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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완의 은퇴로 기억하는 2009년 한국 시리즈

[남선생의 야구이야기]

22.10.08 12:13최종업데이트22.10.08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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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7일, 프로야구 또 하나의 별이 졌다. 기아(KIA) 나지완이 15년간의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나지완은 올 시즌 노장 투혼을 불태우며 1군 복귀를 애타게 기다렸지만 결국 나지완에게 기회는 오지 않았다. 오늘 은퇴식을 맞아 나지완은 8회 말 1:8로 앞선 상황에서 황대인의 대타로 올 시즌 첫 1군 타석에 섰다. 그렇게 나지완은 선수 생활 마지막 타석을 마쳤다. 나지완 하면 2009년 한국시리즈 7차전 최종 경기가 떠오른다. 나지완을 보내며 그 날을 기억해 보자.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는 막강 마운드의 1위 기아(KIA)와 김성근 감독이 버티는 2위 SK가 맞붙었다. 당시 기아(KIA)의 마운드는 정말 대단했다. 1번 에이스 로페즈에 윤석민, 서재응, 양현종이 환상의 라인업을 구성하고 있었다. 시즌 13승을 수확한 두번째 외국인 투수 구톰슨이 오히려 초라해 보일 정도 였다. 타석 역시 굳건했다. LG에서 기아(KIA)로 유니폼을 갈아 입고 드디어 거포로 자리를 잡은 '김상사' 김상현이 있었고 미국에서 돌아온 진정한 '빅맨' 최희섭,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나지완이 뒤를 받쳤다. 다른 것은 다 빼더라도 덩치 하나만은 무시무시한 3인방 이었다.

반면 SK는 2009년 파란만장한 시즌을 보냈다. 외국인 원투펀치는 함량 미달로 두명 모두 일찌감치 짐을 싸는 바람에 부랴부랴 데려온 대체 외국인 카도쿠라와 글로버로 팀을 추스렸다. 팀이 안정을 되찾자 이번에는 토종 에이스 김광현이 공에 맞아 손등 골절 부상을 입으며 시즌 아웃되어 버렸다. '어린왕자' 김원형은 '어린'이라는 수식어가 민망할 정도로 노쇠화가 뚜렷했고 윤길현, 송은범, 정대현도 그 동안 많은 투구로 오래 마운드를 지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나 SK에는 승부사 김성근 감독이 있었다. 부족한 마운드를 소위 '벌떼' 마운드 운용 전략으로 메우며 팀을 한국시리즈까지 이끌었다. 가을 야구에서는 미친 전술로 단기전 마술사 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2009년 한국시리즈는 그야 말로 피를 말리는 승부의 연속이었다. 1, 2차전은 예상대로 전력이 앞서는 기아(KIA)가 모두 가져갔다. 이번 한국 시리즈는 싱거운 잔치로 흘러 가는 듯 했다. 매스컴들은 한국시리즈 1, 2차전을 모두 가져간 팀이 우승확률 90%가 넘는다며 기아(KIA)의 우승을 기정사실화 했다. 그러나 김성근 야구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3, 4차전을 다시 SK가 쓸어가며 승부가 원점으로 돌아갔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채병용이 절대절명의 4차전에서 5.2이닝을 1실점으로 막아내며 대단한 활약을 펼쳤다. 이제 오히려 쫓기는 팀은 기아(KIA)가 되었다. 5차전은 기아(KIA)가 승리를 거두며 한숨을 돌렸지만 6차전은 SK가 가져가며 양팀은 3승 3패의 균형을 맞추고 운명의 마지막 7차전을 맞았다.

7차전 선발은 외국인 투수 대결이었다. SK는 글로버가 기아(KIA)는 구톰슨이 나섰다. SK의 글로버는 어깨 통증에 주사제까지 맞으며 마운드에 올랐다. 지금이야 김성근 야구의 혹사가 논란이 되고 있지만 당시에는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글로버는 주사 투혼을 보이며 마운드를 불살랐다. 팽팽한 승부에 먼저 균열을 일으킨 것은 SK의 '가을사나이' 박정권이었다. 투런 홈런과 땅볼 타점을 연속해서 터뜨리며 SK는 3: 0으로 앞서 나갔다. 기아(KIA)는 안치홍의 안타로 3: 1까지 따라 잡았지만 SK는 김강민과 박재상의 득점권 타점으로 경기 중반 5: 1까지 격차를 벌렸다. 총력전을 펼치는 최종전 중반 4점 차이는 극복하기 쉽지 않은 점수 차이다. 중계하는 아나운서도 조금은 김이 빠져 보였다. 그러나 2009년 최강팀 기아(KIA)의 저력은 쉽게 꺾이지 않았다. 나지완이 투런 홈런과 안치홍의 솔로 홈런으로 5: 4까지 따라 잡고 김원섭의 1타점 우전 2루타까지 터지며 결국 5: 5 동점을 만들었다. 6회 말 나지완이 터뜨린 투런 홈런은 지쳐있던 호랑이들을 깨우기에 충분한 한방이었다. 이렇게 나지완의 2009년 한국시리즈 전설은 시작 되었다. 팽팽하게 맞선 9회 말 SK는 4차전 승리의 주역 채병용을 마운드에 올렸다. SK입장에서는 쓸 수 있는 최강 카드였다. 1사 이후 타석에 들어선 것은 3번 타자 나지완이었다. 이미 6회 홈런 한방을 날린 바 있어 관중석은 들썩이기 시작했다. 나지완이 세차게 휘두른 방망이에 나지완 홈런을 외치던 관중석이 일시에 조용해 졌다. 까마득하게 날아간 공은 크나 큰 잠실 구장의 좌중간을 넉넉하게 넘어 갔다. 끝내기 솔로 홈런이었다. 

나지완의 2009년 한국시리즈 7차전 9회 말 한방은 타이거즈 구단 12년만에 9수를 넘어서는 우승을 이끌었다. 기아(KIA)로 주인이 바뀐 첫 번째 우승이었다. 그리고 한국 프로야구사에 첫 V10 기록을 남긴 역사적 사건이다. 그 중심에 나지완이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그날 끝내기 홈런을 치고 펄쩍펄쩍 뛰던 나지완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지완은 2008년부터 오늘까지 15시즌을 타이거즈맨으로 한팀에서만 뛰었다. 2020년 타율 .291을 끝으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15시즌 동안 나지완은 221개의 홈런을 날리며 기아(KIA)를 대표하는 중장거리 타자로 활약했다.

나지완의 퇴장에 세월이 참 빠르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 활약하던 나지완만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뛴다. 검은 하늘을 까마득하게 날아가던 나지완의 끝내기 홈런볼의 기억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그 동안 고마웠다. 나지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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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완 은퇴 2009년한국시리즈최종전끝내기홈런 나비나지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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