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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앞에서 사랑을 숨기다

[리뷰] 루카스 돈트 감독의 영화 <클로즈>

23.05.06 10:45최종업데이트23.05.06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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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로즈' 속 한 장면 영화에서 두 소년은 한 가족이나 다름없이 정겹게 지낸다. 레미 엄마와 레오, 그리고 레미. ⓒ 찬란

 
근래 나는 상당히 짧은 숏커트의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다. 딱 일주일쯤 되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 이제껏 수십 년을 긴 머리를 하고 지냈는데 난생 처음 숏커트라서 나도 낯설지만 주위 분들도 놀라시는 눈치다. 잘 어울린다거나 멋지다고 말해주시는 고마운 분들도 있지만, 대다수 분들은 놀라서 시선을 잘 떼지 못한다. 가까이서 한참 나를 쳐다보기도 해서 쑥스럽고 때로 민망한 기분도 든다. 그나마 나는 오십 줄의 중년이니 이런 반응에 웃고 너스레를 떨며 응대할 수 있다.
 
긴 머리는 여성성을 쉬이 드러내주는 모습이다. 긴 머리가 아닌 지나치게 짧은 숏커트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게 된다.
 
루카스 돈트 감독의 영화 <클로즈>에는 두 소년이 등장한다. 이름도 비슷한 레오와 레미. 첫 장면에는 두 소년이 빈 건물의 그늘 아래 숨어서 놀이를 하고 있다. 아이들은 가상의 적군 같은 무리를 상상하며 숨어 있다가 내처 들판을 힘껏 달린다. 레오 가족이 생업으로 가꾸는 꽃밭이 펼쳐진 들판을 경쾌하게 달린다. 환한 웃음, 금발의 머리, 그리고 날씬하게 뻗은 팔과 다리…
 
두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는 장면이 있기 전까지는 아이들의 나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그들이 '놀이'를 하고 있는 걸로 보아 어린 아이들이려니 했다. 막 중학교에 들어가는 두 아이는 어린이에서 청소년으로 입문하게 된다. 그리고 중학교라는 공간(사회)은 그 이전과 확연히 다르다. 레오와 레미는 당장 여자아이들로부터 "둘이 사귀냐?"는 공격적인 질문을 받았고, 남자아이들로부터 "호모"라는 놀림과 괴롭힘을 당한다.
 
레오와 레미는 쌍둥이처럼, 한 형제처럼 서로 의지하고 좋아하는 친구다. 같이 놀고, 같이 서로의 가정을 방문해 머물기도 하고, 레미 엄마는 레오도 아들이라고 생각할 정도다. 둘은 같이 자전거를 타고 등교한다. 교실에서도 옆에 붙어 앉는다.
 
주위 아이들의 호모라는 놀림과 혐오에 대처하는 레오의 선택은 남성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섬세하고 아름다우며, 무심한 듯 순수한 눈빛을 가진 이 소년은 축구를 하는 친구들 틈에 애써 끼고, 아이스하키를 배우기 시작한다. 그는 무던히 혐오에 공격받지 않으려 애쓰기에 그 모습이 애처로울 지경이다. 어떻게든 축구를 하는 남자애들 틈에 끼어 왕따를 당하지 않으려고 공을 차고 함께 웃는다. 아이스하키 복장은 소년의 여린 몸매를 가리고 남성적으로 보이게 해준다.
 
레미는 갑자기 자기를 밀어내는 레오를 이해하기 힘들다. 왜 등교길에 자기를 기다리지 않았냐고 레오에게 따지지만, 레오는 그냥 일찍 오게 되어 그랬다고 궁색하게 대답한다. 레오는 레미와 너무 가까운 것이, 그들이 우정이 동성애로 받아들여지고 혐오로 이어지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영화를 보며 여러 퀴어 영화들이 떠올랐다. 장국영과 양조위 주연 <해피 투게더>의 유명한 장면을 오마주한 듯한 장면도 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어린 버전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 영화를 퀴어 영화로 명명하기는 애매하다. 두 소년의 관계가 동성애로 여겨져 혐오에 노출되는 부분은 있다. 그들이 자라면 연인이 될 개연성도 있다. 하지만 이제야 막 어린이에서 청소년으로 접어드는 이 소년들의 관계는 한 형제 같고 가족 같은 애정과 편안함, 친근함이다. 이 친근함을 성적인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맑음과 따뜻함은 너무나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주인공 아버지의 태도에 감동했었다. 이 영화에서는 레미 엄마의 태도가 감동을 준다. 레오가 숲 속으로 사라질 때 그를 애타게 부르는 레미 엄마, 그리고 뜨거운 포옹. 누구도 다치지 말고, 죽지 말고 잘 살아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모성이 아닐까 싶다.
 
이 영화는 <보이후드>처럼 한 소년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나는 이 소년의 성장기를 보며 마음이 저려왔다. 여자애 같이 생기고 여린 마음을 지닌 그가 남자다워 보이려고 갖은 애를 쓰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사람들은 보통과 좀 다른 이들을 다른 그대로 두면 안 되는 걸까.
 
아름답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타이틀을 보며 이 말이 떠오른다. 아니, 영화보는 내내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끝없이 꽃들이 피어 있는 들판이 아름답고, 들판을 달리는 두 소년이 아름답다. 소년의 얼굴과 손, 가느다란 몸이 아름답고, 누군가를 바라보며 흔들리는 눈빛이 아름답다. 피로와 슬픔에 지친 엄마의 모습이 아름답고, 결국 소년을 단단히 껴안아주는 마음이 아름답다.
 

▲ 레오와 레미 중학교에 입학한 두 소년은 둘의 관계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 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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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산책하는 삶을 삽니다. 2011년부터 북클럽 문학의 숲을 운영하고 있으며, 강과 사람, 자연과 문화를 연결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공동대표이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강'에서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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