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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 일에 우울증 온다" 백화점 진상 가해자의 변명

[TV 리뷰] MBN <진상월드>

23.03.05 11:19최종업데이트23.03.05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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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서 수백명씩 수많은 사람들을 고객으로 마주해야하고 항상 친절함을 잃지 않아야 하는 판매직은, 이른바 '감정노동의 최전선'으로 불린다.
 
하지만 2022년 한국걸스카우트 연맹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감정노동 대상자 10명중 6명 이상이 폭언-폭행-괴롭힘 등의 경험이 있으며 전체의 86.6%가 정서적 손상에서 위험 수준에 이른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피해자들은 자존감이 무너졌던 경험을 떠올릴때마다 지금도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3일 방송된 MBN <진상월드> 6회는 '판매직' 편을 통하여 대한민국 감정노동자들이 현장에서 겪어야했던 기상천외한 진상들의 실태를 고발했다.
 
최근인 2023년 1월 12일 L백화점에서 벌어진 이른바 '백화점 맨발 사건'은 세간에서 큰 화제가 됐다. 가해자는 지난해 11월 해당 매장에서 수제 구두를 주문 제작했고, 올해 1월 9일 구두 장식 문제로 불만을 접수했다.
 
그런데 가해자는 수선해야할 구두를 직접 신고와서는, 매장 측에 구두를 맡기고 자신이 신고갈 새 신발을 제공해달라는 황당한 요구를 했다. 매장 측이 거절하자 가해자는 불만을 품고 맨발로 매장을 찾아와 욕설을 하면서 난동을 부렸고 심지어 이를 자랑하듯 SNS에 업로드까지 했다. 가해자의 난동으로 인해 해당 매장은 구두 26켤레와 진열장 4개가 파손되며 약 2600만 원의 상당의 피해가 발생했고 직원들도 큰 충격을 받았다.
 
MC 김구라는 "의외로 시장같은 대중적인 곳보다 백화점이나 전문매장같은 곳에 진상이 출몰한다"고 지적했다. 이광민 정신과 전문의는 "어느 순간부터 매장이나 백화점이 '대접받는 공간'이라는 인식으로 변질됐다"고 분석했다.
 
한 백화점 화장품 판매장에서는 해당 제품을 바르고 두드러기 발진이 났다고 주장한 가해자가 20분간 난동을 부리며 매장 직원을 폭행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심지어 가해자는 직원의 얼굴에 화장품을 바르고 강제로 먹이기까지 했다. 결국 가해자는 폭행과 업무방해-재물손괴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손수호 변호사는 "내일이 없는 것처럼 난동을 피우는 가해자들이라고 결국 법정에 서게되면 피해자의 선택에 따라 법적 처벌이 불가피하다. 그런데도 끝까지 몰염치하고 뻔뻔한 태도로 일관하다가 결국 감옥까지 가게 된다"고 경고했다.
 
보통 백화점 매장에서 구매한 옷은 규정에 따라 손상이 없는 상태에서 최대 7일 이내에만 환불(단순한 고객 변심의 경우)이 가능하다. 그런데 기한이 지나거나 착용후 옷에 손상이 발생했음에도 막무가내로 환불이나 교환을 요구하고 난동을 부리는 진상들이 즐비하다고.
 
더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진상 수법이 실제로 통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계속된 난동에 지친 매장 직원이 규정에 없이손해를 보고서라도 어쩔수없이 교환을 허락해준 경우가 있었다. 심지어 본인이 교환해달라며 가져온 옷까지 그대로 다시 가져가겠다고 우기는 손님도 있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줄 안다.'는 이야기가 실감나는 장면이다.
 
진상과 진상이 만나는 경우도 있었다. 한 면세점 매장에서는 외국인들이 화장품 구매 우선순위를 두고 다툼이 벌어져 이종격투기를 연상시키는 난투극이 벌어졌다. 이들의 정체는 바로 중국인 리셀러(물건을 되파는 사람)로 한국에서 면세가 할인으로 구매한 제품을 중국으로 가져가 비싸게 되파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면세점 상품들을 모조리 사들이려고 '새치기'도 불사하다가 종종 자기들끼리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진상으로 유명세를 떨쳐서 유튜버가 된 황당한 사례도 있었다. 휴대전화 이용 결제를 거부하며 난동을 부리고, 공항편의점에서 절도를 저지르고도 직원에게 폭언과 난동을 일삼으며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한 남성은, 최근 셀럽이 되겠다며 유투버로 나서서 주목을 받았다.
 
'사이먼 조미닉'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유투버는 '공항도둑'이라는 지칭에 억울함을 주장하며 "난 더이상 숨지 않아. 공항도둑이 아닌 사이먼 조미닉의 삶을 살겠다"고 도리어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이광민 전문의는 "지켜보면 말을 그냥 내뱉는다. 말의 앞뒤가 안 맞고 목적도 불분명하다. 그게 소위 '밈'으로 바뀐 거다"라고 가해자의 상태를 지적하며 "사회적으로 용납되어서 안 될 관심인 거다. 관심중독에 빠져서 감정이 통제되지 않고 그대로 표출되는 것"이라고 일침을 날렸다.
 
최근에는 수입차 매장에서 차량결함으로 인한 환불을 요구하며 고기 구입-2년간 무상렌트 등 터무니없는 보상조건을 요구한 진상 고객이 등장했다. 심지어가 당사자가 1990년대 활동한 유명 연예인 출신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다만 당사자는 해당 차량이 연이은 고장으로 가족들까지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면서 일방적인 갑질 논란에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인천의 한 백화점 매장에서는 7년 전 구입된 제품의 무상수리를 요구한 진상고객이 등장했다. 가해자는 직원들이 해당 부품의 단종으로 유상수리를 권유하자 고객 응대에 불만을 품고 직원들을 무릎꿇리며 폭언과 협박을 한 영상이 공개되어 충격을 줬다.
 
진상만큼이나 문제가 되는 것은, 백화점이나 명품회사에서 매장 직원들 개인에게만 모든 책임을 '떠넘기기'식으로 대처한다는 것이다. 이광민 전문의는 "진상 고객이 아닌 매장 직원의 미숙한 대처에 책임을 전가하기 시작하면 이런 행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하며 "명품을 샀다고해서 자신이 명품이 아니다.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일뿐"이라며 무개념 갑질 진상들에 대한 분노를 드러냈다.
 
2021년 1월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 제 5조는 정당한 업무를 하다가 피해받은 근로자를 위해 사업주는 고소-고발-손해배상 청구에 대한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고 이를 보호하지 않을시 최대 천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게 했다.
 
'진상추적단' 코너에서 제작진은 화제의 '백화점 맨발 사건'의 장본인을 직접 찾아가 인터뷰하는 시간을 가졌다. 피해자인 매장 매니저는 가해자의 진심어린 사과와 파손된 물품에 대한 변상을 원했다.
 
놀랍게도 해당 가해자의 정체는 방송까지 출연한 경험이 있는 1인 방송 크리에이터이자 장난감 판매 사업자였다. MC와 출연자들은 본인도 '판매자'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갑질을 했다는데 충격을 금하지 못했다.
 
제작진은 수소문 끝에 가해자를 만나는데 성공했다. 가해자는 당시 난동을 부린 이유로 "알바생(부매니저)이 저를 조롱하고 비하해서 화가 났다"고 주장하며 "새 신발을 요구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부매니저는 "고객을 조롱한 적 없고 새 신발을 결제해서 신고간 후 환불하겠다고 말했다"고 반박했다.
 
가해자는 피해자 측의 반박에 그제서야 "내 말이 얼마나 우스우면 내 말을 안 듣지? 내가 이렇게 심각하다는 걸 너희는 왜 공감을 못하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때려부쉈다"고 시인했다. "화가 많고 감정조절이 어렵냐?"는 질문에 가해자는 망설이다가 "조울증이 있다. 병원에 입원 중이다"라고 변명했다. 가해자는 "제가 무조건 잘못한 건 맞는데, 제가 조증일 때 잘못한 일을 벌여놓고 제 정신을 차리고나면 제가 한 일에 우울증이 온다. 죽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분노조절장애가 혹시 동정유발을 위한 변명은 아닐까? 손 변호사는 실제로 법정에 선 가해자들이 음주후 심신미약이나, 정신질환 등을 감형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가해자는 "너무 사과하고 싶다"고 잘못을 인정했다. 난동으로 인해 파손된 구두는 본인이 모두 구매하겠다고 약속했다. 가해자는 "제가 학교폭력을 저지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개인 채널을 다 닫고 저 자신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진 뒤, 잘못한 분들에게 찾아 가서 꼭 사과하겠다"고 다짐했다.
 
가해자의 사과영상을 본 피해자는 "담담하다. 사과 몇 마디로 끝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것 같아서. 사과는 받았지만 모든 일이 없었던 일이 될 수는 없으니까"라고 복잡한 감정을 드러내며 "사과도 사과지만 파손된 물건에 대한 피해 보상이 이루어졌으면 한다"는 마음을 드러냈다. 
 
피해자는 "이번 일을 계기로 상대방을 배려하고 자신이 '갑'이라고 내세우며 못되게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전했다. 귀한 고객이 잔인한 진상으로 탈바꿈하는 것은 한 순간이다. 손님과 판매자 모두 서로가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회가 될 때 갑질이라는 단어도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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