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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톤' 강제규 감독 "신파 최소화하려고 노력한 이유는..."

[인터뷰] 영화 < 1947 보스톤 > 강제규 감독

23.09.15 17:02최종업데이트23.09.15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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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47 보스톤>을 연출한 강제규 감독. ⓒ 롯데엔터테인먼트


 
 
기획에서 개봉까지 약 5년 여가 걸렸다. 1947년, 그러니까 해방 직후 처음 참가한 국제 마라톤 대회에서 대한민국 선수가 1위를 한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 < 1947 보스톤 >이 관객과 만나기까지도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왜 하필 이 시기가 됐을까. 코로나19 및 출연 배우 이슈 등 여러 사건이 있었지만, 일제강점기의 설움을 딛고 마라톤으로 한국을 알린 이야기가 여전히 유요함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14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강제규 감독에게 영화화 과정 전반을 들을 수 있었다.
 
'국뽕'이 아닌 이유
 
애국주의를 강조하거나 국가를 내세워 감동을 전하는 콘텐츠를 '국뽕'이라 표현하는 한 흐름이 있다. 국가주의에 취했다는 뜻의 은어인 이 단어가 < 1947 보스톤 >을 두고도 흘러나오고 있다.

강제규 감독은 이를 전면 부정하진 않았다. 다만, 단어의 올바른 쓰임새는 짚을 필요가 있었다. 애국, 국수주의를 위해 없던 사실을 꾸미거나 일부 사실 왜곡도 서슴지 않는 데에 '국뽕'이라는 단어가 사용돼 온 걸 볼 때, 오히려 있는 사실 그대로를 전하려 한 이 영화 입장에선 다소 억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제규 감독은 오히려 감정을 덜어내고, 고증에 힘쓴 사실을 강조했다.
 
"그런 표현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분명 생각이 경도된 측면은 있다고 본다. 어떤 목적을 위해 사실을 과장하고 왜곡하는 게 일종의 나쁜 신파이자 국뽕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린 오히려 그걸 최소화하려 노력했다. 이미 손기정, 서윤복, 남승룡 세 마라토너가 만든 역사 자체가 드라마틱해서 뭘 더 얹을 필요가 없었다. 절대 감동을 강요하지 말자는 게 우선순위였다."
 
평소 한강공원 등에서 달리기를 즐겨한다는 강제규 감독은 마라톤이라는 종목 자체에 이미 매료돼 있었다. 대학교 학부생 시절 <불의 전차>를 보고 원초적 미학을 느꼈다던 강 감독은 "어떻게 달리기를 표현하느냐에 따라 보는 사람을 압도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며 "여기에 우리 마라톤 역사 거목 같은 분들의 실화가 더해지는 게 신선하게 다가왔다"고 연출 의뢰를 수락한 이유를 밝혔다. 2018년 제작사 측에게 연출 제안을 받은 강 감독은 여러 자료를 뒤지고, 유족을 만나며 수차례 각색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영화 <1947 보스톤>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유가족분들 동의를 못 받으면 안 되니까 그분들이 생각하고 있는 세 선수, 주변 상황에 대해 조언을 받았다. 세 인물마다 자기만의 드라마가 있어서 각자 따로 영화 한 편씩 만들 수 있는 정도였다. 세 사람이 한 팀이 돼 하나의 결과로 향하는 과정에서 역할과 분량의 균형감이 중요했다. 이상윤 작가가 써놓은 대본을 받고, 이정화 작가와 함께 네다섯 차례 수정했던 것 같다. 막상 촬영하면서 미진한 지점이 보여서 그때그때 수정하기도 했다. 제가 촬영 때 대본을 고치는 경우가 없다. 이 작품이 유일하다.
  
또 하나 큰 고민이었던 게 1947년 보스톤을 재현하는 문제였다. 특정 장소에 국한되지 않고 출발점부터 도착지점까지 다양한 공간을 보여야 하는데 현대물이 아니기에 사람만 많이 모은다고 되는 게 아니잖나. 스트레스가 많았다. <마이웨이>(2011) 때 라트비아 경험이 있어서 다시 가봤고, 유럽 여러 나라를 봤는데 보스톤과 느낌이 달랐다. 날씨와 공간 느낌이 맞는 지점이 결국 남반구 지역이었고, 우루과이와 호주가 최종 후보였는데 결국 호주로 정하게 됐다."

 
마라톤의 가치
 
강제규 감독은 영화를 진행하며, 유독 남승룡이란 인물에 애착이 갔던 사실도 전했다. 상대적으로 자료가 풍부한 손기정, 서윤복 선수와 달리 남승룡 선수 자료는 부족했다. 손기정과 함께 뛰었고, 해방 이후엔 후배 양성에 힘쓰다가 서른여섯 나이에 서윤복과 함께 보스톤 마라톤에 출전한 이야기는 감독에게도 남다르게 다가왔다고 한다.
 
"아무래도 우리가 1등을 기억하잖나. 남 선수는 어찌 보면 영광 속에, 역사 속에 가려진 인물이다. 그래도 마라톤을 향한 애정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사람이다. 1936년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고, 시상대에 올랐을 때 일장기를 가릴 화분이 없어서 원한이 됐다. 1947년 선수 생활 끄트머리에 한을 푸는 인물이기에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후배를 위해 기꺼이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했다. 그런 분을 우리 영화에서 녹일 수 있어서 좋았다."
 
이 대목에서 강제규 감독은 영화에 담으려 한 주제의식을 언급했다. 겨우 대한민국 국기를 달고 뛸 수 있게 됐지만 국권이랄 게 없어서 국제사회에선 일본의 한 지역이거나 미국의 속국처럼 여김을 당했던 시기였다. 왠지 모르게 일본 핵오염수 방류 등 국제 문제에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못하며 굴욕 외교라 욕 먹는 현 정부와 비교돼 보일 여지도 많다.
 
"그때 나라의 개념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고 본다.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된다. 우리에게 어떤 미래가 올지 아무도 모르잖나. 굳이 애국을 주장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망각하지 말아야 할 역사는 있다는 걸 말하고 싶다. 나라 없이 살던 때가 불과 우리들 할아버지 시대 때다. 그런 일이 또 생기지 않을 거란 보장은 없잖나. 그 시절로 함께 돌아가서 생각하자는 데 의의가 있다. 우리 미래를 위해서도 그건 필요한 일이다.
 
현실이 각박하다고 하지만, 다들 앞으로 행복하게 잘 살고 새로운 미래를 만나고 싶은 마음은 비슷할 것이다. 현실만 들여다보면 미래는 없다고 본다. 그렇다고 강요하고 싶진 않다. 적어도 영화를 통해 그런 역사에 시선을 돌리고 관심을 가져보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도 어느 정도 보이진 않을까."

  

▲ 독립을 알리기 위해 달리고 달렸던 '1947 보스톤' 강제규 감독(왼쪽에서 두 번째)과 김상호, 임시완, 하정우 배우가 11일 오후 서울 광진구의 한 상영관에서 열린 영화 <1947 보스톤> 시사회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1947 보스톤>은 광복 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1947년 보스턴 마라톤 국제 대회에 출전하는 국가대표 손기정 감독과 서윤복, 남승룡 선수 등의 도전과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9월 27일 개봉. ⓒ 이정민


 
창작자로서의 숙제
 
<태극기 휘날리며> 등으로 천만 관객을 두 번 이상 동원한 대중영화 감독. 동시에 작품성과 흥행성을 고루 갖춘 흥행 감독이라는 수식어가 늘 강 감독에게 있었다. 코로나19로 한국영화 산업이 어려워졌다고들 하는데 강제규 감독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급변하는 콘텐츠 환경에 놀라고 있다"던 그는 "영화인들이 극복해야 하는 큰 숙제"라고 말했다.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본다. 제한된 시장 상황도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문화는 다양성이 가장 중요한 뿌리라 생각하는데, 이미 관객은 다변화했다. 어떤 작품을 기획할 것인가 그 기준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 너무 유행만 좇는 영화가 아니라 영화적 경험이 많은 사람들 이야기도 들을 필요가 있다. 물론 오래 했다고 잘 찍는 것도 아니고, 어리다고 트렌디한 게 아니다.
 
연륜 있는 감독들이 자기 존재감에 맞는 다양한 영화를 내놓게 하는 환경이 중요하다. OTT 플랫폼이 커지면서 한국영화를 어떤 형태로든 전 세계인들이 볼 준비가 됐잖나. 과거엔 이질감 때문에 소수만 봤다면, 그 장벽이 무너지면서 적극 자신을 알릴 수 있게 되기도 했다. 이젠 콘텐츠를 자신있게 만들어낼 시기다."

 
과거 그는 SF 영화를 준비하다 무산을 겪기도 했다. 열악한 산업 환경임에도 강제규 감독은 "그럴수록 정부나 관계자를 만나 설명하고, 의논해야 한다"며 "가급적 영화를 해나가겠지만, 2시간 안에 표현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있다면 OTT 플랫폼에도 도전하겠다"라고 답했다. 
1947보스톤 강제규 하정우 임시완 김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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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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