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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무너진 지구촌, 극우와 전체주의가 부활한 이유

[TV 리뷰] KBS 1TV <다큐 인사이트> '고장난 세계' 2부 '헤어질 결심' 편

22.12.09 14:43최종업데이트22.12.09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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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2월 25일, 소련의 붕괴는 냉전시대의 종말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지난 약 30년간은 탈냉전의 시대라고 할수 있다. 그러나 2022년 현재, 탈냉전 시대를 규정지었던 세계 질서가 다시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다.
 
유일한 초강대국이던 미국의 리더십이 흔들리고 세계 각지에서 국가주의-민족주의가 부활하면서 지구촌은 또다른 시험대에 올랐다. 과연 향후 몇십년간 우리에게 찾아올 다음 시대는 또다른 신냉전일까. 아니면 불안한 혼돈과 혼재가 지속되는 불확실성의 시대 그 자체 일까.

8일 방송된 KBS 1TV <다큐 인사이트> 2부작 '고장난 세계'의 2부 '헤어질 결심' 편을 통하여 세계 질서의 혼란속에 극우와 전체주의의 그림자가 살아나고 있는 지구촌의 현실과, 각자도생을 모색하고 있는 각 국가들의 상황을 조명했다.
 
지난 11월 15일, 폴란드 동부 국경지역의 한 마을인 프르제워도우에서 정체불명의 미사일에 피격되며 주민 두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폴란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유럽연합(EU) 회원국이다. 만일 폴란드가 고의적으로 공격을 당했다면 이미 1년 가까이 계속되고있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여파가 자칫 확전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웠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서로 상대의 책임으로 돌리며 비난했다.

11월 16일 G7 정상들은 긴급회의를 열고 사태를 논의했다. NATO의 조사 결과, 일단 미사일은 우크라이나 측에서 날아온 오발탄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많은 이들은 일단 우연한 사고라는데 그나마 안도했지만, 잠시나마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 있다는 공포감에 휩싸여야했다.

독일은 통일을 통하여 냉전을 종식시켰다는 화합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겨왔다. 그런게 지금은 오히려 또다른 극심한 분열과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여파로 인한 경제위기와 최악의 에너지난까지 겹치며 독일 국민들의 생활고와 불안감은 날로 커져가고 있다. 

독일 정부는 다른 국가에 대한 무기 지원 금치 원칙조차 깨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지만 이로 인한 에너지난 장기화가 심화되며 국민들의 여론이 악화되자 고민이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지원을 둘러싸고 국론은 분열되고 곳곳에서 갈등이 속출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마리오 드라기 전 이탈리아 총리,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세 유럽 정상은 올해 6월 키이우행 야간열차에서 함께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바 있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지난 10월 고유가와 물가상승에 폭발한 국민들의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드라기 총리는 지난 7월 거국 연정 붕괴도 사임했다. 숄츠 총리의 독일내 국정지지율은 최근 29%까지 추락했다.

앤드류 노보 유럽정책분석센터 선임연구원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대단히 불안정한 사건이었다. 유럽의 안보지형을 불안정하게 만들었고 세계의 동맹 구조를 바꾸었으며 인플레이션에도 큰 영향을 줬다. 무역의 교란과 전세계 에너지 공급 위기, 세계적 식량공급에도 차질을 빚었다"고 분석하며 "결국 정치적 불안정은 경제 및 안보상황이 불안정하게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진단했다.

세계질서의 혼란을 틈타 전 세계에서는 극우-전체주의-독재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극우세력의 주도로 지난 10월 무솔리니 쿠데타 100주년 기념 행사가 열렸다. 베니토 무솔리니는 파시즘의 창시자이자 2차대전을 일으킨 주요 전범중 한 명이다.
 
'여자 무솔리니',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으로 꼽히는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예전부터 무솔리니의 열렬한 추종자임을 밝혔고, 올해 9월 이탈리아 총선에서는 무솔리니 이후 극우 정치인으로서는 100년 만에 총리의 자리까지 올랐다. 멜로니가 창당한 '이탈리아의 형제들'이라는 극우 정당은, 무솔리니의 추종자들이 세운 정당 '이탈리아 사회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
 
멜라니의 지지자들은 '이탈리아가 먼저'라는 자국 우선주의 정책에 공감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최근 해외 난민 정책과 18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코로나19 팬데믹, 38년 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한 물가 폭등(119%, 2022년 10월 기준 전년대비)이 겹치며 여론이 들끓었다. 멜라니를 지지한 이들은 이탈리아가 유럽에서 독일이나 프랑스에 비하여 홀대받아왔으며 모두를 동등하게 만드는 세계화를 벗어나 자국의 국익을 우선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세계화의 빛과 그늘은 각국의 국내 정치에도 영향을 미쳤다. 현실이 만족스럽지 않은 국민들은 같은 사람과 정당이 아닌 새로운 것을 실험해보고 싶어한다. 유럽 정치구도에서 그동안 중도 좌파와 중도 우파가 번갈아가며 집권해왔는데 유권자들은 '어느 쪽이 우리를 대변하지 않는다'는 실망감이 확대되며 '심판 투표'를 통하여 완전히 극단적이고 새로운 정치세력을 원하게 된 것.
 
프랑스 역시 최근 극우정당인 '국민연합'이 총선에서 선전하며 총 89석을 획득하여 의석이 10배 이상 증가하는 대약진을 보였다. 스웨덴의 극우정당인 '스웨덴민주당'은 9월 선거에서 제1야당으로 등극했다.
 
전문가들은 탈냉전 시대 이후 국제관계의 대의명분을 주도하던 세계화가 위기에 봉착했다고 진단한다. 국제정치에서 세계화의 반대말은 파편화, 혹은 각자도생이다. 이제는 국제적으로 협력하기보다는 '내 살길을 찾겠다', '내 이익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시대다. 미국에서 트럼프 방식이었고, 유럽에서는 극우정당의 약진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 정치적 논쟁에서 철저하게 '국가'가 우선 순위로 떠오르면서 일각에서는 1차세계대전 시대의 국가들은 '민족주의'로의 퇴행을 우려하기도 한다.

국제질서에서 최근 가장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것은 역시 중국의 존재를 빼놓을수 있다. 중국은 시진핑 시대에 접어들며 미중패권경쟁 등을 통하여 '신냉전'의 새로운 한 축으로 떠올랐다. 또한 강대해진 국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연이어 주변 국가들을 압박하며 갈등을 유발하며 우려를 사고 있다.
 
지난 10월 16일 영국 맨체스터에 위치한 중국 영사관 앞에서 평화시위를 하던 시위자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한 영사관 관계자들의 모습은 전세계에 큰 충격을 줬다. 폭행 피해자인 밥 챈 씨는 기자회견에서 "저는 권력자들에게 침묵을 강요당하게 될까봐 두렵다"고 고백했다. 동석한 이언 덩컨 스미스 보수당 의원은 "이것은 중국 공산당의 광범위한 간섭을 보여주면서 국제사회에 울리는 경종"이라며 중국의 행태를 강하게 질타했다. 영국 정부는 중국 대사를 소환하여 항의하며 엄중 경고를 내렸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오히려 영국 정부와 시위자들에게 책임을 돌렸다. 정시위안 맨체스터 중국 총영사는 "시위자가 우리 동료의 목숨을 위협한 긴급 상황이었다"며 책임을 전가하며 "그 남자는 우리 조국과 지도자를 모욕했다. 그건(영사관의 대응은) 저의 의무였다"고 주장했다.
 
영사관의 과잉 충성에 가까운 예민한 대응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폭행사건이 발생한 10월 16일은 본국인 중국 베이징에서 최대의 정치행사인 제20차 공산당 대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특히 올해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이 확정되는 중요한 시점이었다. 중국은 시진핑의 장기집권 체제가 본격화되며 시진핑 우상화를 비롯하여 공산당의 업적과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대외적으로 홍보하는데 공을 들이고 있다.
 
한편 공산당 대회에서는 전임 최고지도자였던 후진타오가 시진핑의 옆에 앉아있다가 강제로 끌려나가는 듯한 장면이 발생하며 주목을 받기도 했다. 후진타오는 무언가 서류를 보려고 하다가 제지를 당하고 이후 누군가의 부축을 받으며 밖으로 나갔다. 전문가들은 후진타오가 보려고 했던 서류에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인사결과가 있었을 것이라도 추정하고 있다. 시진핑의 권력장악에 불만을 느꼈을 후진타오가 자의반 타의반으로 퇴장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로부터 1주뒤에 차기 중국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공개됐다. 이들은 모두 '시자쥔'으로 불리우는 시진핑의 측근들로 구성됐다. 전문가들은 이로서 중국의 집단지도체제가 사실상 붕괴되었다고 평가한다.
 
마오쩌둥 시대 1인 지배체제의 위험과 부작용을 겪었던 중국은 덩샤오핑이 여러 파벌들이 권력을 분산하여 서로를 견제하고 협력하는 집단지도체제와 격대지정(전전임이 차차기 후계자를 지명하는 방식)을 국가운영 시스템으로 확립했으나 시진핑이 이를 무너뜨린 것. 공산당의 3대 파벌로 불리우던 장쩌민의 상하이방, 후진타오의 공청단 등은 시진핑 3기의 중국 지도부에서 철저히 소외됐다. 향후 시진핑의 정책에 대하여 견제와 균형을 목소리를 낼수 있는 세력이 소멸된 것이다.
 
또한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상하이 협력기구라는 새로운 국제기구를 창설었다.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을 함께 견제하며 새로운 세계질서를 주도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낸 것이다. 전문가들은 시진핑이 '21세기의 마오쩌둥' 그 이상이 되고 싶은 것이라고 분석하여 위대한 중화민족의 재건, 이른바 중국몽을 자신의 역사적 소명으로 여기고 있는 시진핑의 야망을 진단했다.
 
하지만 겉보기에 견고해보이는 시진핑 독재권력의 이면에는 수많은 불안요소가 잠재되어있다. 지난 10월 중국의 수도 베이징의 시통다리 인근에서는 '반시진핑 현수막'이 내걸렸다. '코로나 검사 대신 밥을, 봉쇄가 아닌 자유를, 문화혁명 대신 개혁을, 최고지도자가 아닌 투표를, 노예가 아닌 공민을 원한다'는 내용이 걸린 현수막은 통제국가인 중국에서 보기드문 장면으로 큰 충격을 줬다.

여기에 상하이 봉쇄 등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강압적인 '제로 코로나' 정책에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한 중국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하며 곳곳에서 거센 시위가 발생했다. 또한 경제위기로 실업률이 높아지며 일자리를 잃고 길거리에 나와 노점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젊은 청년층이 중국에서 크게 증가하면서 밑바닥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 연 10% 고도성장을 거듭하던 중국 경제는, 시진핑 집권기와 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거치며 곤두박질쳤다. 이른바 중국의 현재를 정당화하고 공산당 체제 우월성의 근거로 여겨졌던 오던 '경제성장의 신화'가 무너진 것이다.
 
불안정한 독재 정권이 결속력을 다지고 내부 세력의 불만을 밖으로 돌리기 위하여 흔히 쓰는 수단은 대외 강경책이다. 시진핑 정권이 만일 밖으로 문제를 돌리려고 한다면 그 타깃은 대만이 될 가능성이 높다. 대만과의 통일은 시진핑이 구상하는 중국몽의 마지막 퍼즐이기도 하다. 시진핑은 최근 공산당대회에서 "대만에 대한 무력사용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협박을 서슴치않으며 양안관계에 대한 강경노선을 이어갔다.
 
대만인들도 최근 어느 때보다 전쟁에 대한 위기의식이 높아졌다. 중국에 반환된 이후 일국양제의 약속이 무너지며 위기에 빠진 홍콩, 러시아의 침공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저항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모습 등은 대만인들에게도 큰 교훈이 되고 있다. 중국이 대만 봉쇄를 위한 대대적인 군사훈련을 잇달아 진행하면서, 대만 역시 자체 방공훈련과 자발적인 민간군사교육 등으로 안보의식이 높아지고 있다.
 
또한 대만은 동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미중 패권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아시아 지역의 안보 화약고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미국 낸시 팰로시 하원의장이 전격 대만을 방문하는가 하면, 조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이 침공하면 대만을 군사적으로 방어할 것"이라고 공개 선언하며 중국이 거세게 반발하는 등, 양안을 둘러싼 국제적인 긴장감은 팽팽하게 고조되고 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세계는, 기존의 상식과 질서로 이해되던 어제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향해가고 있다. 세계는 최근 자국의 국익을 우선하는 흐름이 득세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과거의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처럼 철저하게 분리된 두 개의 진영으로 나뉘어 대립하는 상황은 더이상 불가능하다고 진단한다. 21세기에는 패권경쟁을 벌어고있는 미국과 중국조차도 경제적-사회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는 구조이기에 한쪽이 무너지는 것은 곧 공멸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세계화와 각자도생의 갈림길에 선 세계 질서 속에서, 각국들의 정치적 불안정과 국제관계에서의 외줄타기도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다큐인사이트 우크라이나전쟁 극우주의 파시스트 시진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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