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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시효 지난 '개구리 소년 사건', 끝나지 않은 아픔

[TV 리뷰] SBS <당신이 혹하는 사이2>

21.09.10 14:01최종업데이트21.09.10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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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당신이 혹하는 사이2>(이하 당혹사)에서 '대구 개구리소년 실종사건'과 '미국발 피자게이트 음모론' 이야기를 다뤘다. 9일 방송된 <당혹사>에서는 아직도 말끔하게 해결되지 못한 비극적인 미제 사건들의 미스터리가 시청자들에게 진한 여운을 남겼다.

1991년 3월 26일, 30년 만에 부활한 지방자치 선거가 있던 '임시 공휴일'에 절친한 다섯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고 함께 동네 뒷산인 와룡산으로 향했다. 하지만 해가 지도록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도롱뇽 알을 주우러갔다는 이야기가 개구리로 와전이 되면서 아이들에게는 개구리 소년으로 불리게 됐다. 부모들은 생업을 중단하고 아이들을 찾아 전국을 헤맸고, 경찰과 정부가 나섰고, 국내 단일사건 사상 최대규모인 연 35만여 명의 인원이 동원돼 수색 작업을 이어갔지만 끝내 아이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그로부터 11년의 세월이 흘러 2002년, 어느 등산객에 의하여 사라진 아이들은 와룡산에서 유골로 발견된다. 이 사건은 2006년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아이들이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는 영구미제로 남았다. 변영주 감독은 최근에 이 사건이 온라인과 유투브에서 다시 주목받으며 여러 가지 새로운 가설들이 등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변영주는 "여기서 사건을 해결할 또다른 단서가 있을지, 아니면 또다른 음모론으로 유가족에게 상처를 줄지 고민해봐야 한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개구리소년의 첫 번째 음모론은 범인이 교사일 것이라는 가설이다. 2011년 개구리소년 이야기를 다룬 SBS <그것이 알고싶다> (이하 그알)영상에 달린 댓글에는 '그 지역 학교에 근무하던 교사이라면 와룡산의 지리를 잘 알고 있을 것이고, 아이들 5명을 성인 1인이 흉기나 위협없이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선생님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나온다.이 댓글은 큰 화제를 모으며 수많은 누리꾼들의 공감을 얻었다.

<그알>은 방송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와의 인터뷰를 통하여 범인은 와룡산 주변에서 오래 생활하고, 공구를 다루는데 능숙하며, 1991년 사건 이후 수개월내에 현장 일대를 떠난 인물일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유족과 관계자들의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유력한 혐의선상에 오른 교사는 아무도 없었다.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전 대구경찰서 수사반장은 "체벌 이상의 심각한 폭력을 저지른 교사가 있었다면 '수사첩보'가 나왔거나 교육청에서도 제보가 나왔을 것"이라며 "집중적으로 사건을 조사했지만 그런 사항은 없었다"며 교사 용의자 설을 일축했다.

프로파일러 권일용 교수는 "범인이 선생님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면식범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인데, 그것만으로 단정하기에는 우려스럽다"라며 "초등학생 여러 명이 생면부지의 성인에게 언어적인 위협만으로 산속까지 끌려가 피해를 당한 실제 사례도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변영주 감독은 "실종사건 당시 현상금이 4200만 원으로 집한 채 가격이었다. 경찰과 교육청에서도 나서서 발벗고 수사했다"며 "선생님이라면 범행을 저지르고 조용히 지역사회를 떠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게 당시 수사팀의 결론"이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 음모론의 키워드는 도사견과 고스트박스였다. 산속에서 도사견을 키우던 주인의 개가 이탈한 개구리 소년 중 한 명을 물어서 죽이고 말았다는 것. 처벌이 두려운 나머지 남은 아이들까지 모두 살해하고 구미로 야밤도주했다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개구리 소년이 실종되었을 때 근처에 도사견 사육장이 있었다는 것이 확인됐다. 또한 발견 당시 소년들의 유골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큰 구멍이 뚫려 있었다. 권일용 교수는 부검 결과 총상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결론이 내려졌다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당시 부검자료에 기초한 법의학자들의 판단은 어땠을까. 유성호 서울대 법의학 교수는 "개가 야생동물이 물었다고 할만한 골절이나 흔적이 없었다. 오히려 유골의 상태를 보면 인위적인 도구에 의한 손상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설명했다. 경찰 역시 당시 견주들에 대한 조사가 있었으나 아무런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시청자를 분노하게 하는 거짓 제보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한 누리꾼이 올린 댓글에는 "개구리소년 사건의 범인을 내가 안다"고 주장하며 특정 기자의 실명까지 거론하며 제보를 했지만 기자의 취재거부로 범인을 잡는 게 무산되었다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확인 결과 정작 해당 기자는 이런 제보를 받은 사실이 없었다. 배우 봉태규는 "장난 전화와 다를 게 없다"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다음 음모론은 가장 충격적이게도 부모에 의한 살해설이었다. 개구리소년중 한 명인 종식군의 부친이 아이들을 살해했고, 내부에서 벌어진 사건이 아니라 외부(와룡산)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보이기 위하여 조작했다는 주장이다. 모 유명대학의 교수였던 한 범죄심리학자의 주장으로 제기된 음모론은 2011년 개구리소년을 소재로 제작된 영화 <아이들>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당시 교수는 근거로 종식군의 집에 갔다가 할머니가 하늘에 손을 흔들거나(아이들이 이미 죽었다), 땅바닥에 H자를 썼다(벽속에 시신이 있다)는 행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하여 전국민의 시선이 종식군 아버지인 김철규씨에게 쏠렸고, 그는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고자 집 발굴작업을 허락했다. 그리고 1996년 1월, 경찰들이 투입되어 유족의 집을 부수는 대대적인 수색작업이 벌어졌으나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부모 범인설을 강력하게 주장하며 이 소동을 일으켰던 해당 교수는 "파봐서 안나오는데 어떡하나. 형사처벌받기로 했으니 하는 수 없다.며 황망하게 자리를 떴다. 패널들은 뻔뻔하고 무책임한 교수의 모습에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고, 제작진은 '슬픈 코미디'라는 자막을 달았다. 모든 진실이 밝혀진 이후 김철규씨가 인터뷰에서 "(유족의) 가슴에 못을 박아도 분수가 있지"라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권일용 교수는 "유족은 아이들을 찾아주겠다고 접근한 유명 대학의 교수를 고마워하며 믿고 따라다녔는데, 교수는 유족들이 자신을 감시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할머니의 동작은 아이들이 실종되기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습관같은 것인데, 교수가 주변에 확인도 하지 않고 혼자 해석을 내린 것"이라며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했다. .

유족들은 실종된 아이들을 찾기 위하여 생업도 포기하고 전국을 헤맸다. 김철규씨가 1992년 한 신문사에 도움을 호소하며 보낸 편지에서 "삶의 터전인 직장을 떠나 추운 겨울거리를 헤메는 사람이 더는 생기지 않게 해주십시오"라고 부탁한 글귀는 듣는 이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김철규씨는 안타깝게도 아이들을 다시 보고싶다는 소원을 이루지못하고 유해가 발굴되기 불과 1년전인 2001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음모론은 가장 최근에 제기된 것으로 아이들이 살해된 것이 아니라 자연사했다는 주장이다. 당시 아이들이 추위와 비를 피하기 위하여 옹기종기 모여있다가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는 주장이다. 당시 대구경찰서 강력과장으로 수사를 지휘했던 김영규씨는 "사건 발생은 3월로 겨울철이다. 아이들이 비를 맞아 한기가 들고 가파른 산길을 내려올 수 없었다"며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갖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 수사팀은 타살이라고 발표한 경북대 법의학팀의 결론을 믿지 않았고 오히려 수사기록 유출로 고소하기도 했다.

유골의 머리에 난 상처 등 타살 정황을 증명하는 과학적 근거들에 대해서는 "유골이 발견된 지점은 1m 높이의 폭포가 있다. 아이들이 사망하고 두개골이 석회화되고 난 후 풍화작용에 의하여 부서지는 돌이 위에서 유골을 내리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유성호 교수는 "저체온사는 지형지물과 위치만 보고 내릴수 있는 진단이 아니다. 머리의 그 정도 상처를 낼 정도라면 중력이 강한 돌일텐데, 안쪽으로 들어간 것 외에도 주변에 여러 개의 골절선이 나타나야 한다"며 김영규씨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어 "아이들의 두개골은 어른보다 유연하다. 그때 강력한 둔기에 의하여 음푹 들어간 생전 손상이 발견되는데 저체온사라는 주장은 진단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변영주 감독은 당시 법의학자의 증언을 통하여 현장에서 "유골을 긴뼈는 긴뼈대로 두개골은 두개골끼리 마치 증거품을 다루듯이 모아놓으며 현장 보존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혹시 존재할지도 모를 범인의 DNA같은 중요한 증거들이 부주의한 관리로 놓쳐버렸다는 것. 권일용 교수는 발견 당시 "개구리소년의 유골이라는 것을 알고 시작했던 것이 아니라 접근방식이 달랐다. 너무 막연하게 나가서 발굴을 시작했다"고 이야기했다. 

개구리소년은 아직도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현재진행형의 이야기다. 아동범죄 문제에 대한 사회 관심이 커지면서 관련 대책이나 제도는 많이 개선되고 있는 중이지만 아직도 실종아동찾기나 미제사건을 전문적으로 전담하여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은 미흡한 수준이다. 사회안전망 강화 차원에서라도 별도 기구 설치를 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 에피소드 내내 개구리소년의 실종 미스터리 못지않게 비중있게 등장하는 내용은 잘못된 제보나 의심으로 인하여 유족들에게 전해지는 '2차 가해'에 대한 내용이다. 이야기는 오프닝에서부터 장난 전화 장면으로 시작된다. 아이를 잃어버리고 비통한 마음으로 수화기를 든 부모에게 장난 전화로 돈을 요구하고 실종된 아이의 이름을 사칭하는 잔인한 장면은 지켜보던 패널들을 경악하게 했다.

변영주 감독은  <아이들>을 연출한 이규만 감독이 김철규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던 해당 심리학자를 찾아가 인터뷰했던 일화를 공개했다. 놀랍게도 교수는 언론에 이미 공개된 부검결과도 알지 못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부검결과를 듣고도 "그 유골이 아이들의 것이란 증거가 있나. 아이들의 두개골을 쉽게 구할 수 있다"며 우겼다는 것이다. 왜곡된 '확증편향에 빠진 어리석은 인물의 2차 가해가, 이미 불행에 빠져있던 유족을 더 큰 고통으로 몰아넣은 안타까운 사례였다.

실종 당시부터 이 사건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지만, 오히려 그게 독이 된 측면도 있었다. 1991년 사건 당시 해에만 325건의 제보가 쏟아졌지만 대부분은 허위였다. 송은이는 "실세 수사해야 할 시간에 그런 허위 제보에 대응하느라 시간을 허비했을 수 있다"고 지적했고 윤종신은 "처음에 불안했던 범인도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이 안 잡힐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을 것 같다"고 분석했다.

유가족들도 이를 우려하여 여러 차례 정보공개청구를 수사기관에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사유는 '범인의 해외도피우려'였다. 변영주 감독은 지금도 어떤 수사팀이 범인의 실체에 열심히 접근한다고 믿고 싶다"며 안타까워했다.

봉태규는 "경찰이 국민들에게 안심을 시켜주고 포기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심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토로했다. 다행히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이후 장기미제사건도 공식수사를 계속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권일용 교수는 "대구경찰청에서 미제사건 수사팀에서 계속 수사중"이라며 "전담팀을 만들어서 속도감있게 수사를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에피소드 막바지 지난 3월, 30년만에 개구리소년 추모비가 건립된 장면이 등장한다. 그러나 유족들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공소시효도 지나 버렸다. 아무것도 할 게 없다. 누가 왜 그랬는지, 이유라도 알고 싶다"는 2011년 고 우철원군의 아버지 우종우씨의 쓸쓸한 인터뷰는 지금도 듣는 이들을 먹먹하게 만든다. 개구리소년은 우리에게 여전히 끝나지 않은 아픔이다.
당신이혹하는사이 개구리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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