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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60만원 AI아나운서' 등장, 아나운서인 전 어떡하나요

[방송가 휩쓴 AI①] AI와 '사람' 아나운서의 미래

24.03.25 06:55최종업데이트24.03.25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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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의 시대다. 이제 우리는 개인의 퇴사 결정이나 회사의 계약 해지, 정년퇴직이 아닌 AI로 인해 일자리를 잃게 되는 시대를 맞았다. 과거에는 기술의 진보로 단순노동이 기계로 대체 되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고학력 사무직과 전문직, 창의성이 있어야 하는 일까지 싹 다 바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2035년까지 기존 일자리 3억 개가 사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고, IMF도 '전 세계 일자리의 절반 가까이가 AI의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오픈 AI CEO 샘 알트만도 '창의적인 직업은 거의 안전할 거로 생각했는데,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AI가 더 강력해질수록 위험과 스트레스 긴장 수위는 모두 높아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13년 차 아나운서인 나는 며칠 전 한 기사의 제목을 보고 이를 실감했다.
 
'월급 60만 원' 받는 제주도청 신입 아나운서의 정체
 

제주도청 AI 아나운서 제이나의 모습. ⓒ 제주도청 유튜브 갈무리


클릭해 보니 제주도청의 제주도정 뉴스 진행을 '인간' 아나운서가 아닌 'AI' 아나운서가 한다는 것이고 제작 비용이 한 달에 60만 원이라는 내용이었다. 기사를 읽는 내내 내 월급이 얼마인지 상기했고 나도 AI에 대체될 수 있겠구나 상상했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비용 절감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인간은 채용에서 밀려났고 그 자리에 기술이 도입되었다. 사람이 하던 일을 AI가 하게 되면서 고용은 '사용'이 인건비는 '제작비'가 되었다.
 
그리고 이 기사를 본 다음 날, 한 아나운서 아카데미 홈페이지에는 AI 아나운서 업체 브랜드 모델 그러니까 AI 아나운서를 만들기 위해 촬영을 할 아나운서를 모집하는 공고가 올라왔다. 촬영은 단 하루, 보수는 초상권 사용료, 이력서와 포트폴리오 영상만 접수하면 됐고 자기소개서는 필요 없었다. 인공지능으로 사람의 일자리 하나가 줄었고, AI의 일을 위한 일용직 하나가 생겼다.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이 상황에서의 걱정은 아나운서가 꿈인 취업 준비생, 즉 사람만이 할 것이다.
 
사실 AI가 뉴스를 전하는 일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국내에서는 2020년 국내 방송사 최초로 MBN에서 AI 김주하 앵커가 등장했다. 지금까지도 AI 김주하 앵커는 1분 남짓의 주요 뉴스 (저녁 7시 메인뉴스 전 어떤 기사들이 나갈 것인지 헤드라인을 정리해 먼저 알려주는 뉴스)를 전하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 뉴스 진행은 우리가 아는 '사람' 김주하 앵커가 전하고 있다.
 
그때의 AI 김주하 앵커와 이번 제주도청 AI 아나운서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렇다. MBN은 기존 김주하 앵커가 하던 일 중 가장 짧고 간단하다고 할 수 있는 일부 업무를 AI를 이용해 만든 거라면, 이번 제주도청 AI 아나운서는 주1 회이긴 하지만 도정 뉴스 전체를 AI를 이용해 제작한 것이다. 때문에 일자리 문제부터 뉴스 진행자의 역할까지 여러 측면을 생각하게 한다. 내 업무를 분담하는 것과 대체하는 건 다른 개념이다. 전자는 노동자, 근로자의 입장에서 좋은 일이고 후자는 생계가 걸린 문제가 될 수 있다.
 
가짜의 등장, '사람' 아나운서의 재발견
 

어찌됐든 결국 나와 내 일을 지키는 건 '노오력'이구나. ⓒ unsplash

 
우선 '아나운서'라는 역할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겠다. 아나운서의 역할을 주어진 기사나 대본을 읽는 정도로만 생각한다면 솔직히 나는 AI 아나운서가 뉴스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쉽지만 기술의 진보를 내 사정과 감정으로 막을 수는 없는 거니까. 저비용 고효율.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 거의 모든 기업이 추구하는 제1의 원칙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뉴스라는 프로그램을 생각해 볼 때 그 안에는 다양한 구성이 있다. 단순히 몇 문단의 정보를 전달하는 단신 기사 외에도 좀 더 심층적으로 보도하기 위해 취재기자가 기사를 작성해 영상과 함께 제작하는 리포트, 기사의 해당 인물부터 기자, 전문가를 모셔 출연자와 인터뷰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대담, 사건 사고 등의 실시간 속보를 전하는 일 그리고 뉴스가 끝날 때 앵커가 직접 써서 말하는 클로징 멘트까지. 그래서 이런 모든 역할을 하는 뉴스 진행자를 우리는 아나운서가 아닌 '앵커'라고 부른다. 그 구분이 먼저 필요하겠다.
 
이 역할에 따르면 기사를 '읽는 것'은 AI 아나운서가 당연히 오독과 실수 없이 훨씬 더 잘할 것이고, 기사를 '전하는 것'은 사람 앵커가 더 잘할 것이다. 기사의 내용을 이해하고 생각해 분석한 앵커가 글의 뉘앙스와 의도, 가치 등에 대해 고려하며 말로 전하는 것은 뉴스를 읽는 것이 아니라 '전하는 것'이고, 그것은 인간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기사를 프로그램에 단순 입력하는 것과 머리와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예 다른 메커니즘이다. 지능은 사람의 능력이고, 인공지능은 컴퓨터 시스템의 기능이다.
 
그렇다면 이제 뉴스를 전하는 사람은 '간장 공장 공장장'과 같은 발음 연습은 좀 덜 해도 될 것 같다. 물론 정확한 발음과 문장 전달 능력 또한 뉴스 진행자에게 중요하고 필요한 능력이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발전하고 있을 AI 기술력 앞에서는 사람의 오독 확률이 AI의 오류 가능성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으로 오히려 뉴스 진행자의 역할은 구분되고 명확해질 것이다. 뉴스를 진행하는 '사람'에게는 세상의 이슈에 다양한 관점과 관심을 두고, 보도할 내용에 대해 깊고 정확하게 잘 알려고 하는 노력, 즉 인간의 경험과 가치 판단으로 기계와 구분되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훗날 AI가 어디까지 발전할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로써는 그런 역할을 하는 앵커가 AI와 구분되는 점이며, 시청자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고 대체 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다.

가짜의 등장은 진짜의 가치를 알게 한다. 이는 비단 아나운서, 앵커라는 직업뿐만 아니라 다른 일들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 AI 아나운서가 많아지고 그때도 내가 뉴스를 진행하고 있다면 나는 뉴스를 진행하다 일부터 오독을 하고 슬픈 기사에 눈물을 흘려야 사람임을 증명할 수 있을 것만 같다. AI와 구분되기 위해 실수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인공지능 시대에 중요한 태도

나아가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 볼 지점은, 나는 인공지능의 시대에서 중요한 건 사람이 사람의 가치를 알아보고, 사람이 사람을 필요로 하고, 사람이 사람을 귀찮아하지 않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인간을 필요 없게 하는 기술만 경쟁적으로 개발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이기에 가능한 영역을 고민하고 지키며, 그 안에서 인간을 이롭게 하는 기술과 함께 살아갈 때 미래는 두려운 앞날이 아닌 기대되는 날들로 이어질 것이다.
 
이제 뉴스 진행자인 나와 내 자리가 AI로 대체되지 않도록 해야 할 일은 거울 대신 기사의 내용을 더 많이 들여다보고, 어려운 내용을 쉽게 전달하기 위해 공부하고, 대담할 땐 시청자의 입장에서 질문을 던지고,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하는 뉴스지만 때로는 인간미 넘치는 클로징 멘트도 직접 쓰고 전하며, 내 일과 나에게 더 많은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어찌됐든 결국 나와 내 일을 지키는 건 '노오력'이구나. 이렇게 다시 한번 깨달으며 글을 마치려 한다.
 
아,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 이 글은 AI가 작성했을까? 사람이 작성했을까?
 
'제주도정 뉴스를 AI 아나운서가 진행한다는데, 그럼 기존의 사람 아나운서들은 어떻게 되는 거야? 미래에는 아나운서나 뉴스 앵커도 다 AI로 대체 될까? 인공지능 시대에 사람의 역할은 뭘까? 관련해서 다른 기사와 분석, 프로그램도 찾아보고, 인용구도 넣고, 인간이 하는 다짐 같은 것도 넣으면서 마지막에 MZ세대 단어도 하나 추가해서 진짜 사람 아나운서가 쓴 것처럼 수미쌍관법으로 멋지게 글 한 편 써줘.'
 
인공지능의 시대다.
인공지능 AI AI아나운서 AI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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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면 삶의 면역력이 생긴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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