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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는 영화들' 전주에서 만나보자

24회 전주국제영화제, 이 영화들을 주목하라

23.04.10 14:00최종업데이트23.04.1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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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 ⓒ JIFF


봄을 여는 시네필의 영화축제 전주국제영화제(아래 JIFF, 4월 27일 개막)가 24회를 맞아 다양한 시선과 장르로 무장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정준호 공동집행위원장 임명과 대중성 강화에 관한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고 있지만, 공개된 상영작들은 기존 JIFF의 색깔을 유지하며 영화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하다.

개막작 다르덴 형제의 <토리와 로키타>와 폐막작으로 선정된 김희정 감독의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를 비롯, 18개의 섹션에서 소개될 42개국 247편의 영화들 중 JIFF를 통해 시네필들의 발견을 기다리는 영화들을 키워드로 소개한다. 

1. 거장
 

<정오의 별>의 한 장면. 프랑스 여성영화의 거장 클레르 드니의 신작 ⓒ JIFF

 
'마스터즈' 섹션을 통해 거장의 신작들을 꾸준히 소개해온 JIFF가 올해 주목한 거장의 면모도 흥미롭다. 우선 JIFF가 사랑하는 필리핀의 거장 라브 디아스의 신작 <필리핀 폭력 이야기>가 눈에 띈다. 필리핀의 역사와 트라우마를 통해 인간과 시대에 관해 질문해온 감독의 야망이 또 한 번 성취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412분의 방대한 상영시간을 통과하면 잊을 수 없는 영화적 경험을 선사할 것.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성감독 클레르 드니의 <정오의 별>은 군사 정권의 지배하에서 만난 젊은 미국인 기자와 영국인 여행자의 이야기 속에서 분투하는 여성에 주목한다. 국가와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에 맞서는 영화를 통해 타협하지 않는 여성들을 응시하는 드니의 시선은 신작에서도 부조리한 삶에서 대담하고 자유로운 선택을 하는 인물을 자연스럽게 주목하게 한다.

마틴 스콜세지의 걸작 <택시 드라이버>의 시나리오 작가이자 비평가, <어플릭션> <퍼스트 리폼드> 등 지적인 통찰로 가득한 연출작들을 두루 선보였던 폴 슈레이더의 <마스터 가드너>는 귀부인에게 고용된 정원사의 이야기로 <택시 드라이버>처럼 잠재된 폭력과 욕망, 구원에 주목하며 슈레이더의 영화들을 관통하는 일상과 강박, 구원의 세계를 탐구한다. 

'카이에 뒤 시네마'가 선정한 1970년대 최고의 프랑스 영화 <엄마와 창녀>도 '시네필전주' 섹션을 통해 관객들과 만난다. 68혁명의 좌절과 허무를 담은 장 외스타슈의 데뷔작으로 그를 '포스트 누벨바그'의 대표 주자로 우뚝서게 한 대표작이다. 누벨바그의 아이콘 장 피에르 레오의 출연과 위태로운 인물의 정서를 포착한 3시간 30분짜리 영화로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가슴을 뒤흔드는 걸작. 

'누벨바그의 어머니' 아녜스 바르다가 1967년의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를 카메라에 담은 < 1967 - 뉴욕의 파솔리니 >도 '시네필전주'를 통해 프리미어로 공개된다. 기록영화와 극영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카메라와 사람들의 거리와 시간에 주목했던 거장이 동시대 이탈리아영화의 기수이자, 논쟁가였던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와의 교감을 기록한 단편 다큐멘터리. 접점이 뚜렷하지 않은 두 시네아스트가 낯선 이국에서 만난 시간과 교감의 순간들이 불러일으킬 감흥이 기대된다. 
 

<고다르 시네마>의 한 장면. 작년 타계한 누벨바그의 거장 장 뤽 고다르의 영화세계를 담았다. ⓒ JIFF

 
누벨바그를 이끈 기수이자, 현대영화사에 지대한 족적을 남긴 장 뤽 고다르의 영화와 삶을 주목하는 두 편의 다큐멘터리도 '장뤼크 시네마 고다르' 섹션으로 최초 공개된다. 고다르 사망을 앞두고 불과 며칠 전에 베니스영화제에서 공개되어 더욱 특별한 <고다르 시네마>는 시릴 루티 감독이 고다르에게 헌사하는 위대한 영화유산의 초상화. 내밀하면서도 생생한 고다르의 초상화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인 심고우리 감독이 2002년 스위스에서 고다르와 진행한 인터뷰를 담은 <고다르 감독에게 묻다>도 고다르의 팬이라면 놓치지 말아야할 작품. 논쟁적이면서 실험을 멈추지 않았던 그의 영화세계와 신념을 그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초현실주의의 대가이자 독보적인 영화세계를 남긴 스페인영화의 거장 루이스 부뉴엘의 '만년의 삼부작'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 <자유의 환영> <욕망의 모호한 대상>은 백현진 배우의 픽으로 만날 수 있다. JIFF가 2022년부터 신설한 'J 스페셜: 올해의 프로그래머' 섹션의 주인공 백현진이 관객들과 함께 보고 싶은 영화로 선정한 부뉴엘의 '만년의 삼부작'은 그의 말대로 남다른 영화다. 인간의 욕망에 천착하며 어떤 범주에도 속하지 않는 걸작들을 만든 부뉴엘의 영화들 중 후기작인 '만년의 삼부작'은 부르주아의 관습과 성적 강박감을 조롱하며 웃지 못할 상황들을 연출한다. 백현진 배우의 말처럼 한마디로 '다른' 영화다. 

2. 여성
 

<폭설>의 한 장면. 한소희가 출연한다. ⓒ JIFF

 
폴 B. 프레시아도 감독의 <올란도, 나의 정치적 자서전>(국제경쟁)은 버지니아 울프의 <올란도>에게 바치는 연서이자, 현재진행형인 '올란도'들의 이야기. 트랜스젠더로서의 삶을 살아가며 시련을 넘어 궁극적으로 사랑을 향하는 모든 올란도들의 이야기를 통해 '문학사상 가장 길고 찬란한 러브레터'라는 <올란도>처럼 용기있는 삶과 사랑의 궤적을 담는다. 

<구름에 대하여>(국제경쟁)는 아르헨티나 도시의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 흑백의 미장센에 담긴 인물들의 미묘한 감정과 내면의 풍광을 시적인 감성으로 담은 서정적인 여운이 기대된다.

한제이 감독의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한국경쟁)는 현실적인 여성 퀴어 멜로영화 <담쟁이> 한제이 감독의 신작. 1999년 세기말을 배경으로 청춘멜로와 세기말의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 뒤섞인 퀴어영화로, 전작과는 다른 감성과 스펙트럼으로 여성퀴어영화의 새로운 활력을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  

윤수익 감독의 <폭설>(한국경쟁)은 연기라는 공통 분모로 가까워진 소녀와 여성 스타의 이야기로 우정과 멜로를 넘나드는 연기의 감정을 오가며 서로에게 각별한 존재로 각인되는 두 여성의 추상화같은 시간을 담는다. 한소희 배우의 초기 출연작으로 첫 공개, 벌써부터 많은 화제를 모으고 있다. 

3. 마에스트로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의 한 장면. 2020년 타계한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의 영화음악과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 JIFF

 
영화음악과 뮤지션에 관한 영화들을 보기 위해선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찾아야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JIFF가 '시네마천국' 섹션에서 소개하는 네 편의 영화들은 영화음악, 월드뮤직, 록을 아우르며 스크린에 새겨진 음악들을 담는다. 

우선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가 단연 눈에 띈다. 두 말이 필요없는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에 관한 다큐멘터리로, <시네마 천국>을 비롯한 많은 명작들에서 호흡을 맞춘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이 그의 세계를 기록한 작품이라 더욱 특별한 가치를 가진다. 모리꼬네와의 인터뷰, 그의 영화음악 세계를 비롯해 함께 작업한 감독들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네아스트들의 인터뷰까지 빼곡히 담은 156분의 헌사. 그의 영화음악을 기억하는 모든 이들과 영화팬들에겐 더없는 선물이 될 것이다. 

보사노바와 삼바의 팬이라면 <보사노바의 목소리, 미우샤>와 <삼바의 아버지, 피싱기냐>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 '보사노바의 아버지'라 불리는 조앙 질베르투의 부인이자 위대한 뮤지션인 미우샤와 브라질 음악의 아이콘, 알프레도 비아나 주니어의 음악 세계를 담은 작품들로, 보사노바와 삼바, 브라질 음악의 매력에 빠질 만한 음악들을 듣는 기쁨을 선사한다. 

< LP 재킷의 전설, 힙노시 스>는 핑크 플로이드, 레드 제플린, 폴 매카트니와 윙스 등의 음반 재킷으로 명성을 떨친 앨범 디자인 스튜디오 힙노시스에 관한 이야기. 모험적인 시도와 특색으로 시대를 관통하며 여전히 사랑받는 LP 재킷에 관한 다채로운 이야기들과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흔치않은 경험이 될 것이다. 

4. 불면
 

<뉴 릴리전>의 한 장면. 불면의 밤 상영작으로 일본 호러영화의 새로운 경향을 보여준다. ⓒ JIFF

 
상대적으로 장르영화가 적은 JIFF에서 장르영화를 꾸준히 소개했던 '불면의 밤' 라인업도 화려하다. 

가장 화제를 모으는 작품은 타이 웨스트 감독의 <펄>. 미아 고스 주연의 <엑스>로 슬래셔 영화의 새로운 부활을 알렸다는 감독의 슬래셔 3부작 중 2편에 해당하는 <펄>은 <엑스>의 프리퀄이자 미아 고스가 전작에 이어 주연과 각본을 맡아 비평과 흥행 모두 성공한 작품. 오즈의 마법사를 연상시키는 호러 드라마로 <엑스>의 국내 개봉이 요원한 상황에서 타이 웨스트가 불어넣은 새로운 호러 동력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곤도 게이시 감독의 <뉴 릴리전>도 J호러의 팬들에겐 반가운 선물이 될 것. 매춘과 테러, 유가족의 심연을 J호러의 기묘한 감성으로 엮은 연출로 독특한 인상을 남긴다. 올해 JIFF에서 볼 수 있는 일본영화가 유난히 적어 아쉬운 관객들이라면 단연 주목할만하다. 

<학교는 끝났다>로 절망의 시대를 살아가는 위협적 존재를 통찰했던 세바스티앙 마르니에의 <악의 기원>은 <리플리>를 연상시키는 계급 스릴러. 중년 여성과 생물학적 아버지의 조우를 통해 계급적 투쟁과 딜레마를 스릴러의 양식으로 펼쳐낸 작품. 전작에서 돋보였던 불안의 화법과 예리한 통찰이 장르 안에서 어떤 파장을 남길지 기대된다. 
 

<수지>의 한 장면. KAFA 40주년 특별전 상영작으로 박소담이 출연한다. ⓒ JIFF

 
그밖에 차이밍량의 페르소나 이강생의 출연작 <부재>, 팬데믹 시대의 가족 우화 <마라맛 이야기> 등의 아시아영화들,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의 개교 40주년을 기념하며 KAFA가 배출한 수많은 수작들을 망라한 KAFA 40주년 특별전, JIFF의 경향을 대표하는 '영화보다 낯선', '전주시네마프로젝트' 등의 섹션 상영작들도 관객들의 선택을 기다린다.

'선을 넘는' 영화들과 도전과 확장을 내세운 JIFF가 바람대로 의미있는 성과를 남길지 기대된다. 상영작 예매는 오는 4월 12일 개·폐막작 예매와 14일 일반 상영작 예매가 순차적으로 이루어질 예정이다.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는 오는 4월 27일부터 5월 6일까지 전주 고사동 영화의 거리에서 개최된다. 
영화제 전주 전주영화제 J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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