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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출연 고사 끝에 나온 김창완... 그를 보고 느낀 점

[TV 리뷰] KBS2 <불후의 명곡> 산울림 편

22.03.20 12:18최종업데이트22.03.20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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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 명곡> ⓒ KBS


음악방송작가를 오래 해왔고, 누구보다 음악, 그중에서도 한국 대중가요를 사랑하는 한 사람이지만 냉철하게 얘기하자면 나는 음악적 편식이 매우 심한 사람에 속한다. 노래를 가려듣는 편이다. 어쩔 수 없이 일 때문에 취향에 맞지 않는 음악을 들을 때면, 일하는 내내 달고 다니던 '역류성 식도염'이 재발될 만큼 예민한 귀를 지녔다.

이런 예민함은 좋은 노래의 옥석을 가리는 훌륭한 시금석이 되기도 하지만, 바꿔 말하면 음악방송 작가로서의 의무를 저버리는 일이 되기도 한다. 모름지기 그 어떤 음악이라도 들어낼 수 있는 보통의 귀를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게 음악을 선곡해 대중들에게 들려주는 사람의 기본 책무이기에 말이다. 그래서 신청곡을 기준으로 하루의 선곡표를 짜게 되는 일이 좋으면서도 마뜩지 않은 양가감정에 종종 휩싸이곤 했었다.

밥벌이를 그만두고 가장 신났던 일은 하루 종일 내가 좋아하는 음악만 들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떤 날엔 최애인 김광석의 노래들을 무한 리플레이하면서 마음속 울림통을 정화했고, 또 다른 날엔 이문세의 목소리에 흠뻑 빠져 라디오에 죽고 못 살았던 소녀 시절로 회귀하기도 했다. 이렇게 내 시대를 기록한 음악들을 선곡해 듣는 게 일을 그만둔 뒤 몇 달 동안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루틴의 첫 번째였다. 

김광석이나 이문세, 그리고 가끔은 시인과 촌장... 이런 선곡을 하다가 흠칫, 아~ 내가 이 사람들을 잊고 있었다니!라는 자각이 들었던 날이 있었다. 비가 귀한 도시에 아침부터 굵은 빗방울이 창으로 들이치는 날이었고 없던 감성마저 촉촉하게 젖어들 것만 같은 날이었다. 홀리듯 플레이리스트를 뒤져 찾아낸 곡이 바로 산울림의 '그대 떠나는 날에 비가 오는가'였다.

산울림 11집 앨범에 수록된 곡, 영화의 ost로도 쓰였고, 그래서 비가 흩뿌리는 날이면 꼭 신청곡으로 많은 청취자들로부터 요청되던 노래였다. 우리가요엔 정말 많은 '비'를 찬양한 노래들이 있지만 이토록 잔잔하게 슬픔을 단전으로부터 끌어올리며 비에 젖게 만드는 노래는 그리 흔치 않으리라 생각한다. 얼마 전 잔나비가 '리메이크'를 했다고 해서 기쁜 마음으로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해두었다. 아무튼 우리 대중음악의 거룩한 계보(순전히 내 기준이다)를 따져 그림을 그려낸다면 그룹은 산울림 들국화, 솔로 아티스트는 김광석 그리고 이문세이다. 아, 이건 거듭 말하지만 나의 시대와 내 음악적 편식이 일방적으로 투영된 기준이므로 다분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다른 노래를 듣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밥벌이를 그만뒀다 하더라도 여전히 음악을 선별하는 귀를 놀리기는 싫어서 가수들의 노래를 쉼 없이 듣는 편이긴 하다. bts의 노래들이 가끔은 내 아침을 깨우기도 하니.

이런 불편하고 자기만족으로 가득찬 내 음악적 편식을 충족시켜주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으니, 바로 KBS2 <불후의 명곡>이다. 잊어버릴 뻔한 명곡들을 살려내고 다시금 기억하게 해 줄뿐만 아니라, 후배 가수들로 하여금 우리 가요의 명맥이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에 대한 고찰을 하게 해주는 좋은 프로그램이라 생각한다. 당연히 김광석이나 이문세 편을 보며 혼자 감동하고, 훌륭하게 편곡된 곡들은 아껴가며 몇 번이고 들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프로그램이 짧지  않은 기간 지속되는 동안 나의 거룩한 계보 제일 위에 자리한 '산울림'의 노래들을 멋진 편곡으로 무대에 올린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참 아쉬운 일이었다. 물론 그러는 동안에도 많은 후배 가수들이 '산울림'의 곡들을 리메이크하거나 커버하긴 했지만, 공중파의 공신력 있는 프로그램에서 꼭 한 번은 만나고 싶은 무대를 손꼽아 기다리던 참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왔다. 10년을 출연 고사했다고 한다. 그동안 방송사 측에서는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냈었고. 사실, 그 이력으로 따지면야 수많은 명반을 보유하고 있고, 여전히 후배 가수들이 존경을 표하며 커버하고 싶은 노래들을 수도 없이 가진 김창완, 그리고 산울림은 몇 회에 걸쳐 방송으로 제작해도 모자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후'라는 단어가 가진 무게감과 엄중함 앞에서 겸손해져 그동안 출연을 망설였다는 그의 고백에 사실 저으기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1부의 무대를 지켜보는 동안 산울림의 음악을 사랑하는 나의 음악적 편식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은 그 사람을 닮는다. 특히 싱어송 라이터라면 더 그렇다. '산울림'의 음악, '김창완'의 색깔은 여전히 우리 가요사에서 독보적이다. 순한 듯하면서 거침없으며, 톡 쏘는 것 같은데, 때로 뭉근하다. 딱 김창완이다. 소녀시절, 그들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를 처음 들었을 때 충격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뭔가 일기장에 끄적거렸던 기억이 새록새록했다. '청춘'이나 '너의 의미'에 위로받던 날들과 '가지 마오'의 기타 소리에 홀려 '일렉트릭 기타'를 배우려면 돈이 많이 들겠지... 혼자 고민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내 어린 날의 순수와 감성이 거기에 여전히 살아 있었기에 말이다.

무대 내내 후배들을 바라보며 사람 좋은 미소를 잃지 않고 찬사를 아낌없이 보내는 그를 보며 꼰대로 살고 싶지 않다면 그의 삶을 오래도록 지지하며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도전하는 삶, 경계 없는 태도, 맑은 눈, 무엇보다 아이보다 더 해맑은 웃음을 짓는 뮤지션이자 배우며 화가이자 시인으로 살아가는 그의 행보는 질투가 날 정도로 푸르렀다. 하여 그의 얼굴에 내린 시간의 주름살마저 조화로운 음률 같았다.

고백한다. 뜬금없겠지만 김창완 그를 닮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나이 들어가고 싶다. 일흔이 다 돼가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가볍지 않은 일렉기타를 메고 때 묻지 않은 목소리로 무대를 즐기는 그의 맑은 영성에 존경을 표한다. 후배 가수들의 노력에 가볍지 않은 격려와 무한한 존경을 표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그런 진정한 마음,  후배들의 컬래버레이션 무대에 스스럼없이 몸을 일으켜 함께 노래를 부르고 어깨동무를 할 수 있는 자세야말로 그를 영원한 '청춘'에 머무르게 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명곡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렇게 새로운 창작자들에 의해 가끔 옷을 갈아입을 뿐이다.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한 선한 위로를 건네며  묵묵히 음악의 본질을 연명해가는 것이다. 음악이 있어, 노래를 아끼고 부르는 그들이 있기에, 세상은 아주 조금 더 빛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1부 우승을 한 이승윤의 '너의 의미'가 아이유와의 콜라보로 완성된 맑고 고운 '너의 의미'와 비교해 소름 끼치도록 섹시하게 들리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이승윤을 배 아파 낳은 자식 같다며 음악적 엄마를 자처하는 김창완의 얼굴 뒤로 사라지지 않을 아우라가 가득한 밤이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창완 불후의 명곡 산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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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음악방송작가로 오랜시간 글을 썼습니다.방송글을 모아 독립출간 했고, 아포리즘과 시, 음악, 영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에 눈과 귀를 활짝 열어두는 것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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