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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학하는 부부, 소통 불가가 부른 비극

[리뷰] MBC 부부 상담 예능프로그램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

22.10.25 15:18최종업데이트22.10.25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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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한 아내와 답답한 남편, 부부의 너무 다른 성향이 부른 소통의 실종은 결국 상대를 향한 '가학'에서 스스로를 괴롭히는 '자학'까지 이어졌다. 10월 24일 방송된 MBC 부부 상담 예능프로그램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에서는 남편이 하는 일을 사사건건 지적하는 예민보스 아내와 그런 아내의 말에 묵묵부답으로 응수하는 답답보스 남편의 '보스 부부'가 의뢰인으로 등장했다.
 
부산에서 거주중인 결혼 5년차 권규호-한혜신 부부는 스노보드 동호회에서 인연을 맺어 남편의 열렬한 구애로 결혼에 이르렀다. 하지만 로맨틱했던 연애 시절과 달리, 두 사람은 방송 녹화를 위해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올라오면서도 따로 탑승할만큼 불편한 사이가 되었음을 밝혀 충격을 안겼다.
 
부부의 일상이 공개됐다. 남편은 아침 일찍부터 설거지, 요리, 빨래에 이어 분리수거까지 집안일을 혼자서 도맡아 하는 모습으로 살림꾼의 면모를 보였다. 그런데 정작 아내는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을 쫓아다니면서 간섭하고 비난했다.
 
알고보니 남편은 열심히 살림을 하는 것에 비하여 꼼꼼하지 못해서 기껏 해놓은 빨래에서 냄새나 나거나, 청소가 완벽하지 되지 않아서 아내와 매번 싸웠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견디다 못한 남편은 아내에게 "살림을 같이하자"고 제안했지만 아내는 "네가 집안 일을 할줄 알아야 같이 하는 거다. 그건 결국 내가 하는 거다. 그러니까 네가 잘할때까지는 니가 해"라고 요구했다는 게 남편의 주장이었다.
 
아내는 남편의 행동 하나하나에 계속해서 시비를 걸었고 부부는 시종일관 가시돋힌 대화를 주고 받았다. 아내는 남편이 해놓은 양말 정리 문제로 또다시 짜증을 냈고 아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언쟁을 벌이다가 점점 언성이 높아졌다. 남편은 "언제부터인가 대화를 하면 목소리에 짜증이 섞여있다. 그냥 나쁜 것만 보이는 것 같다. 10개중 9개를 잘하고 하나를 못하게 되면 10개를 다 안한걸로 생각하는 것 같다. 저도 솔직하 하기 싫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패널들은 화면상으로 보면 정작 본인은 아무 것도 안하면서 나름 열심히 하는 남편에게 온갖 지적질만 하는 아내에 대하여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내는 민망해하며 매번 같은 문제가 반복되면서 좋게 이야기할 시기가 지나버렸다고 해명했다.
 
그날 저녁, 아내는 소고기로 저녁식사를 차렸지만 자신과 아이의 것만 있었고, 남편의 식기를 챙기기는커녕 식사 권유도 하지 않았다. 함께 집안에 있었지만 투명인간 취급을 받은 남편은 아내와 아이를 쳐다보며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남편은 최근들어 아내가 아이와 둘이서만 식사하고 자신을 배제한지 오래됐다고 밝혔다. 남편도 굳이 아내에게 같이 먹자고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아내는 "너무 화가나서 밥도 같이 먹기 싫다. 얼굴도 보기 싫다"고 적대감을 드러냈다.
 
남편은 결국 집을 나가 편의점에서 혼자 저녁 끼니를 해결했다. 집에서 혼자 식사를 하는 것조차 아내가 계속해서 핀잔을 주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가게 됐다고. 남편은 전에 치킨과 맥주를 혼자 먹고있는 아내에게 다가갔다가 욕을 먹은 일도 있다고 고백해서 "구걸해서 밥을 얻어먹는 듯한 느낌"이라고 서운함을 토로했다. 지켜보던 오은영은 "왜 남편을 이렇게까지 들들 볶을까. 이건 일종의 따돌림"이라고 진단하며 우려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연을 신청한 것은 아내 쪽이었다. 아내는 "싸움이 끝나지 않아서"라고 고민 끝에 상담을 신청한 이유를 밝혔다. 남편은 아내가 사연을 신청한 내용을 보고 자신에 대한 좋은 이야기가 전혀 없었다며 출연을 주저했던 이유를 밝혔다.

심지어 아내는 남편과 관련, '사이코패스인지도 의심했다, 공감 능력이 심각하게 저하되어 있다'라는 내용까지 작성한 것으로 전해져 충격을 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고심 끝에 "이러다가 가족이 찢어지느니 이게 마지막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되돌릴 방법이 이거라면 나가자"라고 결심했다고 밝혔다.
 
오은영은 정신건강의학 전문의의 입장으로서 "아내가 남편을 대하는 태도는 가학적"이라는 소견을 밝히며 "남편을 '응징의 대상'으로 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아내는 순순히 인정하며 "내가 느꼈던 힘든 감정을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고백했다. 오은영은 아내가 남편을 적대하게 된 이유가 청결보다도 좀 더 깊은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엔 아내의 입장에서 바라본 VCR이 공개됐다. 아내의 분노에도 이유는 있었다. 아이와 함께 장을 보러나온 부부는 지저분하고 어질러져서 냄새까지 나는 자동차 내 정리 상태 문제로 또다시 충돌했다.

아내는 연애 시절에도 남편이 차안에서 데이트를 할 때 먹던 쓰레기를 자신의 발밑에 버렸다고 밝히며 남편이 충격적인 위생 개념을 폭로했다. 아내는 벌써 몇 년전에 차안에 놓아둔 물건들이 그대로 방치된 것을 일일이 지적하며, 아무리 말을 해도 달라지지 않는 남편의 태도에 답답함을 감추지 못했다.
 
아내는 "남편을 깎아내리려고 사연을 신청한게 아니라 제대로 된 솔루션을 받고 싶은 마음이었다"라고 밝히며 카메라 앞에서만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남편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아내는 남편이 평소에 무슨 일이 생겨도 두 번 세 번 물어보지 않으면 잘 대답을 하지않고, 결국 지쳐서 자신이 직접 하게 된다면 답답함을 토로했다.
 
부부의 소통 불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 등장했다. 부부는 저녁에 손님을 초대하여 요리를 준비하면서, 냉장고에서 새우를 꺼내 손질하느냐는 사소한 문제가 도화선이 되어 큰 언쟁으로 번졌다. 남편은 아내의 말을 잘못 이해했고, 아내는 말을 해도 귀담아 듣지않고 대답이 없는 남편에 답답해다가 분노가 폭발했다.

부부의 갈등에 처음 발단이 된 사건은 아내 오빠의 교통사고였다. 아내의 이야기에 따르면, 처남이 큰 사고를 당한 상황에서도 밥을 차려준 아내 앞에서 남편은 콧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이해할수 없는 행동을 했다고, 황당한 아내가 "당신 동생이 교통사고가 나도 그렇게 할수 있냐"고 따지자 남편은 오히려 화를 내며 숟가락을 집어던지고 집을 나가버렸다고.
 
아내는 결국 혼자 병문안을 가야했고 남편은 그날 저녁 만취하여 돌아와서 제대로 오해를 풀지 못했다. 아내는 남편이 부부싸움을 해도 화해를 하고 감정을 풀려는 노력을 하지않는다고 지적했다. 남편은 처음엔 그렇게 큰 교통사고인줄 몰랐다며 나중에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아직 응어리가 풀리지 않은 것 같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남편의 실수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아내는 자신이 다쳐서 병원에 입원해있거나 고열에 시달릴때도 술 약속이 있다는 사실을 통보하고 나가버렸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남편은 당시엔 아내와 전날 부부싸움을 했서 감정이 남은 상태였다며 뒤늦게 미안함을 느꼈지만 "어떻게 미안함을 풀어야할지 방법을 모르겠더라"며 눈시울을 글썽였다.
 
오은영은 부부의 반복되는 싸움에서 공통적인 내용이 있다고 분석하며 "남편이 상황을 자기 주관적으로 이해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오은영은 남편이 '작업 기억력(다른 감각기관으로부터 들어온 정보를 머릿속에 잠시 잡아뒀다가 기억하는 것)'이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오은영은 "자신이 흥미가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앞에 생각했던 것을 금방 까먹는 성향이 있다. 교통사고같은 큰 소식을 들어도 처음엔 걱정하겠지만, 오래 가지않아서 그 주제를 금방 잊거나 벗어난다. 그러다보니 그 순간에는 공감 능력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화중 이야기의 기승전결에서 아내가 4-5단계를 나가고 있을동안 남편은 여전히 1-2단계에서 헤매고 있다보니 대화가 진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은영은 "일부러 그러는 것과 잘안되는 것은 다르다. 남편이 작업 기억력이 다소 떨어진다는 것을 알고 바라보면 옛날처럼 분노가 치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남편의 심리평가 보고서에서도 일상생활에서 멍하게 있을 때가 많고 흥미롭지않은 일에는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남편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는 수동적인 성향이 강했고, 타인에게 관대하지 않으며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두드러진 편이었다.
 
아내가 진정으로 남편에게 원한 것은, 사실 집안일보다는 '공감과 존중'이었다. 아내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서운한 것 등을 남편에게 끊임없이 이야기했는데도 남편이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하는데 서운함을 토로했다.
 
그날 저녁 아내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놀랍게도 아내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다못해 "자기 자신을 때리는 자학까지 했다"고 고백하여 충격을 안겼다. 하지만 정작 남편은 그때도 말리기는커녕 멀뚱멀뚱 보고만 있었다고.

그런데 남편은 사실 자신도 차안에서 몰래 자학을 한 사실이 있다고 고백하며 아내를 말리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차라리 그렇게라도 하면 속이 시원하니까"라고 이야기하며 눈시울을 글썽였다. 부부는 각자 자기 자신을 자책하며 "내가 힘든 거는 아무한테도 안 중요하구나"라는 절망에 빠져있는 사실을 토로하여 안타까움을 안겼다.
 
알고보니 아내는 부모의 갈등으로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트라우마가 있었고, 남편과의 결혼생활에서도 불행을 느끼며 우울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오은영은 "아내의 근원적 상처를 이해해야 한다. 착한 남편에게 잔소리만 쏟아붓는 아내로 생각하면 곤란하다"고 지적하며 "착하다고 상처를 안주나? 부부는 각자의 위치와 역할이 있다. 부부간 부조화로 인한 상처는 착한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아내의 입장을 공감했다. 배우자가 자신의 내면적 결핍을 채워주기를 바랬던 아내는 남편이 그 기준을 충족하지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남편이 싫어졌다는 것이다.
 
오은영은 부부를 위한 솔루션으로 아내에게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남편에게 모멸감을 주는 언행은 그만하라"고 일침을 놨다. 그리고 작업 기억력이 떨어지는 남편이 대화를 이애하지못하고 당황한 표정을 지으면 "친절하게 이야기해줄 것"을 당부했다.

또한 남편에게는 자신이 꼭 기억해야할 것을 '메모하거나 녹음해두는 습관'과, '바로할 수 있는 일은 바로 할 것'을 주문했다. 소극적인 남편를 위하여 아내에게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제기할 것도 조언했다.
 
상담을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간 부부는 비로소 마음의 문을 열고 둘만의 대화를 나눴다. 아내는 조심스럽게 "이제야 조금 당신이 이해가 되는 것 같다"고 밝혔다. 남편은 "대화의 포커스를 잘못 맞췄고 항상 주관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나도 노력할테니 많이 도와달라"며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오랫동안 연애하고 함께 살아온 부부들이라도 서로의 내면과 성향에 대하여 속속들이 아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대한민국의 수많은 부부들 사이에서 언제든 벌어질수 있는 소통의 문제를 현실적으로 보여준 보스 부부의 이야기는 많은 울림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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