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본문듣기

시청률 64%, '이정재 신드롬' 원조는 따로 있다

[요즘 누가 TV 보냐고요?!] SBS 드라마 <모래시계>

22.01.31 11:36최종업데이트22.01.31 12:32
원고료로 응원
"요즘 누가 텔레비전 보나요." 주변에서 이런 말을 많이 합니다. 과거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50%를 훌쩍 넘는 일도 있었지만, 지금은 10%를 넘기기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러나 유튜브도 넷플릭스도 없었던 시절, 우리는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방송 시간에 맞춰 텔레비전 앞에서 손 모으고 기다렸습니다. 그때 그 시절이 기억나시나요? 과거 우리를 즐겁게 만들었던 프로그램과의 추억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편집자말]
<킹덤>, <인간수업>, <보건교사 안은영>, <스위트홈>, <오징어 게임>, < D.P. >, <마이네임>, <지옥>, <고요의 바다>까지. 최근 2년 동안 지상파나 종편, 케이블 채널을 거치지 않고 OTT 서비스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돼 많은 사랑을 받았던 오리지널 드라마들이다. OTT의 선두주자 넷플릭스 외에도 쿠팡플레이의 <어느 날>, 애플TV+에서 제작한 <닥터브레인> 등 많은 OTT 오리지널 드라마들이 시청자들을 만났다.

바야흐로 세계는 OTT의 전성시대다. 이제 휴대폰이나 컴퓨터 같은 디지털기기만 있으면 언제나 양질의 콘텐츠를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편하게 감상할 수 있다. 예전 같으면 영화나 지상파 드라마에서밖에 볼 수 없었던 비싼 몸값의 배우들이 OTT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OTT 서비스가 활성화될수록 본방 사수를 위해 방송시간에 맞춰 귀가를 서두르고 귀가가 여의치 않을 때는 비디오 플레이어의 예약녹화 기능을 활용해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녹화하던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지금은 전국방송이 된 SBS가 수도권에만 송출되던 시절,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해외교포들은 비디오로 대여해서 보던 전설의 드라마가 있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64.5%의 시청률을 자랑했던 <모래시계>가 그 주인공이다.

존재감 낮았던 신생 방송국의 승부수
 

<모래시계>는 주4회 편성이라는 승부수가 적중하면서 개국 초기 SBS를 위기에서 구해냈다. ⓒ SBS

 
TV채널이라고는 KBS1·2와 MBC, EBS, AFKN 밖에 없었던 1991년 12월, 국내 최초의 지상파 민영방송국 서울방송(SBS)이 개국했다. 서울과 인천, 경기 등 수도권에 거주하는 시청자들에게 채널선택권이 하나 더 늘어나게 된 것이다.

후발주자였던 SBS는 창사 초기 시청자들을 잡기 위해 최양락과 이봉원, 이성미, 김미화, 박미선 등 타 방송국의 인기 개그맨들을 스카웃해 프로그램에 투입했다. 하지만 기존 채널에 익숙하던 시청자들은 SBS에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여명의 눈동자>로 주목 받던 최재성과 고현정을 앞세운 드라마 <두려움 없는 사랑>과 영화배우 박중훈, 이경영이 출연했던 <머나먼 쏭바강> 정도가 간헐적으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았을 뿐이다.

이처럼 개국 초기 기대만큼 시청자들을 사로잡지 못했던 SBS로서는 방송가의 관심을 끌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이에 SBS에서는 <여명의 눈동자>를 만들었던 고 김종학 PD를 삼고초려 끝에 영입했고 김종학PD와 콤비였던 송지나 작가·최경식 음악감독을 함께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배우들 역시 MBC에서 대부분의 작품을 찍었던 최민수와 박상원을 동시에 영입해 드림팀을 구성, 전설의 드라마 <모래시계>를 완성했다.

가장 파격적인 부분은 역시 편성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드라마는 월화,수목,주말,일일로 철저히 구분돼 있었고 이것을 지키는 것이 방송가의 암묵적인 룰이었다. 하지만 24부작으로 제작된 <모래시계>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무려 주 4회 편성을 하면서 다른 드라마와의 경쟁을 사전에 차단했다. 실제로 MBC에서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드라마 <까레이스키>는 <모래시계>에 밀려 한 자리 수 시청률에 허덕이다가 초라하게 막을 내렸다.

남성 시청자를 TV로 끌어들인 드라마
 

<모래시계> 방영 후 이정재가 엄청난 인기를 얻으면서 검도도장이 때 아닌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 SBS 화면 캡처

 
그 시절 <모래시계>를 부르던 다른 이름 중 하나는 바로 '귀가 시계'였다. <모래시계>가 방영되는 기간 동안에는 거리가 한산하고 술집에는 손님이 없을 정도로 조용해진다는 의미였다. 심지어 TV가 있는 식당과 술집에서는 손님을 끌어 모으기 위해 '<모래시계> 방영 중'이라는 문구를 써 붙여 놓기도 했다고. <모래시계>가 송출되지 않는 지방과 해외에서는 비디오 대여점에서 <모래시계> 녹화본이 대여순위 상위권을 차지하기도 했다.

지금은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성기훈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배우 이정재가 처음으로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얻게 된 작품도 바로 <모래시계>였다. 이정재는 <모래시계>에서 윤혜린(고현정 분)의 보디가드 백재희를 연기했는데 백재희가 윤혜린을 구하고 죽음을 맞는다는 스토리가 알려지자 이정재를 죽이지 말라는 시청자들의 항의가 SBS 방송국에 빗발쳤다고 한다(하지만 <모래시계>는 사전제작 드라마였기 때문에 백재희의 운명은 바뀌지 않았다).

사실 <모래시계>는 부친의 좌익행적 때문에 육사진학이 좌절되고 조직폭력배가 되는 박태수(최민수 분)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조폭미화'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모래시계>의 인기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지역은 바로 강원도, 그 중에서도 정동진 역이었다. 폐역이 검토될 정도로 작은 간이역이었던 정동진 역은 <모래시계>에서 학생운동을 하다 시골로 피신하던 혜린이 거처를 옮기다가 잡히는 곳으로 짧게 등장한다. 하지만 정동진 역은 드라마의 인기와 함께 유명한 해돋이 명소로 급부상했다. 

평균 46%-최고 64%, 시청률의 신화
 

최민수(왼쪽)와 박상원이 사형집행전 마지막으로 마주보는 장면은 70%가 넘는 순간 시청률을 기록했다. ⓒ SBS 화면캡처

 
<모래시계>는 지난 2017년 MBC가 광복 70주년을 맞아 한국갤럽에 의뢰해 조사한 '최고의 TV프로그램'에서 5위를 기록했다. 1위 MBC <무한도전>과 4위 KBS <1박 2일>은 당대 최고의 예능으로 꼽혔던 프로그램이었고 2위 MBC <전원일기>와 3위 KBS1 <전국노래자랑>은 각각 2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장수프로그램이었다. 반면에 <모래시계>는 방영기간 두 달이 채 안 된 24부작 드라마로, 그 위상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모래시계>는 평균시청률 46%, 최종회 64.5%라는 믿기 힘든 시청률을 기록했다. 물론 <모래시계>가 방영될 당시엔 SBS가 지방에 송출되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시청률이 다소 과대평가됐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모래시계>가 한 지방파 방송국의 운명을 바꿀 정도로 엄청난 영향을 끼친 작품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대다수의 시청자들 역시 <모래시계>가 90년대 최고의 드라마 중 하나라는 사실에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1995년 1월에 첫 방송된 <모래시계>도 어느덧 방영 27주년을 맞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귀가 시간까지 바꿀 정도로 사회 전반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던 드라마 <모래시계>는  대한민국 드라마 역사에서 손꼽히는 명작으로 기억될 것이다.
모래시계 고 김종학PD 송지나 작가 귀가시계 정동진 역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