하지만 신참 FBI가 감당하기에 한니발 렉터는 너무 거물 범죄자였다.

연쇄살인범이자 유능한 정신과 의사인 한니발은 클라리스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이용해 우월한 심리 싸움을 벌인다. 버팔로 빌에 의해 상원의원의 딸이 납치되는 사건이 벌어지자 클라리스는 병원으로의 이감을 대가로 거래를 하지만 한니발은 오히려 그 상황을 이용해 탈출을 감행한다. 한니발의 탈출 장면은 매우 끔찍하지만 영화 속에서 한니발에게 감정이입을 한 관객들은 이 장면에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클라리스와 크로포드가 이끈 경찰들이 같은 시간에 다른 집을 찾아간 편집은 <양들의 침묵>에서 가장 긴장되고 역동적인 장면이다. 사실 지금 보면 대단할 것도 없지만 90년대 초반 시점에서 보면 교차편집을 이용한 화면구성은 꽤나 파격적이었다. 또한 클라리스가 집안에 있는 나방을 통해 버팔로 빌의 정체를 알아내는 장면도 신선했다. 그렇게 어둠 속에서 버팔로 빌을 처치하고 상원의원의 딸을 구해내는 클라리스는 FBI 정식 요원으로 임명된다.

하지만 모든 사건이 종료되고 축하 파티를 할 때 클라리스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온다. 바로 탈출에 성공한 한니발 렉터였다. 그리고 한니발은 클라리스의 활약을 축하하며 "옛 친구와 저녁약속이 있어서"라고 말한 후 전화를 끊는다. 여기서 옛 친구란 한니발이 수감된 교도소의 소장 프레데릭 칠튼(앤서니 힐드 분)이었고 저녁식사를 한다는 말은 칠튼 박사를 죽이겠다는 살인예고였다(게다가 한니발은 인육을 먹는 식인종이다).

오스카 남우주연상, 단 16분이면 충분했다
 

앤서니 홉킨스는 단 16분 출연이라는 짧고 굵은 연기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차지했다. ⓒ 오리온 픽처스 코퍼레이션

 
젊은 관객들에게는 토르와 로키의 아버지 오딘으로 더 유명한 앤서니 홉킨스는 <머나먼 다리>, <남아있는 나날>, <닉슨>, <아미스타드> 등 많은 영화에 출연한 1937년생 노장배우다. 하지만 그가 아카데미 트로피를 들어 올린 캐릭터는 바로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였다. 한니발은 홉킨스의 '인생작'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대표 캐릭터다(홉킨스는 훗날 제작된 <한니발>과 <레드 드래곤>에도 모두 출연했다).

사실 <양들의 침묵>에서 한니발 렉터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대부분 감옥에 갇혀 있고 그나마 이동할 때는 전신이 묶여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양들의 침묵>에서 홉킨스가 등장한 장면은 16분 내외에 불과하다. 하지만 16분 동안 엄청난 존재감을 뿜어낸 홉킨스는 <케이프 피어>의 로버트 드니로, <피셔 킹>의 로빈 윌리엄스, <사랑과 추억>의 닉 놀테 같은 쟁쟁한 배우들을 제치고 1992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차지했다.

감옥에 갇힌 한니발 렉터를 대신해(?) 엽기적인 살인 행태를 보인 인물은 '버팔로 빌'로 불리던 제이미 검브였다. 성전환 수술을 거부당한 후 여성의 육체에 대한 심한 집착을 갖게 된 버팔로 빌은 과거 한니발 렉터에게 진료를 받은 경험이 있다. 버팔로 빌을 연기한 배우 테드 레빈은 <양들의 침묵> 이후 <히트>, <알리>, <아메리칸 갱스터>, <셔터 아일랜드> 등에 출연했다.

<양들의 침묵>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거머쥔 조나단 드미 감독은 1993년 <필라델피아>를 연출했고 1996년에는 톰 행크스가 연출한 <댓 씽 유 두>를 제작하는 등 무난한 행보를 이어갔다. 2002년 박중훈의 할리우드 진출작 <찰리의 진실>이 참패를 거두며 슬럼프에 빠졌던 드미 감독은 2004년 <맨츄리안 켄디데이트>, 2008년 <레이첼, 결혼하다>로 재기에 성공했지만 지난 2017년 식도암에 의한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양들의 침묵 조나단 드미 감독 조디 포스터 앤서니 홉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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