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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이 된 16살 소녀의 첫 경험, 친구에게도 말 못했다

[넘버링 무비 313]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하우 투 해브 섹스>

23.10.11 15:54최종업데이트23.10.11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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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하우 투 해브 섹스>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올해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에 초청되어 대상을 받으며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작품이 하나 있다. 몰리 매닝 워커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하우 투 해브 섹스>(How to have sex). 대학 입학시험 직후 친구들과 함께 그리스의 크레타 섬으로 휴가를 떠난 16살 또래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현 십 대들의 가장 민감한 부분이자 통과의례처럼도 받아들여지는 성경험과 불안에 대한 예민하고도 냉정한 시선이 그려진다.

영화는 영국의 십 대 소녀 타라(미아 매케나-브루스 분), 스카이(라라 피크 분), 그리고 엠(엔바 르위스 분) 세 소녀가 자유로운 휴가를 보내기 위해 크레타섬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아직 동이 트기도 전에 아무도 없는 바다를 향해 몸을 내던지는 이들의 모습은 영화가 무엇으로부터 동력을 얻어 나아가게 될 것인지를 암시한다. 억압되어 있던 자유에 대한 갈망과 제어 수단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의 방종. 아직은 자유에 따르는 책임의 무게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10대의 혈기를 처음부터 뜨겁게 보여준다.

매일 밤 술과 파티가 난무하는 섬 안에서 이들이 바라는 것은 멋진 남성과의 하룻밤. 그중에서도 아직 유일하게 성경험이 없는 타라는 이번 여행에서 반드시 잠자리를 갖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 바람은 자신이 원해서이기도 하고, 아직 경험이 없는 자신을 조금은 이상한 듯 바라보는 친구들의 시선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소중하고 행복한 경험이었어야 할 타라의 기대는 다른 모습이 되어 상처를 남긴다.

02.
'하우 투 해브 섹스'라는 타이틀에서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영화의 중심에 놓여 있는 것은 유럽의 10대들이 어떤 방식으로 성관계를 경험하게 되는지에 관한 것이다. 청소년 시기의 어린아이들이 성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며, 이제 더 이상 과거처럼 감추거나 드러내지 못하도록 하는 분위기는 물론 아니다. 다만 그런 환경 속에서도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충동적으로 경험하게 되거나, 자신의 의사가 정확히 어떤지보다는 주변 환경이나 또래의 부추김을 이기지 못해 나아가게 되는 경우의 문제를 이 영화는 바라보고자 한다.

극 중 타라도 그런 상황에 놓여 있는 인물이다. 분명 자신 스스로도 누군가와의 경험을 갖고 싶다고 이야기하지만, 그 결정에 대해 100% 확신하지는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직 모자란 확신을 곁에 있는 두 친구 스카이와 엠이 끌어올리고자 하고, 이렇게 채워진 결심은 타라를 움직이게 만든다. 그래서일까? 영화는 이 지점에 있어서의 세 사람 사이의 묘한 긴장감과 그런 그녀의 상황을 이용하며 상대적 우위를 느끼고자 하는 스카이의 태도, 낯선 남성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경쟁하듯 나아가는 모습을 차곡차곡 쌓아나가며 타라를 불행한 상황 속에 고립시킨다.

결과적으로 그런 상황 속에서도 타라가 자신이 원하는 남성과 행복한 기억으로 남길 수 있는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면 행복한 결말을 맞이했을 것이다. 다만 그녀가 마음속에 두고 있던 배져(숀 토마스 분)가 아닌 패디(사무엘 보텀리 분)가 접근하며 달콤한 말로 타라를 꾀어내고, 얼떨결에 사랑을 나누게 된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다(나중에 드러나는 사실이지만 패디는 역시 나쁜 종류의 남성에 속한다). 진정한 사랑을 기반으로 한 사랑이 아니라 그저 하룻밤 보내는 쪽의 용도로 여성을 대하는 남자와 첫사랑을 나누게 되었으니까.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하우 투 해브 섹스>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03.
영화의 초반부에서 던져지는 광기에 가까운 쾌락과 유흥, 뜨겁고 화려한 밤 그리고 웅장한 베이스 위에서 현란하게 움직이는 사이키 조명 등의 이미지는 후반부에 찾아오게 될 고요함과 불안의 예감을 더욱 증폭시키고 그 괴리를 해리시키는 요인이 된다. 특히 아침과 함께 찾아오는 고요하고 황량한 거리의 이미지는 자신이 그렇게나 원했던 (잘못된 방식의) 순결의 상실이 얼마나 허무하고 공허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과도 같다.

그런 내면의 충격 속에서도 그 혼란스러운 감정과 지금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친구들과 공유하지 못하는 것은 역시 앞서 이야기했던 설정 때문이다. 심리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상황에서 벌어진 사건은 그로 인한 파문까지도 자신이 홀로 감내하도록 만든다. 무리 속에 함께 하고 있지만 쉽게 말할 수 없는 비밀과 슬픔을 안고 있는 사람.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상황을 두 번이나 경험하게 만든 남성과 계속해서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는 이의 모습을 영화는 꽤 심도 있게 담아내고, 이 부분이야말로 이 영화 <하우 투 해브 섹스>가 보여주고자 하는 장면일 것이다.

자신의 사랑을 즐기고 매일 밤의 유흥을 즐기느라 타라의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보지 못했던 두 친구 스카이와 엠이 그녀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난 다음에는 이미 많은 것들이 변하고 난 뒤다. 감독의 의도와 무관하게 영화는 구조적으로 타라의 불행했던 경험이 이들 모두의 성장을 도모하는 장치로 일부 활용되는 모습이지만, 이 지점에 깊은 시선을 두고 싶지는 않다. 감독의 의도가 무관하다고 표현한 것 역시, 영화가 이 부분을 노골적으로 활용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무엇을 꼭 잃어야만 성장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04.
몰리 매닝 워커 감독이 이 작품에서 보여준 가장 강렬한 지점은 화려한 이미지도 아니고, 하나의 과정을 경험하게 되는 인물의 감정에 대한 지점도 아니다. 이야기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인물을 하나의 잣대로 멋대로 판단하거나 환원적인 교훈으로 전사하지 않도록 하는 조심스러운 시선이다. 10대의 성이라는 다소 예민한 주제를 다루고 있고, 이를 표현하는 방식 또한 직접적이고 과감함에도 불구하고 인물의 행동이나 이야기의 연결성에 대한 관객의 동의를 구하는 일을 잊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태도야 말로 이 영화가 자신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말할 수 있도록 하는 원천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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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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