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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재료로 낯선 맛 내기... 천박사의 노림수 통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555]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23.10.03 10:25최종업데이트23.10.03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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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으로 오스카를 거머쥔 봉준호 감독이 시상대에 올라 한 말을 기억한다. 그는 거장 마틴 스콜세지가 영화계에 끼친 영향을 언급하며,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유명한 구절을 말하였다. 세상 모든 창작자들이 동의할 밖에 없을 이 말을, 조금만 비틀어보면 또 다른 명구절이 탄생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국경을 초월하여 전 세계 방방곡곡에 침투한 OTT 서비스는 세계 콘텐츠 시장에 커다란 흐름을 만들어냈다. 그 흐름 중 가장 두드러지는 건 보편성에의 추구다. 할리우드와 유럽은 물론, 동유럽과 서아시아, 아프리카에서 만들어지는 영화까지도 전 세계인이 공감할 법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럴 밖에 없는 것이 넷플릭스 같은 OTT 업체에서 세계적 성공을 거둔 콘텐츠는 하나 같이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들도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던 것이다.
 

▲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포스터 ⓒ CJ ENM

 
한국적 새로움에 대한 추구
 
그러나 보편성의 추구는 온전한 답이 되진 못한다. 갈대 같은 콘텐츠 소비자들의 취향은 언제나 자극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자극을 자아내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중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대중을 상대하는 모든 업계가 답을 같이 하고 있다. 바로 새로움이다.
 
예를 들어 식품업계는 온전히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내기보다는 검증된 제품에 새로운 맛과 향을 첨가하는 방식으로 매출을 늘리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대다수 소비자는 약간의 새로움만으로 제게 필요한 자극을 채우고 또 다른 자극을 찾아 나서게 마련이다. 참신함에 이르지 못한 새로움, 그 정도면 충분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전성기를 맞이한 K콘텐츠라 해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전 세계인이 한 번쯤 집어들 만한 새로움을 찾는데 적잖은 작가들이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은 이 같은 노력의 결과물이라 보아도 좋다. 엑소시즘 장르에 속하는 퇴마라곤 하지만 공포물로 풀지 않고 판타지 액션영화로 만들었다는 점부터가 참신하다. 서양에 비해 퇴마를 소재로 한 영화가 많지 않은 한국에서 지나치게 무겁지 않은 퇴마물을 찍어냈다는 게 상업적 성공을 겨냥한 기획의 결과물이라 할 만하다.
 

▲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스틸컷 ⓒ CJ ENM

 
최소 노력으로 최대 효율, 이 영화가 노린 것
 
2015년 작 <검은 사제들>로 퇴마영화 주인공을 경험한 바 있는 강동원이 이번엔 칼을 들고 귀신을 때려잡는 무당으로 화해 액션연기를 소화한다. 2019년 작 <킹덤>으로 악귀화 된 악역을 존재감 있게 연기한 허준호도 비슷한 캐릭터를 맡았다. 이 같은 캐스팅에서 그대로 드러나듯, <천박사 퇴마 연구소>는 기존에 없었던 진정한 의미에서의 새로움을 추구한 작품이 아니다. 수없이 반복돼 온 틀일지라도 약간을 비틀어서 최대의 효율을 노리는 작품인 것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새롭지 않은 것은 아니어서, 상상력이 얼마든지 개입될 수 있는 무당의 퇴마행위와 반쯤 귀신인 무리와의 대결 등이 신선함을 자아낸다. 익숙한 배우들이 자주 입는 옷을 입었다곤 하지만 해외 관객을 고려한다면 그리 큰 문제인 것도 아닐 테다.
 
영화는 악귀에게 할아버지와 동생을 잃은 사연 있는 퇴마사 천박사(강동원 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는 유튜브를 통해 퇴마행위를 홍보하고, 찾아온 이들을 상대로 가짜 퇴마행위를 하는 것으로 수익을 올려온 반쪽짜리 선무당이다. 폭약이며 각종 전자장비를 잘 다루는 인배(이동휘 분)와 어린 시절 저를 데려와 키워준 황사장(김종수 분)이 그가 교류하는 사람 전부다.
 
영화는 천박사에게 진짜 퇴마사건이 의뢰되며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다. 귀신을 보는 능력을 가진 유경(이솜 분)이 착수금 5000만원에 잔금 5000만원의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고, 이들이 함께 진짜 귀신들의 소굴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곳엔 영험한 당주무당이던 천박사 할아버지(김원해 분)가 봉인한 귀신 범천(허준호 분)이 있다. 천박사는 할아버지가 남긴 칼과 방울을 들고 범천을 상대한다.
 

▲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스틸컷 ⓒ CJ ENM

 
전형적 이야기를 새롭게 전하는 법
 
남다른 피를 물려받은 재능 있는 주인공이 제 과거와 얽힌 악당을 물리친다는 전형적 영웅서사가 영화의 기본 얼개다. 목표를 향해 다가가는 주인공을 여러 인물들이 각자의 역량으로 힘껏 돕는다. 주인공은 물러서지 않고 강하게만 보였던 악귀는 끝끝내 패퇴한다.

이토록 전형적인 이야기를 새롭게 느끼도록 하는 건 역시 설정이다. 칼과 설경이라는 특수한 부적으로 악귀를 멸하는 당주무당은 서양은 물론 동양에서도 익숙한 캐릭터가 아니다. 귀신을 보는 이와 기술에 능통한 이, 영험한 북을 치는 이가 빚는 조화는 퇴마판 어벤져스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요컨대 이 영화는 할리우드가 완성한 영웅서사의 영화적 변용물을 한국적으로 버무린 결과라 하겠다. 유명한 과자의 새로운 맛을 먹어보고 싶듯이, 전형적인 스토리의 한국퇴마버전에 매력을 느낄 만한 이도 적지는 않을 것이다. 심지어 강동원까지 나온다면야.
 
한 편의 영화 속에 자리한 심산을 읽어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한 편의 영화가 온전히 독립된 이야기일 수만은 없는 세상이다. 우리가 보는 것이 어떤 맥락에서 어떤 의도로 출발한 것인지를 읽어낼 수 있다면 한 편의 영화가 그 이상의 이야깃거리를 제공해줄 수도 있을 테다.
 

▲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스틸컷 ⓒ CJ ENM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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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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