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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만의 진실, 악마의 자백을 이끌어낸 사람들

[TV 리뷰]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23.06.16 16:04최종업데이트23.06.16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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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연쇄살인사건(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연쇄살인사건으로 꼽힌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경기도 화성 일대에서 많은 여성들이 성폭행 후 살해당한 사건으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진범은 뒤늦게 밝혀졌지만, 그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피해자와 억울한 희생자들을 남긴 이 사건은, 지금도 대한민국 사회에 아픈 교훈을 전해주고 있다. 

15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에서는 '살인 12+2, 악마의 고백' 편을 통해 화성연쇄살인 사건과 그 범인 이춘재의 이야기를 조명했다.
 
2019년 5월 경기남부경찰청 미제사건 수사팀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제보자는 "한 사건의 범인을 알고 있다"며 그가 "자신의 지인이고 미국에 살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담당이던 이성준 형사는 확인이 어려운 상황에서 불확실한 제보를 무작정 믿을 수도,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이 형사는 일단 사건 기록을 확인했다. 오래된 서류더미에서 발견한 것은 1990년 11월 그가 형사가 되기도 훨씬 전인 29년 전의 한 사건파일이었다. 당시 피해자는 13세 중학생으로, 성폭행을 당한 후 목이 졸려 살해된 채로 발견됐다. 소녀는 양손과 발이 뒤로 꺾인 채 결박된 상태였다. 경찰은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으나 당시 끝내 진범을 찾지 못하고 오랜 세월 미제 사건으로 캐비닛 속에 갇혀있었다.
 
3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 미제사건 해결의 희망이 생긴 것은 과학수사의 발전 덕분이었다. DNA 감식을 통해 당시에는 찾지 못했던 범인의 흔적을 찾는 게 가능해졌다. 이 형사는 당시 사건의 증거품을 어렵게 확보해 곧장 국과수에 감식을 의뢰했다.
 
증거품은 피해자의 속옷이었다. 다행히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보존 상태는 상당히 양호했다. 2주에 걸친 시간이 걸린 끝에 한 남자의 DNA가 검출해내는 데 성공했다. 경찰은 미국에 있는 제보자를 확인하러 가기 전에 먼저 DNA 데이터베이스 대조 작업을 진행했다. 2010년부터 경찰은 구속-수감자를 대상자로 DNA를 검사해, 데이터베이스로 보관해 범죄 수사에 활용해왔다. 국과수 팀은 농담 삼아 "혹시 데이터베이스에 진범이 있는 게 아닐까"라는 대화를 주고 받았지만 이때만 해도 아무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하루 만에 상상도 못한 반전이 일어났다. 놀랍게도 교도소에 구속되어있는 수감자들의 데이터 중 피해자의 속옷에서 확보한 것과 일치하는 DNA가 발견된 것. 수십년간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미제사건으로 꼽히던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피해자 중학생은 화성연쇄살인 사건의 아홉 번째 피해자였다.
 
DNA의 주인공이자 연쇄살인의 진범은 이춘재, 당시 그는 화성연쇄살인사건과 별개로 부산교도소에서 25년째 복역 중인 무기수였다. 이춘재는 마지막 10차 화성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진지 3년 뒤인 1994년, 청주에서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상태였다.
 
수사팀은 2019년 9월, 이춘재를 만나기 위해 부산교도소로 향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춘재는 당시 교도소에서 '1급 모범수'로 인정 받으며 평화롭게 지내고 있었다. 만일 그가 혐의를 끝내 부인하거나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기라도 하면 더 이상 수사를 진행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속내를 알 수 없고 예측 불가능한 이춘재를 상대하기 위해 수사팀은 어느 때보다 만반의 준비를 했다.
 
9월 18일, 이성준 형사는 부산교도소로 내려가 마침내 이춘재를 만났다. 당시 56세의 이춘재는, 머리는 백발에 가까웠지만 피부도 깨끗하고 나이보다 젊어보이는 인상이었다고. 이 형사는 화성 사건에 대해 추궁했지만 예상대로 이춘재는 내내 느긋한 표정으로 "고향이 화성이니 사건은 많이 들어봤지만 저랑은 상관 없다"고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 형사가 이춘재를 취조하는 동안에도 DNA 감식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당시 화성 사건 중 3건의 증거품(5차, 7차, 9차)에서 이춘재의 DNA가 검출되었지만, 그가 연쇄살인의 진범임을 증명하고 혐의를 밝히기에는 아직 부족한 상황이었다. 결국 이춘재 스스로 범행을 인정하고 구체적으로 자백하게 만들어야만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애가 타는 쪽은 이 형사였다.
 
경찰과 이춘재의 두 번째 심리전이 시작됐다. 이 형사는 소득없이 조사를 마치는 듯 하더니 이춘재에게 프로파일러와의 대화를 제안했다. 이 형사는 "프로파일러는 조사관이 아니다. 편하게 한 번 이야기를 나눠보겠느냐"라고 권했다. 수사팀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여성 프로파일러를 접견실 밖에 대기시켜 놓았고, 이춘재도 이를 목격한 상태였다. 이춘재는 자신의 계산에서 벗어난 돌발상황에 당황했지만, 여성들과의 대화에 호기심을 드러내며 제안을 수락했다.
 
프로파일러들은 전략대로 이춘재에게 가벼운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 '라포 형성(의사소통에서 상대방과 형성되는 친밀감 또는 신뢰관계)'을 시도했다. 사건과 무관한 이야기로 이춘재의 경계심을 허물고, 그의 성장환경이나 성격적 특성, 심리상태 등을 파악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이춘재는 이 형사의 조사 때와는 달리, 자신의 속내를 조금씩 꺼내기 시작했으며 접견을 마치고 돌아가려는 프로파일러와 형사들에게 먼저 악수를 청하며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이춘재는 다음날 다시 이어진 접견에서는 아예 형사들 대신 프로파일러들과 이야기를 하겠다고 요청했다. 기분이 좋아진 이춘재는 본인의 가정사와 군대 시절 무용담을 털어놓으며 초반과 달리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수사팀은 이춘재가 어느덧 프로파일러와의 대화를 즐기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이번에는 일부러 약속한 날짜에 접견을 하러가지 않고, 다음날에 다시 이춘재를 찾아가 반응을 살폈다. 예상대로 애가 탄 이춘재는 "어제 온다고 해놓고 왜 오지 않았냐"며 서운한 반응을 드러냈다.
 
수사팀은 이번엔 이 형사는 뒤로 빠지고 프로파일러들만 접견실에 들여보내 대화하게 했다. 어느덧 경계심이 풀어진 이춘재는 프로파일러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혹시 내가 입을 열면 당신들 승진도 하고 좀 그럽니까? 그럼 제가 이야기 좀 해줄까요?"라면서 "그런데 내가 모든 걸 말하면 놀랄 거다. 당신들이 곤란해질 수도 있다"라고 이야기를 할듯말 듯 생색을 내기 시작했다. 이는 본인이 경찰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심리적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이는 수사팀이 노린 심리전이기도 했다.
 
프로파일러는 "누가 곤란하든 아니든 그런 건 상관 없다. 중요한 건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프로파일러의 얼굴을 잠시 응시하던 이춘재는 종이와 펜을 요구하더니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살인 12+2, 강간 19, 미수 15"라고 적혀 있었다. 바로 자신이 저지른 49건의 범행에 대한 최초의 자백이었다.
 
이춘재는 "12 더하기 2가 뭔지 알겠냐?"라고 질문했다. '살인 12+2'는 10차까지 밝혀진 화성 연쇄살인 사건 외에 4건의 살인이 더 있다는 의미였다. 이춘재는 화성에서 2건, 청주에서 2건의 살인을 더 저질렀고, 처제 살인사건까지 합하면 15건으로 늘어난다.

이춘재는 이때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진술을 시작했다. 놀랍게도 이춘재는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사건 건수와 범행 시기, 지역, 과정 등 거의 모든 것을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고, 심지어 현장을 그림으로 직접 그려서 설명하기도 했다. 이는 진범이 아니라면 결코 알 수 없는 구체적인 진술이었다. 수사팀은 이후로도 꾸준한 접견을 통해 이춘재로부터 모든 사건에 대한 자백과 진술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대체 이춘재는 왜 그토록 오랜 시간 꽁꽁 감춰왔던 자신의 모든 죄를 자백했을까.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자신의 비밀을 밝혔을 때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만족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쯤에서 내가 자백을 하는 것이 너희들에게 훨씬 더 충격을 줄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라며 이춘재의 심리를 분석했다.
 
이춘재는 훗날 형사들에게 "경기도에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왜 왔는지 알았다. 경기도라면 화성 사건 밖에 없으니까. 언젠가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춘재는 "몇 년 전 교도소에서 자신의 DNA를 채취했을 때 곧 잡으러 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늦게 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성준 형사는 이춘재가 "대화에서 늘 자신이 우위에 서려고 하는 성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춘재의 자백으로 오랜 세월 묻혀 있던 또다른 진실도 밝혀졌다. 이춘재는 모방 범죄로 범인이 검거된 것으로 알려졌던 8차 살인사건도 자신이 저지른 짓이라고 주장했다. 1988년 당시 화성연쇄살인 사건에서 만 13살의 가장 어린 피해자는 자택에서 성폭행 당한 후 살해 당했다.
 
10개월 후인 1989년 당시 체포된 범인의 정체는 동네 농기구 수리공인 22살 윤성여 씨였다. 경찰은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와, 범인과 같은 B형 혈액형이 결정적인 증거가 되어 윤 씨를 체포됐다. 하지만 이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당시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와 윤 씨의 체모는 일치하는 것이 아닌 비슷한 것이었고, 결정적으로 진범인 이춘재의 혈액형은 정작 O형이었다.
 
윤씨는 소아마비 장애로 다리가 불편해 서 있기도 힘든 상태에서, 경찰의 무자비한 고문과 가혹행위에 결국 허위 자백을 했던 것. 윤씨는 모든 혐의에 대해 유죄가 선언되며 무기징역이 선고되고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했다. 이춘재가 추가로 자백한 4건의 살인들 모두 화성연쇄살인 사건과 동일한 지점이 있었으나, 화성-청주 지역간 경찰의 공조 부실로 인해 경찰은 연쇄살인으로 연관시켜 조사하지 않았다.
 
또한 6차와 7차 사건 사이에 수원 화서동에서 벌어진 여고생 살인사건은 윤성여 씨와 마찬가지로 무고한 16살 소년을 용의자로 지목해 고문하다가 사망에 이르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춘재와 화성사건에 가려졌지만 공권력의 무책임과 잔혹함이 빚어낸 또다른 피해자들이다.

이 중에서도 가장 안타까운 사건은 '9살 피해자 살인사건'이다. 화성 8차 사건과 윤성여 씨의 체포 이후 벌어진 이 사건은 당시 시신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단순 실종'으로 처리됐다.
 
그런데 놀랍게도 당시 경찰은 피해자가 실종되고 몇 달 후, 산에서 시신과 관련 증거들을 발견했음에도 이를 은폐하고 심지어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이미 윤성여 씨를 범인으로 검거해놓은 상황에서, 또다른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한다면 자신들의 입장이 곤란해질 것을 두려워서 덮어버린 것이다. 윤씨를 검거한 공로도 당시 수사팀은 1계급 특진까지 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서도 냉대를 받았던 윤성여 씨는 20년간 억울한 옥살이 끝에 2009년 광복절 특사로 출소했다. 윤성여 씨는 진범 이춘재의 소식을 뉴스로 듣고 처음에는 다시 사건이 이슈가 되고 이름이 거론되면 안정적인 삶이 흔들릴까봐 두려웠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진범 이춘재의 등장으로 윤씨가 무고한 피해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그에게 관심이 쏟아졌고, 고심 끝에 이제라도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재심 청구'를 결심하게 된다.

재심 전문 변호사 박준영 변호사가 먼저 윤씨를 설득하여 손을 내밀었다. 박 변호사는 당시 경찰들이 윤씨에게 저지른 불법체포와 가혹행위, 증거조작을 차례로 밝혀냈다. 하지만 결백을 밝혀내기 위해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마지막 관문은, 바로 진범인 '이춘재의 증언' 확보였다. 억울한 누명의 원인 제공자가 누명을 벗는 데 꼭 필요한 도우미가 된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2020년 11월 2일, 8차 사건의 9차 재심공판, 박 변호사가 사건의 증인으로 요청한 이춘재가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수십 년간 세상을 뒤흔든 살인마가 공개석상 앞에 처음 서는 순간에 지켜보던 모두가 술렁였다.
 
이춘재는 심문에서 범행에 대한 세세한 내용을 자백하며 죄를 시인하고 윤씨의 무고함을 밝혔다. 윤씨는 법정에서 이춘재를 처음 대면했을 때만 해도 "머리 끝까지 감정이 올라와 참는 데 힘들었다"고 말했지만, 재판 후에는 "내가 그 사람 때문에 20년을 고생했지만, 그 사람의 자백 때문에 누명을 벗었으니 그것은 고마웠다"며 복합적인 감정을 드러냈다.
 
그리고 2020년 12월 17일, 8차사건 재심공판에서 윤성여 씨에게 마침내 '무죄'가 선언됐다. 당시 박정제 부장판사는 "법원이 인권의 보루로서 마지막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데 사법부 구성원으로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사죄했다. 무죄가 선고된후 재판정에서는 박수가 터졌다. 윤씨는 "다시는 저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고, 모든 재판이 공정하게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라는 소감을 전했다. 그가 누명을 벗는 데 걸린 시간은 무려 31년이었다.
 
33년 만에 화성 사건의 범인이 밝혀지고 화성 연쇄살인사건은 이제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춘재에 대해 법원은 14건의 살인과 9건의 강간 혐의를 인정했다. 그러나 공소시효 만료로 모두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되었다. 하지만 뒤늦게나마 진실이 밝혀지며 안타깝게 희생된 피해자들의 한을 뒤늦게나마 풀 수 있게 되었으니 헛된 싸움은 아니었다. 윤씨를 비롯한 억울하게 용의자로 몰렸던 약 20명의 피해자들 역시 보상 절차가 진행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정작 윤씨는 나쁜 경찰들에게 고문을 당하며 누구보다 큰 아픔을 겪었지만, 오히려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해준 착한 경찰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결정적 증거가 된 이춘재의 DNA 분석 작업을 이끈 강필원 국과수 소장은 화성 사건이 자신이 국과수에 입사하고 DNA 연구에 매진하게 된 계기가 되었음을 고백했다.
 
이성준 형사는 "2016년부터 이 사건을 해결하고 싶어서 많이 뛰어다녔다. 끝까지 묻히지 않고 세상 밖으로 나온 이유는 이제라도 해결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그게 순리이지 않나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꼬꼬무 이춘재 화성연쇄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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