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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유명 킬러? 회사원 아들 인생도 바뀌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672] <원티드>

24.03.27 10:07최종업데이트24.03.27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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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이 모든 것이다. 그렇게 주장하는 영화가 있다. 시대의 흐름을 돌파하여 저의 색채를 강하게 새겨내는 영화, 그런 영화들이 세상엔 몇 편쯤 있었다. 액션 또한 마찬가지, 세련된 편집과 촬영, 연기가 조화되어 관객을 흥분케 하는 액션이란 장르에서도 저만의 스타일을 자랑하는 영화가 적지 않았다.
 
배우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던 시대를 지나 촬영과 편집, 사후 기술로 보완하는 시대에 접어들며 액션의 스타일은 정말이지 다양해졌다. 그 가운데서 시대에 제 존재감을 새긴 강렬한 스타일의 영화도 몇 편쯤 생겨났다. 이를테면 느리게 나아가는 총알과 화려한 몸집으로 그를 피하는 <매트릭스>는 이후 십 수 년이 지나도록 회자되었던 것이다.
 
이전엔 없었던 스타일, 기술, 착상으로 저만의 존재감을 드러낸 작품이 오로지 <매트릭스> 뿐인 것은 아니다. 오늘 '씨네만세'에서 소개할 이 영화 또한 특유의 몇몇 액션이 무척 오랫동안 회자되고 변주되며 저의 생명력을 이어왔다. 소련 출신 영화인 티무르 베크맘베토프의 인생작 <원티드> 이야기다.
 

▲ 원티드 포스터 ⓒ 유니버설 픽쳐스

 
총알이 휘어 날아가던 그 장면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도 이 장면만큼은 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바로 총알이 휘어 날아가는 <원티드>의 명장면이다. 천년 역사의 비밀조직에 가입한 웨슬리(제임스 매커보이 분)가 표적과 저 사이에 선 폭스(안젤리나 졸리 분)를 비켜 타깃을 맞추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혹여 표적이 아닌 폭스를 맞출까 모두 숨죽인 그 순간, 웨슬리가 강하게 팔을 흔들며 쏜 총알이 절묘하게 휘어가 폭스의 머릿결만 스치고 표적을 꿰뚫는다.
 
총알이 휘어 날아갈 수 있다는 것, 세계영화 사상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던 연출이다. 이후 김한민의 <최종병기 활>에서도 오마주 된 '휘어쏘기'는 액션영화 사상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장면을 그려내 세계 관객을 놀라게 한 명장면으로 남았다. 총알을 휘게 하고 총알과 총알이 공중에서 맞부딪게 하며, 세차게 돌아가는 방직기 사이로 손을 넣어 물건을 잡아내는 등 <원티드>엔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명장면들이 여럿이다. 본 적 없는 장면에 열광하는 영화팬들이 이 영화에 감탄을 내놓은 것도 당연한 일이다.
 
<원티드>는 스타일과 연출의 힘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평범한 회사원으로 일상에 큰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던 웨슬리가 저를 찾아온 암살조직에게 발탁되어 희대의 암살자가 되는 이야기를 얼개로 삼아, 독특한 액션으로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 유럽 길드에서 시작해 천년을 이어온 암살자 집단에겐 독특한 타깃 선정방식이 있다. 다름 아닌 홀로 돌아가는 방직기가 제 직물 안에 암호를 심는단 걸 누군가 알아낸 것이다.
 

▲ 원티드 스틸컷 ⓒ 유니버설 픽쳐스

 
방직기가 지목하는 타깃, 반드시 죽여야 한다
 
세로줄과 가로줄로 짜인 방직기는 그 줄의 배열방식으로 2진법 암호를 생성하는데, 이것을 풀어보니 알파벳으로 누군가의 이름이더라는 게 이 조직 탄생의 배경이다. 방직기가 지목한 이는 세상에 큰 폐해를 일으키게 되는데, 초대 조직원들은 이를 살핀 끝에 방직기가 지목한 이들을 살해하는 조직을 창설한다. 한 사람을 죽이는 게 만 사람을 평안케 하리라는 믿음으로 방직기가 지목한 이를 이유를 막론하고 제거해나갈 결사대를 조직한 것이다.
 
어느덧 천 년을 이어온 조직은 위기에 봉착해 있다. 조직을 대표하는 킬러들이 하나둘 죽어나가는 것이다. 범인은 다름 아닌 조직에서 탈출한 또 다른 킬러. 최고의 킬러라 불렸던 이까지 무참하게 살해되고 나니 조직은 새로운 수를 쓰게 된다. 평범한 회사원 웨슬리에게 폭스를 접근시킨 것도 그 때문이다.
 
조직은 웨슬리가 살해된 킬러의 아들이라고 말한다. 자기가 어릴 적 집을 떠난 아버지를 웨슬리는 기억하지 못한다. 스트레스로 가득한 일상 가운데 안정제를 복용해야만 겨우 살 수 있는 그다. 애인은 직장동료 배리(크리스 프랫 분)와 바람이 나 있고, 회사에선 상사에게 심한 괴롭힘까지 당한다. 그렇지만 할 수 있는 건 고작 안정제를 먹고 모른 척 견디는 일 뿐이다. 그런데 그가 킬러의 아들로 특별한 재능까지 지니고 있다고? 혹하지 않을 수 없다.
 

▲ 원티드 스틸컷 ⓒ 유니버설 픽쳐스

 
킬러가 된 회사원... 천 년을 이어온 조직
 
큰 마음 먹고 떠난 길이다. 상사에게 큰소리를 치고 배리에겐 키보드를 빼어 한 대를 먹이고 나왔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게 된 일상, 이제는 비밀조직이 제 집이어야 한다. 하지만 일은 마음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조직에선 그에게 수련이랍시고 가혹행위를 이어간다. 의자에 묶어두고 주먹질을 하고, 칼 든 이를 상대로 맨손격투를 시킨다. 상처를 입으면 어떤 부상도 회복되는 욕탕에 처박으니 다시 일어나 가혹행위를 당하는 것이다.
 
영화는 일상 저편에 존재하는 상상의 영역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천 년의 비밀조직이 조직원들을 훈련시키는 과정이 몹시 인상적이다. 이 가운데 저 유명한 총알을 휘어 쏘는 비기가 있다. 남들보다 훨씬 예민한 감각으로 시간을 남보다 느리게 느끼는 웨슬리의 유전적 특성이 큰 장점이 된다. 다른 곳에선 만나지 못한 액션이 거듭되는 가운데 드디어 웨슬리에게 실전투입의 날이 다가온다.
 
이야기는 반전을 거듭하며 웨슬리가 조직의 비밀에 다가서는 과정을 담아낸다. 불만족스런 일상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기의 모습을 찾는 웨슬리의 이야기가 당대 관객에게 호소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상을 일상 가운데 실현하는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저 위대하다 하는 영웅들조차 가까이 들여다보면 제 이상과는 거리가 있는 터다. 하물며 범인들이야.
 

▲ 원티드 스틸컷 ⓒ 유니버설 픽쳐스

 
영화가 특별해지는 순간
 
웨슬리처럼 집에서, 회사에서, 또 학교며 취미의 영역에서 제가 꿈꾸는 삶을 살지 못하는 이가 수두룩한 게 현실이다. 갑자기 혈통에 특별함이 있다며 비밀조직이 접근해오는 일도, 제게 깃든 특별한 능력으로 남들이 범접하지 못할 임무를 수행할 일도 일상에선 없는 것이다. 그러나 바라건대 진짜 제 모습을 찾아 삶다운 삶을 살고 싶다는 열망을 가슴 한 켠에는 간직하고 있지 않은가. 영화가 호소하는 게 바로 이 지점이다.
 
음모와 배신 사이 여러 설정에서 허술함이 있다는 비판엔 설득력이 있다. 캐릭터의 사연과 그들의 선택에서도 개연성 없는 구석이 적잖다. 영화를 이끄는 동력이 이야기가 아닌 스타일과 액션에 있다지만 내실에서 아쉬움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영화는 시대를 건너 살아남을 힘을 가졌다. 그건 이전에 없던 액션, 저만의 스타일이다. 총알을 휘어 쏘고 천 년의 비밀조직에서 수많은 비밀수련을 거듭하는 과정이 <원티드>를 오늘에 기억되는 작품으로 만들었다.
 
어느덧 <원티드>가 만든 것 또한 옛것이 되어버렸다. 수많은 작품이 등장하고 사라진다. 일부는 흥행하고 대부분은 실패하는 가운데 시대를 건너 전해질 생명력을 획득한 작품을 만나기란 너무도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원티드>가 가치 있는 건 바로 그와 같은 역할을 해냈기 때문이다. 남과 다른 방식과 세기, 속도로 저만의 이야기를 풀어내겠다는 의지가 이 영화를 기억되도록 한다. 그와 같은 작품은 귀하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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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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